제94회 뉴스부문_공기청정기·차량 에어컨 필터서 살균제 OIT 검출…전량회수 권고_MBC 남재현 기자

“더 싸게, 더 많이, 더 빨리…OIT, 기업의 본능이 빚어낸 공포”
– 생활화학제품 사각지대는 여전
어디부터 시작해야 될까. 호흡기 독성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있었지만 막상 살펴봐야 할 생활화학제품들은 무수히 많았습니다. 고민 끝에 기준은 다시 가습기. 먼저 비슷한 기능을 하는 제품 가운데 살균기능이 있다고 하는 제품으로 취재대상을 좁혔습니다. 환경부가 전수조사를 하고 있는 품목도 제외했습니다. 여전히 사각지대는 많았지만 우선 차량용 에어컨필터와 공기청정기 필터를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 살균, 항균기능의 정체는
수소문 끝에 비슷한 연구를 한 적이 있는 공주대 신호상 교수팀을 찾았습니다. 샘플 대상을 정하고 취합하는데만 일주일. 분석을 하는데도 족히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다행히 모두 재촉하지 않고 결과를 기다려줬습니다. 과연 어떤 물질이 살균과 항균기능을 한다는 것일까. 질량분석기로 미지의 물질을 찾아낸 뒤 역추적 해 얻게 된 결과는 OIT. 기존에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물질이었습니다.
 
– OIT, 넌 대체 정체가 뭐냐
문제는 국내에서 OIT 관련 자료를 전혀 찾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내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에게 질의를 해 봐도 유독물질이 맞고 피해가 우려되는데 호흡독성에 대한 자료를 건네주지는 못했습니다. 유럽과 미국 환경청 발간 자료를 뒤지고 나서야 일부 자료를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피부에 직접 닿으면 화상을 입을 만큼 독성이 강하다는 것, 일부 전문가들은 옥시 가습기살균제와 독성이 비슷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호흡독성을 증명해줄 자료는 부족했습니다.
 
– 우왕좌왕 근거 없는 해명에 급급
검증이 시급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생산업체들은 “존재 자체를 몰랐다”부터 “극소량 이라 괜찮다”, “환경부 기준상 전체 제품의 1% 이하로 쓰면 상관없다”는 해명들을 내놓으며 우왕좌왕했습니다. 하지만 보도에 앞서 취재진이 환경부에 공식 질의를 해 받은 답변에 따르면 “업체가 주장하는 1% 이하 기준은 유독물 원액을 취급할 때 기준이지 제품에 사용할 때의 기준은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환경부는 바로 업체 측에 근거 없는 해명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 한 달만의 검증 결과…84개 제품 ‘전량 회수’
소비자들의 관심은 무척 뜨거웠습니다. 보도국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고, 보도 이후 해당업체들도 당초 해명과 달리 사과문을 게재하고 필터교체와 제품 교환을 선언했습니다. 일부 가전제품 매장에서는 해당 제품을 판매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환경부는 바로 검증에 나섰고 한 달여 만에 기업들 주장과 전혀 다른 결과는 나왔습니다. 필터에 사용된 OIT가 불과 8시간 만에 최대 76%가 공기 중으로 방출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공기청정기 필터의 경우 최대 2주, 차량에어컨 필터는 하루도 안 돼 OIT가 공기중으로 모두 쏟아져 나왔습니다. 몸에 좋자고 쓴 제품들이 결국 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겁니다. 기업들이 앞 다퉈 광고했던 항균 지속력은 실제로 없었던 겁니다. 소비자들이 철석같이 믿고 사용했던 제품들은 말 그대로 불량품이었습니다.
 
– 3M 결국 사과…계속되는 거짓말
다국적기업 3M 사는 환경부 조치에 따르겠다며 사과했지만, 여전히 “유해성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역시 환경부 검증위원회에 소속된 전문가들의 의견은 달랐습니다. 3M은 “유해성은 없다”고 주장만 할 뿐 검증방법이나 실험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은 여전히 거부했습니다. 3M이 유독 한국에서만 검증되지 않은 유독물질을 항균물질로 사용하면서도 자신들의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증명하지는 못했습니다. 처음엔 “OIT가 전혀 방출되지 않는다”고 했다가 “극소량만 나온다”고 말을 바꾸고 결국 모두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났는데도 입장이 바뀐 건 없었습니다.
 
-쉽사리 깨지지 않는 생활화학제품의 공포
공포의 작동원리는 간단합니다. 막연한 걱정과 두려움을 먹고 삽니다.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설명이 뒤따르지 않으면 공포는 쉽사리 깨지지 않습니다. 이번 역시, 기업이나 정부 누구도 그 설명을 제대로 해 주지 못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고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뒤에도 우리의 현실은 반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던 겁니다.
 
당장 검증을 해야 할 유독물질만 수 백 가지. 환경부에 등록된 것만 1천 가지가 넘습니다. OIT가 미국에서 면역 독성물질로 지정된 게 이미 우리보다 40여년 앞선 지난 1971년이었습니다. EU역시 OIT를 피부 부식성과 과민성 물질로 분류해 엄격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유독물질로 지정된 건 불과 2년 전인 2014년입니다.
 
-한국 소비자는 결국 국제적인 ‘호구’?
정부가 주도적으로 유독물질을 통제할 수 없다는 한계가 또 다시 확인된 겁니다. 그래서 이른바 선진국에선 제품을 팔기 전 기업이 스스로 안전성을 입증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보통 안전성을 검증할 때 수백억 원의 돈이 들어가는데 기업 입장에선 피할 수만 있다면 이보다 좋을 게 없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그런 시스템이 없습니다. 한국소비자가 국제적인 ‘호구’냐는 자조 섞인 말도 여기서 비롯됩니다.
 
-신뢰를 저버리는 세계적인 기업들
적은 비용으로 더 많은 제품을, 더 빨리 만들고 싶어하는 기업의 본능 같은 속성을 또 한 번 견제하지 못했던 겁니다. 목표는 거창했지만 부족함과 아쉬움이 많았던 기사였습니다. 제품을 산 소비자들은 대부분 좀 더 돈을 주더라도 세계적인 기업들의 브랜드를 믿고 제품을 샀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보도가 나간 뒤 교환이나 환불을 약속했던 기업들이 계속 말을 바꾸고 있다는 제보가 여전히 들어오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의 신뢰를 또 다시 저버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희도 후속보도를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