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회 지역보도부문 기획보도상_5.18 36주년 기획 [그들의 광주, 우리의 광주]_광주MBC 김철원 기자

부끄러움에서 시작된 취재
 
광주MBC 김철원
 
1980년 5.18이 일어났을 때 나는 아장아장 걸어다니던 네 살이었다. 광주 근교 전남 나주의 한 파출소 옆에 살았던 나는 어머니 품에 안겨 파출소 무기고를 털어가던 시민군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게 온전한 내 기억인지 아니면 자라면서 들은 어른들의 이야기를 내가 임의로 내 경험인 것인냥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네 살 때 일을 온전히 기억할 만큼 천재는 아닌지라 그걸 가지고 내가 5.18을 겪었고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올해 내 나이가 마흔이니 마찬가지로 적용한다면 내 나이 또래나 젊은이들이 떠올리는 5.18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건 학교에서 받은 교육이거나 누구에게서 들은 이야기거나 미디어를 통해 형성된 지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기획은 나도 잘 모르는 5.18을 알아가면서 함께 알리자는 차원에서 시작됐다. 거슬러 올라가보면 3년 전 2013년부터 시작했다고 할 수 있겠다. 5.18항쟁은 열흘의 기록. 그 하루하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차근차근 알아가면서 만든 12편짜리 5.18 기획(프롤로그, 에필로그 포함) “33년 전 오늘”(연결->http://bit.ly/1U5PeXl)을 취재, 제작할 때였다. 같이 알아가자고 목표 삼았던 이들이 비단 광주전남에 사는 젊은 사람들만은 아니었기에 다른 지역 젊은이들에게도 알리자며 당시에 없던 유튜브 회사계정을 만들어 내가 리포트 파일을 잘라 유튜브에 올렸던 바로 그 연속보도 리포트가 거의 끝나가던 시점이었다.
 
나는 부끄러웠다
 
강의를 위해 광주에 내려왔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인터뷰가 마음을 훑고 지나갔다. 당시 유 전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1980년 이후에 1987년 6월항쟁 때까지 7년간 당시 민주화운동을 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을 지배했던 생각이 ‘광주의 전국화’, ‘5.18의 전국화’, 열 개, 스무 개의 광주는 진압 못한다. 저 쪽에서.” (다시보기->https://youtu.be/8z1x5ZviS1g)
 
이게 무슨 말인가? 5.18과 6.10 항쟁은 민주주의 역사에 큰 사건들이긴 하지만 두 사건이 맥락으로 깊게 연결돼 있는 사건이었다니. 유시민의 저 인터뷰는 한동안 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고 이후 3년 동안 저 말이 진짜인가를 생각해왔다. 그러다 접한 박래군씨의 칼럼(한겨레21, 963우리의 5월은 왜 그리 잔인했던가 )을 접한 다음에야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었다. 박 씨의 동생인 박래전 씨가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분신해 숨진 사실을 그제야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찾아보니 박래전씨와 같은 분들이 한 두 분이 아니었고, 유시민의 말처럼 그 젊은이들이 광주의 5월 항쟁과 87년 6월 항쟁을 이어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나는 한편으로는 의문을 풀어 시원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부끄러웠다. 광주시민으로서, 광주에 사는 언론인으로서, 광주를 위해 숨진 사람들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했던‘스토리펀딩’은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실험이었다. 스토리펀딩은 주로 신생 미디어 혹은 1인 창작자들을 위한 플랫폼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었지만 제도권 언론이 도전해도 좋을만한 공익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토리펀딩의 ‘스토리’를 통해서는 로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고, ‘펀딩’을 통해서는 유족을 돕고, 고인들의 기념사업을 위한 종잣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창작자의 기획의도를 현실에서 완성시켜주는 1석 2조의 장점. 거기에다 펀딩 후원자들이 남긴 댓글은 기분좋은 덤이었다.
 
1시간 다큐멘터리와 4분짜리 리포트 10개, 거기에다 8편의 스토리펀딩을 제작하는 세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는 건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점을 감안하더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기획이 겨냥하는 목표가 뚜렷하니 취재나 제작과정에서의 어려움은 너끈히 극복할 수 있었다. 유가협에서조차 파악하지 못한 서울대생 故 김태훈씨의 유족인 김선혜 판사의 연락처를 확보해 인터뷰를 해낸 일, 비록 인터뷰를 성사시키진 못했지만 고문 끝에 숨져간 이들의 유족들을 접촉해 고인들의 행적을 밝혀낸 일, 어느 자료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서울대생들의 집단정신질환 발병을 발굴해낸 일 등과 같은 흥미진진한 과정이 이어져 취재 기간 내내 보람찼고 행복했다.
 
“5.18 왜곡보도, 속죄하는 마음으로 취재한다
 
광주MBC는 5.18 때 왜곡보도로 시민들에 의해 불탄 기억이 있다. 그 사건은 5.18의 공식역사에도 기록돼 있는 바다. 광주MBC 구성원들은 광주시민들, 오월 영령들에게 진 빚이 있고 그걸 갚는 마음으로 뉴스 취재와 프로그램 제작에 임하고 있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아직 다 풀리지 않은 5.18의 진실을 풀어내고 민주주의가 착근할 수 있도록 취재를 계속해나갈 의지를 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