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회 기획보도부문_시사기획 창-고객님, 실손보험 드셨죠_KBS 김준범 기자

■ “실손보험은 있으신가요?” “실비보험은 드셨나요?”…
언젠가부터 병원, 특히 동네병원을 점령한 질문입니다. 병원에서 한두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사실 병원이라면 당연히 “어디가 불편하세요?” “편찮으신 곳이 어디죠?”라는 질문이 앞서야 할 텐데 말입니다. 실손보험이라는 상품에 점령된 일부 병원의 일그러진 현실입니다.
취재는 여기서 시작됐습니다. 우리 국민은 실손보험에 왜 이렇게 많이 든거지? 건강보험에 큰 문제가 있는 건가? 가입자들은 혜택을 충분히 누리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면, 어디부터 꼬인 걸까? 3천 4백만 명 넘게 가입한, 사실상 ‘국민보험’인 실손보험의 A to Z를 취재해보기로 했습니다.
 
■ 실손보험, 얼마나 아십니까?
너도나도 실손보험 가입자지만, 보험의 정확한 내용을 아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실손보험이 대체 병원비를 어디까지 내주는 거야?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취재를 시작하기 전엔 저 역시 잘 몰랐습니다. 심지어 자기가 실손보험에 든 사실조차 모르는 가입자도 많습니다. 이모 소개로, 어머니 친구 소개로, 친구 소개로… 즉, 대면 채널을 통해 ‘묻지도 따지도 않고’ 보험에 가입하는 우리 관행 탓입니다.
이렇게 모르다 보니 이용당하기 딱 좋습니다. 최근 실손보험을 악용한 ‘과잉의료’가 크게 늘었다는 뉴스는 많이 보셨을 겁니다. 동시에 실손보험료가 30% 안팎 대폭 인상됐다는 소식도 접하셨을 겁니다. 결국 대다수의 가입자는 어찌된 사정인지도 모르고 보험료를 더 내라니까 그냥 더 내고 있는 겁니다.
■ 병원장사 & 보험장사
취재팀은 한 달여에 걸쳐 전국 6개 도시, 20개 병원에 잠입 취재했습니다. 실손보험을 이용한 일부 병원들의 영업 행태는 기대 이상으로 추악했습니다. ‘이 정도일 줄이야’였습니다. 환자를 데리고 오면, 현금을 주머니에 꽂아주겠다는 병원. 남편이나 자녀의 실손보험을 빌려서 마음껏 쓰라고 권유하는 병원. 영수증을 부풀려 실제 치료비를 갚고도 돈을 남게 해주겠다는 병원. 정말 천태만상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병원장사’는 적나라했습니다.
그러면 보험사는 어땠을까요. 고객의 이익을 잘 지켜주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부 병원의 과잉의료로 줄줄 새나가는 보험금은 보험료를 올려 막으면 그 뿐이었습니다. 고객들에게 보험료를 얼마나 받아서, 보험금을 어느 정도 지급하고 있는지, 그 곳간 열쇠는 절대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병원의 과잉의료만 마냥 비난하면서, 보험료 올리면 그 뿐이라는 식입니다. 보험사들의 ‘장삿속’도 병원 못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 너도 나도 호갱님…
결국 병원도, 보험사도 고객과 환자의 이익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보험료는 꼬박꼬박 가입자들이 내는데, 이익은 병원과 보험업계가 독차지하는 꼴입니다. 취재 중 만난 한 전문가는 실손보험에 ‘호구 잡혔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딱! 맞는 말입니다. 지금 가입자 대다수가 실손보험 때문에 이른바 ‘호갱님’이 되고 있는 겁니다.
취재팀은 이런 실태를 구체적인 빅데이터로 확인했습니다. 최근 3년 동안 지급된 모든 실손보험 사례 천9백여만 건을 분석했습니다. 대다수의 ‘호갱님’의 등골을 빨아 먹는 존재가 누구인지 명확한 그림이 나왔습니다. 국민 보건의 최종 안전판인 건강보험 재정마저도 줄줄 새나가고 있음이 확인됐습니다.
■ 실손보험을 어이할꼬?
이렇게 문제는 심각하지만, 사실 개별 가입자 수준에서 대처할 길은 많지 않습니다. 실손보험을 해약하자니, 건강보험만 믿고 있기엔 불안한 게 한 둘이 아닙니다. 실손보험을 계속 들자니, 매년 오를 보험료에 ‘호갱님’이 되기 십상입니다. 건강보험의 역할을 확 늘리면 좋겠지만, 그러려면 건강보험료를 올려야 할 것이고, 당연히 합의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런 난맥상을 정부도, 의료계도, 보험업계도 상당 부분 공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문제를 풀어야겠다는 의지도 어느 정도 읽힙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해결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취재팀에 밝혔습니다. 관건은 난마처럼 얽힌 각자의 이해관계를 조금씩 양보해 가며 매듭을 풀 수 있느냐 일겁니다. 여느 갈등 사안이 그렇듯, 우리 사회는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어 본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