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회 뉴스부문_아리랑 TV 방석호 사장 비리 연속 보도_뉴스타파 심인보 기자

방석호와 나경원을 대하는 언론의 자세
지난 2월 뉴스타파 사무실로 우편물이 하나 왔다. A4 크기의 두툼한 서류봉투. 수신인은 ‘심인복 기자’였다. 가장 비슷한 이름을 가진 건 나였으므로 내가 우편물을 열어보게 되었다. 봉투 안에는 깜짝 놀랄만한 주장이 담긴 편지와 그 주장을 입증하는 아리랑 TV의 내부 문건이 들어있었다. 문건의 진위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가짜라고 보기에는 너무 완벽한 문서였다. 전자 파일들이 담겨있는 USB 메모리 스틱도 하나 들어있었다.
취재는 어렵지 않았다. 문건의 내용을 하나씩 확인하면 됐으니까. 아리랑 TV 방석호 사장이 해외 출장 중에 함께 밥을 먹었다고 적어놓은 사람들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며칠동안 새벽 4시에 일어나 뉴욕에 전화를 걸었다. 의심을 갖고 확인을 했던 사람 모두가 방석호 사장과 밥을 먹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의심이 점차 자신감으로 바뀌어갔다. 방석호 사장의 딸이 SNS에 올린 사진은 자신감을 확신으로 바꿔주었다.
USB 안에는 방석호 사장이 국내에서 사용한 업무 추진비 내역도 들어 있었다. 국내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고 기재된 사람들 가운데 연락처가 수배되는 몇 명을 선정해 전화를 걸어보았다. 역시 대부분이 방사장과 밥을 먹은 기억이 없다고 했다. 방 사장이 업무 추진비를 사용한 식당의 주소를 일일이 확인한 뒤 구글 퓨전 테이블을 이용해 지도로 변환했다. 역시 의심이 확신으로 변한 순간. 방사장이 업무 추진비를 사용한 식당 가운데 20% 이상이 자택에서 2km 이내였다. 의심스러운 곳 몇 곳을 선정한 뒤 현장 취재를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손님을 접대할 성 싶지 않은 아파트 상가의 식당이나 빵집에서 같은 날 연달아 수십 만 원을 쓴 사실이 확인되었다. 추정일 뿐이기에 기사에는 쓰지 않았지만 아마 개인적 목적의 파티나 행사에 음식과 케이크를 테이크 아웃해간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운수 좋은 취재
모든 사실을 확인한 뒤에 아리랑 TV에 연락을 취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답이 오지 않았다. 방사장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낸 뒤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해명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문자 메시지를 보냈지만 역시 아무런 답이 없었다. 결국 이번에도 앰부시 밖에는 반론을 들을 기회가 없는가. 촬영 기자와 함께 아침 일찍 아리랑 TV에 가서 주차장의 형태와 이동 경로를 살폈다. 앰부시를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인터뷰 대상의 이동 경로를 예측하는 일이다. 가능한 이동 경로가 둘 있었는데 아리랑 TV 직원에게 슬쩍 물어보니 대부분의 아리랑 TV 직원들이 다니는 길을 알려주었다. 차에서 내리는 곳에서 건물 진입로까지의 거리가 불과 5미터도 되지 않을 정도로 짧았다. 우리는 아리랑 TV 경비 직원들의 눈에 잘 띄지 않도록 주차장 기둥 뒤에 숨어 방석호 사장을 기다렸다.
검은 승용차가 나타날 때마다 몸을 들썩이며 뛰어나갈 준비를 했지만 번번이 다른 사람이었다. ‘매복’한 지 40분쯤 지났을까, 마침내 방사장이 나타났다. 기둥 뒤에 숨어있던 우리는 그를 놓칠세라 부리나케 뛰어나갔다. 밤새 잠을 못 자 얼굴이 수척해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방사장의 얼굴은 활력과 윤기가 있어보였다. 준비했던 질문을 던지자 처음에는 여유있게 웃기만 하던 방사장의 얼굴이 점점 구겨졌다. “내가 대답할 의무가 어디있어?” 흥분한 방사장이 반말로 물었다. 나는 “대답할 의무가 있으시죠.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의 사장이시니까요” 라고 답했다. 충분한 대답을 듣지 못했는데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엘리베이터에 따라 탔다. 경비원들이 뛰어왔다. 문 열린 엘리베이터 안에서 몸싸움을 벌이다보니 질문하는 내 목소리도, 대답하는 방사장의 목소리도 점점 높아졌다. 출근하던 아리랑 TV 직원들이 엘리베이터 앞으로 모여들었다. 결국 힘에 밀려 엘리베이터에서 끌려 나오고 말았다. 그래도 운이 좋았다. 이렇게 한 번만에 앰부시에 성공하다니.
첫날 보도는 해외 출장에 관한 부분이었다. 포털에서의 반응이 예상보다 컸다. 뉴스타파홈페이지의 접속량도 폭주했다. 이튿날, 미리 준비했던 국내 업무 추진비 사용 내역에 대한 리포트를 내보냈다. 아리랑 TV 노조의 사장 사퇴 촉구 기자 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 중에 방석호 사장의 사퇴 소식이 전해졌다. 기자회견이 끝나 트라이포드를 매고 현장을 떠나려는데 한 아리랑 TV 직원이 다가와 어깨를 툭툭 쳤다.
운이 좋은 취재였다. 운좋게 정확하고 풍부한 제보를 받았고, 취재 과정에서도 큰 걸림돌이 없었다. 한 마디로 ‘똑 떨어지는’ 아이템이었다. 내가 잘해서 취재가 된 부분은 별로 없었다고 생각하기에 상을 받는 게 조금 민망할 정도다.
 
방석호 사장은 운이 없었다.
반면 방석호 사장은 운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방석호 사장이 공금을 사적 용도로 유용한 게 나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방 사장보다 훨씬 더 심각한 비위 의혹과 연루된, 하지만 방사장보다 훨씬 더 큰 힘을 가진 사람이 사과나 사퇴는커녕 모르쇠로 버티는 현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주류 언론들의 카르텔을 감안하면 방 사장은 운이 없다는 얘기다. 뉴스타파는 지난 3월 나경원 의원 딸의 특혜 입학 의혹과 스페셜 올림픽 홍보대사 특혜 선정 의혹을 보도했다. 기자라면 누구나 방석호 사장 사건과 나경원 의원 사건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뉴스 가치가 큰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건을 대하는 주류 언론들의 반응은 완전히 정반대였다. 이런 현실을 바라보면서, 방 사장은 스스로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을까, 아니면 “겨우 이만한 잘못으로 언론의 뭇매를 맞고 그 좋다는 공기업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다니! 내가 당한 것은 운이 없고 더 큰 권력을 가지지 못해서야”라고 생각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