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0회 기획보도부문_시사기획 창 – 훈장_KBS 최문호, 이병도, 최광호 기자

감춘 자, 누구인가?
“훈장은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한다.” 상훈법 제2조에 나오는 ‘서훈의 원칙’이다. 누가 대한민국의 훈장을 받았을까? 언제, 어떤 이유로 훈장을 받았을까? 처음에는 서훈 기록이라는 데이터를 분석하면 좋은 탐사보도물이 될 수 있겠다는 단순하고 막연한 생각이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어떤 훈장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뉴스로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賞)이라는 것은, ‘시대의 기록’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유공자들이나 6.25 참전용사들에 대한 훈장이 일제강점기와 6.25라는 참혹한 역사에 대한 또 다른 기록이듯, 훈장은 우리 근현대사를 돌아보는 ‘또 하나의 프리즘’이 될 것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훈장, 당연히 명예로운 일이다. 사회적으로 칭송받을 일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취재팀의 서훈 정보공개 청구를 비공개처분했다. ‘개인정보’라는 이유에서였다. 소송을 냈다. 3년에 걸쳐 대법원까지 간 소송 끝에 취재팀은 승소했다. 그러나 소송을 통해 정부가 공개한 정보는 많은 것이 누락돼 있었다. 정부 수립 이후 2014년까지 72만 건의 훈장과 포장이 수여됐는데, 6만 건은 끝내 공개하지 않았다. 그나마 66만 건 대부분도 훈장을 준 사유가 빠져있거나 두루뭉술했다. 결국 취재팀은 국무회의록과 정부 인사명령 등 다양한 기록과 취재를 통해 나머지 기록들을 모두 찾아냈다.
72만 건의 훈장 전수 데이터를 일별하면서 느꼈던 첫 번째 의문은 ‘우리나라에 간첩을 잡아 훈장을 탄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나’ 하는 것이었다. 의문은 곧 ‘이 모든 훈장이 진짜 간첩을 잡아서 수여된 것인지 혹 만들어진 간첩도 있지 않을까’로 이어졌다. 그러나 훈장 데이터만으로는 해소할 수 없는 의문이었다. 누가 간첩이고 누가 조작된 간첩인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취재팀은 국방부, 경찰, 국정원, 진실과 화해위원회 등에서 발간한 과거사 진상규명 보고서를 바탕으로 간첩 누명을 벗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 분들을 통해 수사관들을 추적했다. 그러나 대부분 수사관들은 자신이 받은 훈장에 대해 말하기조차 거부했다.
이 취재는 KBS의 과거 잘못에 대한 속죄의 성격도 갖고 있다. 과거 공안기관이 간첩조작 사건을 발표할 때, KBS를 비롯한 방송과 신문은 기사와 특집 프로그램 등을 통해 받아쓰기식 보도를 했다. 당시 피해자들의 가족 중에는 그 보도를 보고 충격을 받아 자살을 한 분들도 있었다. 취재기자들은 피해자들을 만날 때마다 비록 개인 자격이지만 그분들에게 정중하게 사과하고 용서를 빌었다.
취재 이후, 지난한 데스크 과정이 있었다. 당초 작년 7월말 방송예정이었지만 방송은 하염없이 미뤄졌다. 내용이 민감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취재보다 이 과정이 더 힘들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취재데스크에 있는 사람들은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사람들 중에는 불법연행, 감금, 고문을 받은 사실이 증명돼 무죄가 났지만 진짜 간첩이 있을 수도 있다며 ‘조작’이라는 표현을 쓰지 못하게 했다. 주관적 느낌이긴 하지만, 심지어 피해자들보다는 수사관들의 명예에 더 신경을 쓰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의 제목과 관련해, 취재팀의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훈장’이라는 제목으로 방송이 나갔다. 그러나 취재팀은 여전히 ‘간첩조작과 훈장’이라고 부른다.
아직 방송되지 못하고 있는 <친일과 훈장>은 현재로서는 방송이 불투명한 상태다. 취재팀은 <친일과 훈장>도 곧 방송되도록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