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9회 지역보도부문 뉴스상_삼성의 비밀, 멍드는 지역 경제_광주MBC 김인정 기자

삼성..모든 건 비밀이었다
지독하다 여겼다. 그들도 나를 지독하다 여겼으리라. 전화 취재만 가능했던 삼성전자 광주사업장은 이제 전화마저 피하고 있었다. 내 번호를 피하나 싶어 다른 전화기로 수십 차례 걸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긴, 그들의 목소리나마 들을 수 있던 시점에도 수확은 없었다. 어떤 질문 공세에도 답은 같았다. “영업상 비밀”이라는 일관된 답변은, 불리한 답변을 하지 않도록 그들을 보호해주는 방패처럼 보였다. 기자가 쏟아내는 질문들은 그 앞에서 번번이 무력하게 튕겨져 나왔다. “삼성전자가 광주에서 냉장고 생산라인을 뺐습니까?” “라인이 폐쇄되는 정확한 시점이 언제입니까?” “추가 이전도 있습니까?” 삼성의 비밀주의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대답을 끌어내기가 정말 힘들었다. 이리 저리 피하는 그들의 전술이 취재 공세를 퍼붓는 이쪽보다 노련했다. 그렇다고 확인이 되지 않는 낭설로 치부해버리기엔 삼성의 생산라인 이전이 지역 경제에 미칠 여파가 지나치게 컸다. 지역 제조업계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17%. 삼성의 작은 움직임도 지역에서는 대지진이 될 수 있었다.
 
삼성에 찍힐라”…침묵하는 슈퍼을
포기하는 대신 현장으로 향했다. 삼성전자 협력업체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협력업체들은 손사래를 쳤다. 알아도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들은 분명 뭔가를 알고 있었다. 그들과 접촉해 날마다 설득하길 수차례. 마침내 일부 협력업체 관계자들이 입을 열었다. 그들은 삼성전자 생산라인 이전에 대한 많은 정보를 조금씩 풀어놨다. 조각을 짜 맞추니 아주 구체적인 그림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협력업체들은 삼성전자에서 여전히 일을 받고 있기 때문에, 취재에 응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침묵하면 피해를 보는 당사자들 아니냐며 설득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생산라인 폐쇄로 이미 물량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인데 그마저도 “삼성에 찍히면 끊길 것”이라고 했다. 모자이크, 음성변조를 해도 색출되고야 말거라는 짙은 두려움이 그들의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5년 전 삼성전자 광주사업장에서 생산라인 해외이전으로 숱한 업체들이 폐업하고 근로자들이 실직하며 지역 경제가 크게 휘청거렸는데도 그렇게 조용했던 이유가 뭔지 그제야 짐작이 갔다. 갑의 침묵과 을의 침묵. 비록 한쪽은 이미 커다란 이윤을 더 부풀리기 위한 여유 있는 침묵이었고, 한쪽은 얼마 안 되는 이윤이라도 지켜보겠다는 필사적인 침묵이었지만. 입 다문 협력업체들을 뒤로 하고 삼성은 이번에도 유유히, 그리고 조용히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인건비 문제로 대기업이 생산라인을 베트남 등 해외로 이전하는 건 어떻게 보면 사기업으로서 당연한 행위였지만, 지역에서 반대 여론이 일어 시끄러워질까봐 지역 경제계가 대비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이전 시점마저 감추는 건 지나치게 비겁했다. 함께 호흡해온 지역 경제계가 어떻게 망가지든, 대기업으로서의 최소한의 사회적 책무조차 지지 않으려는 모습이었다.
 
답은 현장에 있었다
답답했던 취재의 숨통을 틔워준 건 단독 입수한 광주시청의 내부 문건과 끈질긴 현장 취재로 적발한 생산라인 이전 현장이었다. 광주시의 내부 문건에는 광주MBC의 취재를 통해 라인 이전이 확인된 냉장고 이외에도 세탁기, 에어컨 라인도 추가 이전을 앞두고 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삼성은 또다시 모든 내용을 부인하고 나섰지만, 취재진은 삼성전자가 생산라인 설비를 옮겨 수출 포장업체에서 포장하고 있는 현장을 포착해냈다. 현장에서 다른 라인의 추가 이전도 함께 발견했다. 동고동락해온 지역의 소기업과 근로자들을 기만하고 다시 한 번 해외로 조용히 빠져나가려 한 삼성의 비밀행보는 그때 완전히 막을 내렸다. 거짓말을 들킨 뒤 비난 여론에 떠밀려 지자체와의 상생협상 테이블에 오른 삼성은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한 달 간 18번이나 이어졌던 이 보도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번 보도를 하며 삼성이 비밀주의를 고수하며 지키고 싶어 한 영업이익 뒤에 가려져 있던 지역 중소기업들의 눈물과 한숨, 두려움과 절망을 목격했다. 그곳에는 특근이 줄어 버는 돈도 줄어든 사람들, 일감이 없어 더 이상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 도산해서 재기하지 못할까봐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있었다.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이 잠시 뒤로 돌아 그 사람들을 함께 봐주길 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