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회 지역보도부문 뉴스상_일 시키고 돈 빼앗고… 新 노예 청소년 택배 아르바이트_TJB 대전방송 채효진 기자

브로커 형한테 끌려가 밤샘 알바 착취를 당했다고?”
기말고사 시험 기간이던 지난해 7월. 14살 중학생 김 군을 만난 곳은 병원이었습니다. 허리를 심하게 다쳐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자초지종을 묻는 기자에게 김 군은 충격적인 사연을 털어놓았습니다. “처음 본 형들에게 강제로 끌려가 밤샘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겁니다. 심지어 “12시간을 일하고 받은 돈 5만 원 마저 형들에게 모두 빼앗겼다”고 했습니다. 후배들을 때리고 협박해 일을 시키고 일당까지 뜯어가는 ‘브로커 형’들의 횡포가 갈수록 심해진다며 어린 소년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실 택배 아르바이트의 암담한 현실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2013년 11월, 기자가 대전과 세종에 있는 물류센터에 잠입해 청소년 착취의 온상을 고발한 바 있습니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시급, 가짜 주민번호를 내세운 불법 고용, 근로계약서나 산재보험은 안중에도 없는 현실을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2년 만에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졌습니다. 열악한 근로 환경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청소년 강제 노역장으로 전락한 겁니다. ‘현대판 노예’나 다름없는 청소년 택배 아르바이트,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었고 이 문제를 뿌리 뽑겠다는 각오로 심층 취재에 착수했습니다.
하지만 취재는 난항 그 자체였습니다. 먼저 김 군의 진술을 토대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지만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다 큰 중학생이 설마 그 먼 곳까지 끌려갔겠냐”며 오히려 기자에게 눈총을 주었습니다. 김 군의 학교는 한 술 더 떴습니다. ‘선후배 강제 노역’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대책을 세우기는커녕 소문이라도 날까 쉬쉬하기에 바빴습니다. 무책임한 어른들에게 상처받은 김 군에게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결국 취재진은 김 군을 어렵게 설득해 SNS와 문자메시지 등 용역 브로커 증거자료들을 모조리 수집했습니다. 또 피해를 당한 학생들의 진술서를 확보해 경찰, 교육청, 노동청에 직접 제출했습니다.
 
택배 알바 브로커 조직일망타진중고생 80여 명 8백만 원 뜯겨
기자가 두 달을 매달린 끝에 충격적인 사실이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마치 피라미드처럼 조직적으로 꾸며진 ‘택배 아르바이트 브로커’의 실태가 언론에 최초로 공개된 겁니다. 필두에 선 우두머리 2명은 폭력조직에 몸담은 학교 밖 청소년들이었습니다. 택배 업체의 재하청 격인 불법 직업소개소와 손잡고 날마다 10대 아르바이트생들을 데려오기로 약속했습니다. 우두머리의 지시를 받은 브로커 두세 명을 거쳐 아르바이트생을 구하지 못하면, 길거리나 PC방에서 만난 하급생들을 협박해 택배 물류센터로 끌고 갔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밤샘 아르바이트 착취를 당한 학생은 80여 명, 뜯긴 돈은 경찰 추산만 8백만 원에 달했습니다. 결국 우두머리 2명은 구속됐고, 브로커 20명이 입건돼 검찰 조사를 받고 있습니다.
보도가 나간 뒤, 모르쇠로 일관하던 김 군의 학교는 뒤늦게 학교폭력자치위원회를 열고 가해 학생 2명에게 처분을 내렸습니다. 보도 이후 방송사와 교육당국에는 “내 자식도 피해를 당할까 두렵다”며 대책을 촉구하는 학부모들의 민원이 끊임없이 쏟아졌습니다. 결국 지난해 9월 대전 교육청 학생생활교육과가 대전지역 모든 초, 중, 고등학교를 대상으로 일제 조사를 실시하고 ‘현대판 노예’ 실태 파악에 나섰습니다. 그 결과 중학생 51명, 고등학생 139명이 ‘택배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다’고 했고, 이 가운데 27명은 ‘일을 강요받거나 금품을 갈취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경찰 조사를 받은 피의자들을 제외하고, 교육청 설문을 통해 브로커 7명이 추가 적발됐습니다. 교육청은 즉시 가해 학생들에게 출석정지 처분을 내리고, 각 학교에 공문을 보내 택배 아르바이트 착취를 엄격히 감시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또 경찰, 노동청과 함께 대전 물류센터 현장을 점검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수사를 마친 경찰은 지난해 11월, 청소년 아르바이트 착취가 벌어진 택배업체 두 곳을 대전고용노동청에 고발했습니다. 용역 단가를 낮추기 위해 재하도급 업체들을 마구잡이로 양산했고, 결국 죄 없는 학생들이 희생되기까지 관리 감독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였습니다. 한편 노동청은 근로기준법 위반이 아닌, 하청업체와 근로자 사이의 금품 착취에 미처 손길을 뻗지 못했다고 인정했습니다. 택배 업계가 워낙 점조직으로 움직여 단속을 해도 적발하기가 어렵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TJB 보도와 경찰 고발을 접한 뒤, 올해 4월부터 6월까지 ‘기초 고용질서 확립 일제 점검’ 기간에 대전지역 택배업체를 집중 점검하고 취약계층인 청소년들의 근로조건을 보장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대전에서만 20곳 넘는 중, 고등학교에 퍼진 악습을 뿌리 뽑는 일은 기자로서 또 어른으로서의 책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년에 걸친 연속 보도를 통해 택배 아르바이트에 대한 전 국민의 공감과 관심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더 이상 힘없는 ‘김 군’이 눈물 흘리는 일이 없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