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회 이달의 방송기자상 뉴스부문_인천 11살 여아 아동학대 사건_MBC 이준희 기자

“11살 여자아이가 집을 탈출했어요
제보는 짧았습니다. ‘인천 연수구에서 11살 여자아이가 세탁실에 갇혀 있다가 계모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 집을 탈출했다’. 어떻게 학대했고, 기간은 얼마인지, 또 친아버지는 뭘 했는지 등 많은 내용이 빠져 있었습니다. 제보가 전부 사실이라고 해도 학대를 한 당사자들이나 아이는 만날 방법은 없었습니다. 기댈 곳이라고는 경찰, 그리고 아이의 탈출을 도와준 슈퍼 주인뿐이었습니다. 정공법으로 먼저 경찰서를 찾아갔습니다. 안 그래도 여성‧청소년 관련 수사는 경찰에서도 굉장히 민감해 하는 분야인데, 학대 피해자는 여성인 데다 청소년(아동)이었습니다. 경찰은 망설였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아이를 위한 일이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라며 관계자를 장시간 설득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입을 열었습니다.
 
다음은 슈퍼 주인입니다. 제보자의 말을 바탕으로 일대 슈퍼를 뒤졌습니다. 어둑어둑해져서야 아이가 탈출한 슈퍼를 찾아냈습니다. 마치 민둥산에서 산삼을 찾은 것처럼 기뻤습니다. 그런데 전화기 너머로 묻는 슈퍼 주인의 첫 질문이 제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아이는 고아원에 잘 들어갔나요?” 아이는 혹시라도 자기를 집에 되돌려 보낼까 봐 보육시설에서 도망쳤다고 거짓말을 한 겁니다. 지옥과도 같은 그곳에서 A양은 맨발로 가스배관을 타고 탈출했습니다. 어른 3명은 2년 넘게 아이를 굶기고, 가두고, 때렸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이를 세상에 내어놓은 당사자, 바로 친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작년 12월 19일 MBC 뉴스데스크를 통해 ‘16kg 소녀’의 사연이 처음 공개됐습니다.
 
학교는 정말 몰랐던 것일까?”
취재 과정에서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과연 학교는 학대 사실을 몰랐을까?’. 이 정도 상황이라면 분명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입으로, 눈으로, 아니면 시퍼렇게 멍이 든 온몸으로 구조 신호를 보냈을 테니까요. 그리고 만약 아이가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면, 이상하게 생각한 누군가가 틀림없이 아이를 찾으러 오지 않았을까 했습니다. ‘초등학교는 의무교육 과정’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는 학대 사실을 숨기기 위해 A양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고 학교–주민센터-교육 당국으로 이어지는 헐거운 우리의 감시 시스템은 결국 A양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취재과정에서 알게 된 한 교육당국 관계자는 이렇게 털어놨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학교에 아이를 안 보냈을 때 부모를 제지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습니다.”
 
대한민국 모든 언론이 주목한 부분도 바로 여기였습니다. 사람들은 A양이 우리 주변에 살고 있었고, 이대로라면 제2, 제3의 A양이 나와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에 경악했습니다. 결국 사회부총리와 국무총리, 대통령까지 나서서 제도 개선을 지시했고, 교육부는 뒤늦게 장기결석 아동 전수조사에 들어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부천 초등생 시신훼손 사건’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첫 보도가 나간 지 한 달이 좀 넘었습니다. ‘학교 밖 학대 아동’을 찾기 위해 경찰 등 행정력이 동원되고 있고, 담임 선생님이 장기 결석 아동에 대한 실종 신고를 할 수 있게 하는 내용 등을 담은 제도 개선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의 관심입니다. 아무리 법과 제도가 완벽하게 바뀐다고 해도 학교가, 이웃이 ‘별일 아니겠지’라며 대충 넘겨버린다면 언제든 또 다른 A양은 다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번 보도가 그러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미약하게나마 기여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예쁠 나이인 A양이 이른 시일 안에 또래 친구들과 같은 건강한 웃음을 되찾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