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회 기획보도부문_시사기획 창-일감은 공정한가_KBS 김범준 기자

재벌의 성역화(化), 갈수록 높은 벽
 
너무 늦은 취재, 그만큼 무뎠다
“일감 몰아주기? 그게 무슨 뜻이었지? 안 좋은 말인 것 같은데, 경제 관련된 용어 아닌가? 재벌 뉴스에서 들어본 것 같은데….”
‘일감 몰아주기’를 취재하겠다는 말에 대부분 비슷한 반응이었습니다. “재벌 관련된 문제 아냐? 근데 정확히 뭔지는 잘 모르겠네….” 대개 이랬습니다. 솔직히 고백건대, 저 자신도 잘 몰랐습니다. 정의가 무엇이고, 무슨 이슈가 숨어있는지 어렴풋하게만 짐작했을 뿐입니다. 뭔가 중요한 주제일 것 같은데 깊이 알지 못한다는 아쉬움, 취재는 거기서 시작됐습니다.
일감 몰아주기는 이름보다 현상이 앞섰습니다. 재벌 계열사끼리 내부 거래를 하면서, 그 이익을 총수 일가에게 집중시키는 문제가 2000년대 들어 서서히 커진 거죠. 2004년 10월 4일, 일감 몰아주기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합니다. 2014년에야 정부는 규제에 들어갑니다. 너무도 굼뜬 대응이었습니다. 그 사이 10년 동안 속된 말로 ‘해먹을 놈은 다 해먹은’ 사례가 허다했을 겁니다.
‘그래도 다행이다. 뒤늦게나마 규제가 생겼으니….’ 대개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정부도, 국회도, 언론도 말이죠. 그런데 실상은 달랐습니다. 규제 이후에도 일감 몰아주기의 본질적 폐해는 거의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재벌 입장에서 보자면 다소 ‘불편’해졌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심층 취재는 규제 시행 전에 봇물 터지듯 쏟아져야 했습니다. 그래야 규제가 더 촘촘해졌을 겁니다.
미력한 취재력이나마 비판의 날을 세워보려 노력했지만, 사실 실익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이미 규제는 허술하게 시행됐고, 총수 일가의 이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비판이 공허하고 무뎠다고 부끄럽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재벌의 벽, 갈수록 높다
재벌 비판을 기사화할 때 항상 듣는 반론이 있습니다. 재벌의 우리 경제의 주축이다. 경제 성장의 공이 크다. 재벌이 흔들리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 우리 경제에서 재벌이 차지하는 엄청난 비중을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이 있습니다. 현 정부를 포함해 모든 정부가 너나없이 재벌개혁을 외쳤죠. 하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현재 30대 재벌이 가진 자산은 국내 GDP의 100% 수준입니다. 2005년에는 50% 수준이었는데 말입니다. 재벌의 부가 10년 새 두 배 증가한 겁니다. 그 기간은 일감 몰아주기에 아무런 규제가 없었던 시기와 거의 일치합니다.
재벌의 성장 덕에 누군가는 부자가 됐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벌의 벽도 날로 높아지고 있습니다. 포털에 가봅시다. 재벌 관련 뉴스를 검색해 봅시다. 재벌을 비판하는 기사가 얼마나 있나요. 반대로 재벌을 띄우는 기사는 얼마나 있나요. 또, 재벌 총수 개개인을 ‘셀럽’으로 다루는 가십성 기사는 얼마나 되나요. 재벌에 대한 언론 보도의 행태는 날로 퇴행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재벌을 긍정하건 부정하건, 그건 개개인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부정하기 힘든 점이 있습니다. 가정이건, 사회건, 국가건 힘이 한쪽으로 쏠리면 건강할 수 없습니다. 부가 한쪽으로 쏠리는 경제가 절대 건강할 리 없습니다. 더 많은 이가 어디선가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그 쏠림을 견제할 힘마저 갈수록 잃고 있습니다. 재벌의 돈이 높은 벽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알지만, 외면하고 있는 불편한 진실입니다.
별 볼 일 없는 기사에 과분한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미력하나마 더 노력하겠습니다. 절망과 냉소에 빠지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