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회 뉴스부문_국회 산자위원장, 의원실에 카드 단말기 놓고 공기업에 책 불법 판매_뉴스타파 황일송, 최윤원, 정지성, 김수영 기자

특종을 해놓고서 마음이 착잡한 이유
 
미친 듯이 쏟아졌다. ‘국회 산자위원장인 노영민 의원이 카드단말기를 두고 공기업에 불법으로 책을 팔았다’는 뉴스타파의 특종이 신문과 방송을 가리지 않고 재생산됐다.
처음엔 뿌듯했다. 꼬박 3주 동안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200여명의 공기업 관계자들에게 일일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등 힘들게 취재했던 그간의 노력을 보상 받는 듯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이 착잡해졌다.
물론 엽기적인 사건이다. 노영민 의원실은 책을 팔기 위해 의원 사무실에 불법으로 카드 결제 단말기를 설치하고, 출판사 명의를 도용해 가공의 전자계산서를 발행했다. 노 의원은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지만, 책값으로 받은 돈은 고스란히 그의 호주머니로 들어갔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이 사리사욕을 챙기기 위해 법을 어기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짓이다.
또 산자위 소관 공기업들에게 각각 수십에서 수백만 원의 목표액수를 할당하고, 책을 사도록 강요한 것 역시 비난 받아 마땅하다.
광물자원공사와 석탄공사, 한국전력 자회사 등 여러 공기업들이 책값으로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을 지불했다. 하지만 책을 받았다는 공기업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책을 사지 않고 돈만 건넸다면 뇌물공여 및 수뢰로 양쪽 모두 처벌받을 수 있다.
현역 3선 의원의 이같은 불법 행위는 분명 기삿거리다. 뉴스타파의 첫 보도가 나간 뒤 48시간 동안 주요 일간지와 방송에 보도된 노영민 의원의 책 불법 판매 관련 기사는 모두 241건이다. 국민일보가 가장 많은 21건의 기사를 양산했고, MBN(20건), 조선일보(20건), YTN(19건), 동아일보(18건), 연합뉴스(18건) 등의 순이었다. 보수성향의 매체 6곳에서 생산된 기사가 거의 절반을 차지한 것. 이는 경향신문(3건), 서울신문(4건), 한국일보(4건) 등과 비교하면 대여섯 배 많다.
찜찜했다. 대체 보수 성향의 매체들은 어떤 이유에서 노영민 의원 관련 기사를 양산했을까?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평소엔 거들떠보지 않는 조선일보를 꼼꼼히 살펴봤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지난 12월 2일자 조선일보 5면. 이 신문은 한 개 면을 털어 노영민 의원 관련 기사로 채웠다. 이 신문은 “을(乙)을 위한 정당을 표방했지만 정작 자기 당 의원들의 갑질 논란에 대해 질책하지 않았다. 말과 행동이 다른 야당 모습을 드러냈다”며 새정치민주연합 전체를 싸잡아 비판했다.
 
악의적인 편집도 보였다. 조선일보는 같은 면에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독거노인을 방문해 위로하며 활짝 웃는 모습의 사진을 함께 실었다. 야당 의원들의 갑질 행태와 문재인 대표의 연관성을 부각시키며 조롱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교묘한 사진배치다. 보수성향의 다른 매체들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국민일보는 노 의원이 문재인 대표의 최측근 인사라는 점을 줄곧 강조했다. 동아일보는 ‘문 대표, 노영민 건 흐지부지 처리하면 진짜 콩가루 당’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로 문 대표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정작 중요한 건 빠졌다. 당장 내년에 국민 혈세를 투입하지 않으면 독자 생존이 어려울 정도로 경영위기를 겪고 있는 광물자원공사가 필요 없는 시집을 구입하기 위해 예산을 낭비한 것에 대한 따끔한 질책은 없었다. 각 공기업들이 가짜 영수증으로 발급받아 책값 구입대금을 부정하게 회계 처리하는 것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없었다. 오히려 방만 경영으로 수십조원의 국부 손실을 입힌 공기업들을 불쌍한 ‘을’로 지칭했다.
 
그들의 잣대는 분명 달랐다. 지난 4일 새누리당 박대동 의원이 비서관에게 월급 상납을 요구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하지만 동아일보는 단 한 줄의 기사도 쓰지 않고 어물쩍 넘어갔다. 사흘 뒤 박 의원이 공식 기자회견을 열어 해명에 나서자, 기다렸다는 듯 ‘박대동 국회의원 비서관 월급 상납 논란에 ’그렇게 파렴치한 사람 아니다‘는 제목을 달아 해명을 충실히 실었다. 또 새누리당 지도부에 대해서는 ‘與 ‘박대동 논란’ 두루뭉술 넘어가나‘는 점잖은 제목을 달았다. ‘노영민 의원 문제에 침묵하는 건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싸잡아 비난하던 일주일 전 보도 태도와는 천양지차였다.
 
악용됐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야당의 부도덕성을 선전하는데 뉴스타파 기사가 이용됐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기자가 특종을 하고서도 마냥 기뻐하기보다 마음이 착잡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