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회 기획보도부문_시사기획 창-노동위 심층 보고서-누가 심판하는가_KBS 이재석, 정창화, 강희준

무엇이 생활 밀착형인가?
 
‘시사기획 창’을 만드는 탐사제작부에 오면서 한 가지 바람이 있었다. 노동 아이템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거였다. 이른바 ‘전형성’에서 탈피한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동안 방송사의 기획보도들 가운데 노동 아이템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물론 우리 방송 현실에서 그마저도 매우 적었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뭔가 ‘데이터 분석’을 통한 계량적 접근은 시도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는 운이 좋았다. 알다시피 데이터 분석이라는 게 머릿속에 갖고 있는 가설이 데이터로 ‘현상’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운이 좀 따라줘야 하는 것이다. 물론 아이템을 택하는 착상 단계에서 가설이 입증될 확률이 높은 것에 먼저 시도를 걸어보긴 하지만, 그 분석 결과가 방송이 가능한 수준까지 도달할는지는 사전에 장담할 수 없다.
 
사실상의 법원 노동위원회
노동위원회는 중요한 곳이다. 노동자가 해고를 당하면 그 해고가 정당한지 부당한지 판정하는 ‘심판’ 기능, 그리고 노사 분규가 생기면 그걸 ‘조정’하는 기능, 이렇게 크게 두 가지 역할을 한다. 1년에 대략 만 건 이상의 해고·징계 사건이 전국 12개 지방노동위원회에 들어온다. 이 가운데 법원 소송으로까지 이어지는 건 채 5%가 되지 않는다. 95% 이상은 ‘지노위’, ‘중노위’ 단계에서 어떻게든 결론이 난다. 노동위원회가 사실상 법원이란 얘기다. 성과가 낮은 사람도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일반해고’를 새로 도입하겠다는 게 정부 입장인데, 이렇게 되면 노동위원회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법원에 판사가 있듯, 노동위원회에는 ‘공익위원’이 있다. 이들이 부당해고 여부를 판정한다. 해고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다. 정말로 해고자들은 죽기도 한다. 쌍용차만 떠올려 봐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판단을 하는 공익위원들은 누구일까. 어떤 사람들이 공익위원이 되는 것일까. 이들의 판정에는 문제가 없는 것일까. 취재진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중앙노동위원회가 보유 중인 해고·징계 사건 6,537건을 입수해 분석했다. 2008년부터 2014년까지 중노위에서 판정이 내려진 해고·징계 사건 전체다. 사실 처음에는 12개 지방노동위원회까지 분석 대상에 포함해 보려고 했다. 모르긴 몰라도 취재진이 애초 세웠던 ‘가설’이 더욱 선명하게 입증될 거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중노위보다 지노위의 문제점이 한층 더 심각하다는 게 현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그렇게까지 분석 범위를 넓히지 못한 것은 예정된 방송 시점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번 방송을 통해서 ‘딴 건 몰라도’ 재심 판정 기관인 중앙노동위원회만이라도 좀 개선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뾰족한 문제의식을 던져보고 싶었다. 어차피 현실적으로 단기적 처방을 만들 수 있는 주체는 관계자들이다. 노사정 삼자, 그러니까 노동계와 경총, 그리고 노동위원회인데 이들에게 좀 더 명료하고 초점이 맞춰진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중앙노동위원회만이라도 바꿔 봅시다.”
 
너도나도 생활 밀착형을 말하지만
취재진이 방송에서 지적한 문제의식에 대해 중노위는 구체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원론적인 반응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일단은 그 방법밖에는 없다. 방송에서는 본질적인 대안 차원에서, 또 시청자들에게 이른바 ‘노동 선진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환기 차원에서 독일의 노동법원을 소개했지만, 그게 한국에서 당장 마련되기 힘든 게 현실이라면 결국 노사정 삼자가 머리를 맞대고 노동위원회 운영 방향을 고민해보는 수밖에 없다. 탐사보도가 궁극적으로 어떤 ‘제도적 개선’을 목적한다면, 이번 방송이 ‘약간’은 그 계기를 마련한 것도 같아서 괜히 자평도 해보고 그렇다.
방송 뉴스는 요즘 너도나도 ‘생활 밀착형’ 아이템을 주문한다. 노동 이슈만큼 우리 삶을 좌우하는 것도 없을 텐데, 방송에서 다루는 노동이란 그저 집회·시위·파업·충돌이 전부다. 그것만이라도 꼼꼼하고 충실하게 다뤄준다면 좋겠지만 언감생심이고, 간혹 다루는 경우마저도 피상적 진단에 그치고 만다. 아니, 이 말도 잘못된 말이다. 피상적 진단은커녕 사실상 정부나 재계의 논리만 ‘선전’될 때가 많다. 생활 밀착형 아이템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가 말하는 생활 밀착형 아이템이란 그저 반쪽짜리에 불과한 것이거나, 뜨거운 사회적 쟁점을 깊숙이 다루지 않는 일종의 ‘회피 전략’에 동원되는 오염된 단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