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회 뉴스부문_국정 교과서 예비비 단독 연속보도_MBN 이성식 기자

* ‘취재원의 전화 한 통’…야당 뿐 아니라 모든 언론 ‘헛다리’ 짚고 있다니
교육부는 9월 12일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 방침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일주일이 지난 9월 19일 야당은 예산 심의 과정에서 해당 예산을 한 푼도 반영할 수 없다고 반발하고, 여당은 그렇다면 예비비라도 편성해서 추진하겠다며 맞서던 시점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취재원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이미 지난달 13일 국무회의에서 예비비 44억 원이 의결돼 시끄러울 것 같다며 걱정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야당뿐 아니라 전 언론이 ‘헛다리를 집고 있는 상황’인지라 귀가 의심스러웠습니다. 앞서 황우여 교육부 장관은 지난 8일 국정감사에서 국정화가 정해지지 않았다고 얘기한 상황에서 불과 일주일 만에 예산집행까지 마쳤다는 건 믿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취재원은 오래 관계를 이어와 신뢰할 수 있는 사이였고, 또 해당 정보를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일단 출입처인 새정치민주연합 예결위원들을 접촉해봤습니다. 문제점은 무턱대고 여러 사람에게 팩트를 확인하다보면 정보가 샐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쩍 ‘간을 보는 식’으로 물어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한 군데 의원실에서 저와 같은 정보를 입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현재 교육부와 기획재정부 예산실에 사실 확인을 위한 공문을 보내놓고 기다리고 있는데 공무원들이 일체 연락을 받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육부 관계자에게 확인을 시도했습니다. 공무원의 특성상 안면조차 없는 기자에게 순순히 사실을 인정해주지 않을 가능성이 컸습니다. 짧은 통화에서 팩트를 확인해야 했기 때문에 긴장하며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 관계자는 다른 질문에 (공무원 특유의) 무성의한 답변을 내놓다가, 예산과 예비비 관련 질문을 하니 부정을 하지 않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며 전화를 급히 끊었습니다.
데스크에게 상황을 보고한 뒤 논의한 결과 예비비 의결에 대한 기사를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정부의 행정 과정에는 예산이 필요하고, 이는 국회로부터 견제를 받습니다. 국정화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이 과정을 생략하고, 예비비를 편성해 일단 사업 추진을 시작한 것은 일종의 ‘꼼수’라는 비판을 들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었습니다.
기사를 작성한 뒤 궁금증은 ‘왜 정부가 이렇게 급히, 또 비밀리에 예산을 집행했을까’로 모아졌습니다. 한 야당 의원으로부터 예비비 44억 원 가운데 20억 원 이상이 홍보비로 사용됐다는 의혹을 접했습니다. 이후 10월 초 일간지 1면에 실린 국정화 홍보 광고비용도 바로 이 예비비에서 사용됐다는 의혹까지 제기했습니다.
 
* 예비비 44억 원에 국회 ‘올스톱’
기사 보도 이튿날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회의 예산심사가 있었고, 여기 참석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예비비가 의결된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이후 ‘예비비’ 논란은 예산 국회 최대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예산 심사 과정에서 예비비의 내역을 밝히라는 야당 요구에 정부는 난색을 표했습니다. 야당은 예측 못할 재해나 긴급 구호 등에 쓰여야 하는 예비비를 국정교과서 개발에 투입한 것부터 ‘국가재정법’ 위반이라며 공세를 취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국회 입법조사처도 “국정교과서 예비비는 목적의 타당성과 긴급성이 없고, 교육부 관련 예산으로 이·전용이 가능해 불가피성도 없다”면서 “정부가 예비비를 자의적으로 편성했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정부는 “예비비 내역을 공개한 선례가 없어 제출할 수 없다”고 버텼지만, 야당은 정부의 입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을 제기하면서 정부의 ‘거짓 답변’ 논란으로 이어졌습니다. 야당은 이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를 이어가며 법정 대응까지 검토하고 있습니다.
야당의 거듭된 공세에 여당은 과거 참여정부 당시 노무현 대통령도 확정고시가 나기 전에 기자실 통폐합에 예비비 55억 원을 사용하지 않았냐고 반문했습니다. 일종의 ‘물타기’ 전략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텐데 이러한 여당의 논리에 상당한 실망감이 들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은 예비비에 대한 사용 중지 촉구 결의안을 내며 강도 높게 비판했기 때문입니다. ‘자가당착’에 빠진 겁니다.
국회의 가장 큰 권리이자 의무는 정부의 예산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일입니다. 국민의 혈세가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찬반이 팽행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예비비’를 사용하기로 한 것은 정당한 절차를 피해가려 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국정교과서에 대한 찬반 여론은 보도 이전까지는 반반 정도를 기록했는데 공교롭게도 예비비 의결 보도가 나간 직후 발표된 여론조사부터 반대 여론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