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6회 기획보도부문_뉴스토리-현대판 추노, 죽은 빚도 받아낸다_SBS 박원경 기자

상식은 어쩌다 상식이 됐나?
 
엄태웅과 주원이 주연한 ‘특수본’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비리 경찰의 죽음과 관련해 강력 형사인 엄태웅과 범죄심리학자인 주원이 호흡을 맞춰 수사하다 보니 더 큰 비리가 똬리를 틀고 있더라는 것이 주된 내용입니다.
 
지난 8월 출범한 ‘주빌리 은행’ 소식을 접하면서, 그리고 주빌리 은행에 대한 사람들의 비판을 들으면서 4년 전 개봉된 영화 특수본이 생각났습니다. 주빌리 은행은 악성 채무에 시달리는 저소득 채무자의 채권을 매입해 소각시켜주는 사회적 은행입니다. 서울시와 성남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들이 협력하고 있죠.
 
그런데 이 은행이 출범하자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빚을 소각해 주면, ‘빌린 돈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상식이 위협 받을 수 있다는 거죠. 이에 대해 주빌리 은행 측은 저소득 채무자들의 빚에서 해방시키면 그들의 소비가 늘어나 오히려 경제에 도움이 된다, 왜 돈을 빌려준 사람의 책임은 묻지 않고 돈을 빌린 사람에게만 책임을 묻는 거냐고 맞섰습니다. 영화 ‘특수본’이 생각난 것은 이 지점이었습니다.
영화 ‘특수본’에는 한 대부업체가 등장합니다. 장사가 안 돼 힘들어 하는 사람들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돈을 빌려주고, 결국에는 상인들의 가게를 빼앗는 악덕업체죠.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은 해당 업체의 탐욕을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빌린 돈은 무조건 갚아야 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빌려준다는 대부업체들의 광고가 미디어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택시도 타야한다거나, 아무한테도 못 하고는 고민을 들어준다, 여자나 사회 초년생은 더 우대해 준다며 사람들에게 접근하고 있죠. 그들의 접근에, 그리고 절박함에 돈을 빌렸다가 삶을 저당 잡힌 사람이 숱하게 많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영화 관객과 달랐습니다.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한다.”, “능력도 없으면서 왜 돈을 빌리냐.”는 비판이 주를 이뤘습니다. “능력도 없는 사람들에게 왜 돈을 빌려주느냐”, “채무자의 삶을 파탄내기 위한 약탈적 대출 아니냐”는 목소리는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영화를 본 관객과 채무자를 나무라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이 아닐 텐데 왜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우리 현실이 영화와 다르지 않음을 실감나게 보여주자.’, ‘그리고 정부가 이런 현실을 개선하겠다고 내어놓은 대책들이 실효성이 있는지 검토해 보자.’ 이런 취지에서 취재가 시작됐습니다.
 
◈돈을 빌려 준 사람의 책임은 없나?
 
시효가 만료된 채권을 사들어 온갖 방법으로 시효를 살린 뒤 추심에 나선 대부업체들의 행태, 정부가 만성 채무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구제하기 위해 만든 국민행복기금이 전문 추심업체들을 통해 추심을 하고 있는 실태, 자신의 채권을 지금 누가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힘들어하고 있는 채무자들의 현실 등을 고발했습니다. 지극히 채권자 위주로 되어 있지만, 채무자보다는 더욱 채권자 보호에 기울어 있는 사람들의 인식에 경종을 울려보자는 취지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취지가 충분히 실현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방송에 공감해 주는 분들도 많았지만, “그래서 빌린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냐.”, “도덕적 해이를 부추긴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습니다. 더 세밀하게 취재하지 못 한, 더 소구력 있게 내용 전달을 하지 못한 제 책임입니다. 이번 상은 더 열심히 취재해서, 더 자세히 소식을 전하라는 격려의 의미인 것 같습니다.
 
취재 과정에서 고생을 많이 한 공진구 영상취재기자와 작가들, 상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주제임에도 격려와 지지를 아까지 않은 고철종 부장과 김석재 데스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또, 취재 과정에서 여러 문제에 대한 조언을 해 주신 학자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항상 걱정하고 응원해 주시는 부모님과 든든한 지원군인 아내, 언제나 웃음 짓게 만들어 주는 어린 아들에게 수상의 기쁨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