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회 기획보도부문_두 줄 서기 캠페인 폐지_YTN 한동오 기자

 
YTN 국민신문고, 첫 북을 울리다!
“YTN에 시사 제작 프로그램이 있다고?”
그렇습니다. 잘 모르셨죠? 저도 참 신기한데요. ‘YTN 국민신문고’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일반 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생활밀착형 문제를 집중 보도합니다. 특이한 점은 대안 제시, 즉 그 문제를 방송을 통해 반드시 고쳐야 한다는 겁니다. 안 고쳐지면 고쳐질 때까지 계속 방송합니다. 무려 생방송이라 시청자 문자를 실시간으로 받아 내보내고, 들어온 문자 수 만큼 YTN이 기부합니다. 착한 방송이죠? 지난 7월 9일 첫 방송을 시작했으니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기입니다.
첫 방송이 ‘에스컬레이터 두 줄 서기 캠페인’이었습니다. 왜 하필 두 줄 서기였느냐고요? 솔직히 제가 불편했습니다. 매일 지하철 타는 제가 불편하면 다른 사람도 불편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지하철 탑승객 대부분은 한 줄 서기를 합니다. 하지만 캠페인은 정반대였습니다. 에스컬레이터 주변에는 두 줄 서기를 하라는 지하철 운영사의 홍보 스티커가 붙어 있고, 안내방송도 계속 나옵니다. 혹시 에스컬레이터 왼쪽에 서보셨나요? 뒷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뒤통수에 느껴지실 겁니다.
그래서 왜 하는 건지 궁금했습니다. 기기 고장과 안전사고 때문이라고, 지하철 운영사는 주장했습니다. 한 줄로 걸으면 에스컬레이터 기기에 무리가 가 고장 나고, 승객들이 넘어져 다친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YTN의 해외 리포터들을 통해 확인한 결과, 우리나라를 제외한 전 세계 모든 나라는 사실상 한 줄 서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줄 서기 때문에 고장이 나고 사고가 난다면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말이죠. 유독 우리나라만 안전 때문에 두 줄 서기를 한다니, 시대를 너무 앞서나간 선구자 캠페인이었을까요, 사람들의 행동 패턴을 거스르는 멍청한 캠페인이었을까요? 취재에 들어갔습니다.
 
기계에 사람을 맞춰라? 이제는 사람이 먼저다!
관련법을 확인했습니다. 에스컬레이터는 설계할 때부터 법적으로 300kg 이상의 충격을 버틸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현실적으로는 1톤까지 견딜 수 있다는 전문가 진술도 확보했습니다. 지하철 운영사들은 두 줄 서기 캠페인 뒤 사고가 줄었다고 홍보했지만 근거가 없었습니다. 운영사들은 캠페인 전과 후를 비교할 통계 수치도 없었습니다. 국토교통부에 정보 공개를 청구했더니, 에스컬레이터 사고 현황에 대한 수치도 제대로 없었습니다. 인명 피해가 많이 났던 에스컬레이터 사고의 원인도 짚어봤습니다. 중국산 짝퉁 부품을 썼거나 안전장치 결함 때문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하철 역사가 가장 오래된 영국과 질서의식이 강한 일본을 찾아갔습니다. 현실은 모두 한 줄 서기였습니다. 오히려 두 줄 서기 캠페인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저와 짝꿍이던 김혜림 작가는 실험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두 줄 서기를 했을 때 시민이 느끼는 불편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출퇴근 시간에 직접 두 줄로 서서 길목을 막는 ‘길막’을 했습니다. 비켜달라고 말하는 분들은 얌전하신 편이었습니다. 대개는 혀를 차고 어깨로 툭툭 치면서 지나갔습니다. 한 줄 서기를 적극 찬성하시던 한 할아버지는 “지하철 운영사가 하라는 대로 두 줄로 서고~ 똑똑하구먼!”이라고 칭찬도 해주셔서 어깨가 으쓱했습니다.
두 줄 서기 외의 대안을 이끌어내기 위해 정부부처와 지하철 운영사에 출연을 요청했습니다. 대부분 거절했습니다. 코레일을 관리하는 국토교통부는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처음부터 아예 손을 놨습니다. 서울메트로는 방송 당일 출연을 한다, 만다 번복하며 취재진의 힘만 빼고 발도 뺐습니다. 서울도시철도공사 역시 출연을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김상우 국장과 많은 선배가 끝까지 노력해주셔서 결국 에스컬레이터 운영 지침을 담당하는 국민안전처 장관이 섭외됐습니다.
본방송에 박민용 장관이 출연한 뒤, 국민안전처는 TF팀을 만들었습니다. TF팀은 자체 여론조사와 기술 검토, 관련 단체 토론회 등을 통해 한 달 만에 새로운 방침을 정했습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두 줄 서기 캠페인을 결국 폐지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대신 지하철 손잡이를 꼭 잡고 뛰거나 걷지 말라는 안전지침을 홍보하겠다고 했습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걷지 말라는 지침까진 폐기하지 않아 한계는 분명했지만 그래도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기계에 사람을 맞추는 게 아니라 이제는 사람에 기계를 맞추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나아간 셈이었으니까요.
‘캠페인 하나 없어진 게 기삿거리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사실 우리 일상에서 지하철 줄 서기는 사소한 부분이니까요. 하지만 그 사소한 부분이 시민 전체에 해당한다면 얘기는 달라지지 않을까요? 하루 이용객이 천만 명에 달하고, 모든 국민이 이용하는 지하철이니 말입니다. YTN 국민신문고가 지향하는 방향도, 저는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들을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방송, 이제는 그런 방송 하나쯤은 있어도 좋지 않을까요? 방향도 좋고 취재도 좋고 영상 품질도 좋은데, 시청률은 언제쯤 바닥을 벗어날지 모르겠습니다. 나라의 경제를 얘기하다가 날아왔던 파리라도 섭외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