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회 기획보도부문_친일과 망각 4부작_뉴스타파 심인보 기자

“기억하고 기록하라..강요된 망각에 맞서기 위해”
 
뉴스타파는 8개월 동안의 취재를 통해 국가가 공인한 친일파 1,006명의 후손 가운데 1,177명을 찾아냈다. 제작진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말을 하기는 뭐하지만, 지난한 작업이었다. 반민특위 조서에서 발견한 힌트를 단서 삼아 오래된 문서들을 뒤지고, 친일 후손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소송 자료들과 과거 신문의 부고 기사들을 일일이 확인하면서 가계도를 그려나갔다. 그러나 이렇게 확인했다고 해서 그 결과를 신뢰할 수는 없는 법, 실제로 이름과 생년월일, 심지어 이름의 한자까지 똑같은데도 우리가 찾던 후손이 아니라 동명이인이었음이 확인되는 경우가 서너 차례나 있었다. 한 친일파의 손주 며느리와 이름은 물론이고 생년월일까지 똑같은 한 여교수에게 메일을 보냈다가 혼쭐이 났던 기억이 난다. “결혼도 안한 사람한테 뭐 시아버지가 어떻다고요?”
 
지금 와서 이걸 들쑤셔서 어쩌자는 겁니까?”
  이런 과정을 거쳐 확보한 명단을 가지고 친일 후손들과 접촉을 시도했다. 후손들과의 접촉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작업이었다. 연락처나 주소를 알아내기도 쉽지 않았지만 알아낸 뒤에는 더 큰 고민이 남았다. 바로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가 아니라 후손을 상대로 취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연좌제가 폐지된 마당에 친일파의 잘못을 가지고 그 후손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취재할 수 있을까, 그것도 70년이 넘은 일을 가지고. 제작진 사이에서는 서로 전화를 걸어보라며 일을 미루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저.. 선생님의 증조부께서 친일파 명단 1,006명에 포함돼 있는 것은 알고 계시죠?” 라고 말을 꺼내면 “그래서 어쩌라는 겁니까?”라는 식의 반응이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친일한 것 아니지 않습니까?”라든가 “지금에 와서 이걸 들쑤셔서 어쩌자는 겁니까?”라는 반응도 있었다. 이러한 반응 앞에서, 제작진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되물어야 했다. “그래, 우리가 지금 이 작업을 왜 하고 있는 거지?”
 
알려줘야지, 우리가 계속 기억하고 있다는 걸
프로그램 제작 때문에 정신없이 바빴던 지난 7월 말, 영화 ‘암살’이 개봉했다. 제작진은 ‘암살’을 단체 관람하려고 몇 번이나 서로 약속을 잡았지만 너무 바쁜 제작 일정 때문에 끝내 함께 영화를 보지는 못했다. 나는 “친일과 망각” 4부작의 마지막 편 ‘나는 고백한다’가 업로드 되던 날 혼자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봤다. ‘암살’이 친일 청산에 실패한 우리의 뼈아픈 현대사와 정반대의 결말을 그려낸 일종의 ‘판타지’라는 점은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일제의 식민 지배에 협력했던 수많은 ‘강인국’(이경영)과 ‘염석진’(이정재) 들은 처단되지 않았으며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주류로 자리 잡았다. ‘강인국’과 ‘염석진’들은 영화와 달리 대부분 천수를 누리다 평온하게 생을 마감했고, 그 후손들은 우리 사회 각계 각층에 이미 튼튼하게 자리잡았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우리가 친일파 후손들을 찾아내서 보도하기라도 하면 이런 현실이 바뀔 수라도 있다는 것인가? 그런데 비슷한 질문이 영화에도 나온다. “매국노 몇 명 죽인다고 독립이 되나?”라는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의 질문에 안옥윤(전지현)은 이렇게 답한다. “알려줘야지, 우리가 계속 싸우고 있다는 걸” 우리가 연좌제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 프로그램을 만든 이유 역시 안옥윤의 대답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알려줘야지, 우리가 계속 기억하고 있다는 걸”
 
화해와 용서의 전제는 올바른 기억이다.
70년, 세대가 두 세 차례 바뀔 정도로 긴 시간이다. 만약 반민특위가 성공했더라면, 친일에 대한 기억은 역사 교과서 속에만 남아있을 것이다. 후손들 역시 역사적 책임에서 자유로워졌을 것이다. 그러나 반민특위는 실패했고, 그 뒤 수십 년 동안 우리 사회의 집단적 기억에서 친일 문제는 강요된 망각의 어둠 속에 잠들어있었다. 그 사이 친일파들의 후손들은 우리 사회 각계 각층에 주류로 뿌리내렸다. 뉴스타파 ‘친일과 망각’ 팀의 취재 결과, 후손 1,177명 가운데 32%는 이른바 ‘sky’ 대학교 출신이었고 27%는 해외 유학을 다녀왔다. 대학교수가 16%, 의사가 12%, 기업인이 32%였다. 정치인과 법조인, 고위공직자, 언론인도 14%나 됐다. 이제 와서 이들을 처벌하거나 추방할 수는 없다. 이들 역시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합쳐야 할 중요한 구성원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이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
 
‘친일과 망각’ 4부를 보면 알 수 있듯, 친일 후손들이 우리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함께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이들이 선대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의 선대가 친일파로서 민족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기억하고 기록해야 한다. 그래야만 사과도 받을 수 있고 용서도 할 수 있다. 강요된 망각이 계속되는 한, 이들은 현실의 힘을 이용해 역사에서도 ‘승자’의 역할을 하려 할 것이다. 그것이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등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이다.
 
뉴스타파는 비록 작은 독립 언론이지만 올바른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염원이 결집된, 우리 사회의 공적 자산이다. 그래서 뉴스타파는 계속 기억하고 기록하려 한다. 누군가는 감당해야만 하는 이 커다란 역사적 책무를 외면하지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