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3회 뉴스부문_대장균 떡볶이_MBC 홍신영 기자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의 추악한 민낯을 세상에 드러내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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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통의 전화
그날도 시작은 여느 날과 같았다.
간밤에 난 사건 사고를 체크하고 출입처 관련 일정을 챙기고 있는데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자신이 다니고 있는 업체에서 2년 넘게 대장균과 식중독균이 검출된 제품을 그대로 시장에 유통시키고 있다는 내부 고발이었다.
직장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보다 양심의 짐을 이제라도 벗고 싶다는 고백을 들을 때만해도 “영세한 업체에서 사고를 쳤구나” 싶었다. 2년 넘게 대장균과 식중독균 검출이라니.
제보자를 만나 자료를 받기 전까지 아무리 영세한 업체라도 먹는 걸로 장난치는 게 세상에서 가장 나쁜 범죄라는 사실을 알려줘야지 결심했다.
 
# 69년 전통 식품업체의 민낯
두꺼운 서류 뭉치를 받아 보는 순간 당황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영세한 업체. 오히려 그 반대였다. 떡류와 떡볶이류 시장 점유율 1위를 자랑하고 주부들이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69년 전통의 식품업체, 고발 대상은 송학식품이었다.
한 권의 장부에는 위해 요소 검사 결과 제품에서 대장균과 식중독균이 검출됐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었다. 또 다른 장부에서는 똑같은 실험을 실시했는데 정반대의 결과가 기록돼 있었다. 제보자는 정부 기관이나 거래 업체에는 위해 요소가 하나도 검출되지 않은 장부를 제출하거나 보여줬다고 증언했다. 위해 요소가 검출된 장부에는 페이지마다 ‘기밀 서류’ 라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그때부터 증언을 확인하기 위해 전 현직 직원들을 찾아다니며 만났다.
증언과 자료가 늘어날수록 송학식품의 민낯도 서서히 드러났다.
 
# 보도하고 싶었다.
내부 고발자의 증언도 있고, 이를 입증할 근거 자료도 있었다.
지난해 창고에 쌓인 쌀 포대에서 나방 애벌레가 창궐하자 맹독성 살충제로 박멸하고 그 쌀을 폐기처분하지 않고 제품 원료로 사용했다는 증언과 거래 업체가 대장균이 검출돼 반품시킨 제품을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하고 꼼꼼하게(?) 세금 감면 혜택을 챙겼다는 증언도 다른 제보자들을 통해 추가로 확보했다.
보도하고 싶었다. 나만 알고 있는 팩트를 가장 먼저 보도하고 싶은 욕심도 났다.
끝까지 발목을 잡고 결국 나를 주저앉힌 건 단순히 업체의 내부 비리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피해자는 나를 비롯해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다.
섣불리 증언들과 관련 자료 일부를 가지고 보도하면 더 큰 진실이 감추어 질 수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빙산의 일각’이라던 전직 직원의 말도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결국 보도를 유보한 채 경찰에 자료를 제공했고, 제보자들을 보호하면서 수사에 적극 협조했다. 경찰 수사 5개월 만에 증언들은 모두 사실로 밝혀졌고 임직원 13명은 재판을 앞두고 있다.
 
# 마주한 진실을 외면하지 않겠다.
취재 과정이 길었던 만큼 첫 보도, 기사 두 꼭지에는 못 다한 이야기가 참 많다.
그래도 보람을 느끼는 건 취재 과정에서 입버릇처럼 얘기해온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고, 마주한 진실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사실이다.
어려운 사실을 털어놓고 수개월동안 기다려 준 제보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다들 긴 시간 마음고생 했고 직장을 잃은 사람도 있다. 그들의 고백이 공허해 지지 않도록, 진실을 이야기한 것을 후회하지 않도록 앞으로도 치열하게 현장을 누빌 생각이다.
끝으로 믿고 기다려준 데다 ‘시원한 보도’ 까지 책임져 준 사회2부 부장님과 선배들께 감사를 전한다. 또 끊임없는 이슈들 속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보람과 좌절을 오가는 동료와 후배들에게도 더 든든한 동료가 되 주지 못한 미안함과 함께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