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회 지역보도부문 기획보도상_희망퇴직 누구의 희망인가_울산MBC 유희정 기자

우리, 반칙은 하지 맙시다
희망퇴직, 명예퇴직, 권고사직… 이름은 그럴듯합니다. 희망해서, 명예롭게 퇴직한다. 회사가 권유해서 직장을 그만둔다는 건데요. 이 그럴듯한 말들이 국어사전 바깥 세상으로 나오면 뜻이 이상해집니다. 명퇴를 당했다. 권고사직 통보를 받았다. 희망퇴직 대상자가 됐다. 명예로운데 왜 퇴직을 당한다고 하며, 본인이 희망해야 퇴직한다면서 왜 대상자를 정했다는 걸까요?
이런 이상한 일이 울산에서도 벌어졌습니다. 울산에 본사를 둔 대기업, 현대중공업이 올해 초부터 희망퇴직을 실시했습니다. 불과 석 달여만에 천 500여 명이 회사를 떠났는데요. 한 달여 간 취재한 끝에, 여기도 사전 바깥의 세상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 사직서 천 500장, ‘희망해서’ 낸 건 몇 장일까?
현대중공업이 희망퇴직 대상으로 삼은 건 사무직 노동자, 그리고 고졸과 전문대졸 여성 노동자입니다. 사무직이 먼저였습니다. 당신이 대상자로 선정됐다며, 상관이 부르고, 부서장이 부르고, 중역이 불러다 퇴직을 권했습니다. 상당수는 이 ‘집중 면담’ 과정에서 사직서를 냈습니다. 거부하면 그만일까요? 그럼 책상에서 컴퓨터와 전화기가 사라집니다. 그 다음엔 하던 일을 모두 빼앗깁니다. 그리고는 직무 능력 향상 교육이란 걸 받습니다. 강사는 음식점 입지 선정 노하우, 호프집 메뉴 구성과 안주 조리 방법을 가르칩니다.
여직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좋은 말 할 때 나가라, 지금 안 나가면 경기도 용인의 연구소로 발령난다는 ‘집중 면담’이 이어지고, 퇴직을 거부하면 교육을 보냈습니다. 하던 일 대신 설계를 배우라고 했다는데요. 수십 년 설계 부서에서 잔뼈가 굵은 직원에게 교육 명령을 내리는가 하면, 현업에서는 쓰지도 않는 프로그램을 배우라고 시켰다고 합니다. 퇴직을 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납득되지 않는 인사조치가 쏟아진다면, 누가 그걸 ‘희망’퇴직이라고 부를까요?
 
◎ ‘저성과자’라는 낙인
회사는 내보낼 만한 사람을 내보내려 했다는 반응이었습니다. 대상자들은 모두 ‘하자가 있었다’는 건데요. 이 또한 설득력이 부족해 보였습니다. 특히 사무직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1월 사무직을 대상으로 성과연봉제라는 걸 도입했습니다. 직원들의 성과를 A에서 D까지 등급을 나눠 평가하고, 하위 15%인 C와 D등급을 받으면 상여금을 깎는다는 제도였습니다. 그런데 직원들에게 동의서를 받아 가고 나더니, 회사가 갑자기 말을 바꿨습니다. C와 D등급의 비중을 하위 30%까지, 두 배로 늘린 겁니다. 바뀐 제도에 대한 동의 절차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12월에 평가를 강행했고, 바로 그 달부터 상여금을 확 깎더니, 바로 다음 달인 올해 1월, 정확히 이 ‘저성과자’들에게 계속 회사에 남아 임금에 손해를 보느니 위로금을 받고 나가는 게 어떠냐며 희망퇴직을 권유했다는 겁니다. 희망퇴직을 위한 명분 쌓기용으로 성과연봉제를 급조한 것 아니냐는 항의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 차라리 해고를 당했다면…
머리로는 납득이 되지 않고, 가슴으로는 모멸감을 견뎌내야 했던 희망퇴직 대상자들,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하나같이 억울하다는 말부터 꺼냈습니다. 성과연봉제부터 희망퇴직 통보, 집중 면담, 그 이후의 인사 조치까지 어느 하나 억울하지 않은 구석이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비슷한 방식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던 기업들의 사례를 취재해 봤지만, 성과 측정이든 임금 제도, 교육 조치까지, 법적으로는 정당한 경영 활동으로 인정받는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건 희망퇴직 과정에서 모멸감을 견디지 못하고 사직서를 낸 경우입니다. 소송을 제기해도, 스스로 사직서를 썼다는 사실 때문에 소송에서 지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바로 그 점을 기업이 악용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직원을 회사에서 내보내려면 해고만이 합법적인 수단입니다. 하지만 절차가 까다롭고 직원들의 반발도 감내해야 합니다. 그래서 희망퇴직이란 이름을 내걸고 대상자에게 ‘차라리 회사를 나가는게 낫겠다’ 싶게 모멸감을 준 뒤, 사직서를 받아내는 ‘반칙’을 쓴다는 겁니다. 이걸 ‘학대 해고’라고 부르는 전문가도 있었습니다.
 
◎ ‘학대 해고’는 그만
보도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현대중공업은 더 이상 희망퇴직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보도의 효과인지, ‘내보낼 만큼 내보내서’ 그만하는 건지 확신하기는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의 희망퇴직 과정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습니다. 회사를 떠난 사람들이 일터로 돌아오기도 어려워 보입니다. 과감한 고발 보도를 해냈다며 칭찬과 응원을 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무거운 이유입니다.
회사가 늘 잘 나갈 수는 없습니다. 경영난에 시달리면 직원을 내보내야 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반칙을 해서는 안 되겠지요. 이번 보도는 ‘이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면서도 과감하게 회사의 반칙을 고발하고, 내부 자료들을 건네 주셨던 익명의 인터뷰이들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이 상은 용기를 내 카메라 앞에 서 주신 그 분들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