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회 기획보도부문_ 한글 교육의 불편한 진실_EBS 이윤녕 기자

 

학교가 책임지지 않는 한글 교육 이야기

-<집중취재> 한글 교육의 불편한 진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모국어 문자 읽기 교육을 공교육에서 책임지지 않는 나라입니다.”
지난해 가을, 우연히 한 교육시민단체에서 주최한 읽기부진 관련 토론회에 참석했던 나는 한 초등학교 교사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하나 듣게 됐다. 당연히 초등학교에서 차근차근 가르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기초 한글 교육이 현장에서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었다. 요즘 한글 안 배우고 입학하는 아이가 거의 없다는 전제 하에,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알림장과 받아쓰기를 마주하고,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는 첫 장부터 온통 어려운 단어와 문장으로 이뤄져 있었다. 대부분의 수업이 아이들의 한글 해득을 전제로 이뤄지는 바람에 정상적인 교육과정에 맞춰 한글 선행을 하지 않고 온 아이들은 입학과 동시에 ‘부진아’로 낙인찍힌다. 공교육인 학교가 ‘한글 교육’을 책임지지 않으면서 그 부담은 고스란히 가정과 사교육으로 돌아갔다. 이런 가운데 다문화 가정이나 조손가정, 취약계층 등 가정에서 충분한 한글 교육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공교육에서 자신의 모국어조차 제대로 배울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한 두 편의 보도로 바뀔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때부터 나는 ‘제대로’ 마음을 먹고 현장 취재에 착수했다.
철저한 발품으로 완성된 20편의 기획기사
총 20편의 기획기사. 꼬박 6개월이 넘는 취재기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을 일일이 만났고, 국내외 방대한 연구 자료들을 수집해 분석한 결과였다.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어떤 분석기법과 현장 취재도 마다하지 않았다. 서울과 전주 등 초등 교사들이 모이는 대규모 연수 현장을 직접 찾아가 다양한 목소리를 들었고, 한글 읽기 부진 아이들을 찾기 위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담당부서에 모두 전화를 돌렸다. 수 백 명에 달하는 학부모와 초등교사 설문조사를 직접 진행했고, 문제의 원인을 다각적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취재와 섭외는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전국 교육청과 학습 클리닉 센터 전역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사례를 찾았지만 부모의 동이나 학교의 명예 등을 이유로 거절당하기가 일쑤였다. 오랜 설득 끝에 어쩌다 겨우 촬영에 협조하겠다는 연락을 받고서는 하루 만에 비행기를 타고 멀리 지방까지 한달음에 내려간 경우도 있었다. 취재 도중 만난 어느 교장 선생님은 이번 보도에 크게 공감하며 꼭 다뤄달라고 하면서도 읽기 부진과 관련해 우리 학교만은 방송에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학교들이 알고 있으면서도 그동안 드러내지 않고 있던 문제라는 생각에 취재의욕은 더욱 굳건해졌다.
새로운 뉴스 플랫폼 통한 지속적인 이슈화
보도가 나간 후, 사회적인 반향은 기대 이상이었다.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공교육의 한글 교육에 대한 논쟁과 대안이 이어지며 네티즌들 사이에서 활발한 공론의 장이 펼쳐졌고, 블로그들에는 기초 한글 교육과 관련한 개인적인 경험을 풀어가며 교육 당국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방송뉴스로는 언론사 가운데 최초로 시도한 ‘뉴스펀딩’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해당 이슈를 보다 지속적으로 이슈화하려는 노력도 이어졌다. 해당 프로젝트의 연재글은 단 하루만에 1,400건이 넘는 엄청난 공감수를 기록하며 ‘한글 교육’ 이슈를 공론화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동안 수학이나 영어 등 주요 과목에 밀려 언론에서조차 제대로 다뤄진 적이 없었던 ‘기초 한글 교육’이 다양한 뉴스 플랫폼을 통해 다시금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편의 기획보도가 모두 나간 지금, 우리는 또다시 국가교육과정 개정을 앞두고 있다. 수학이나 영어, 역사 등 워낙 이슈가 되는 사안들이 많다보니 상대적으로 국어, 특히 기초 한글 교육에 대해서는 여전히 관심이 적다. 하지만 취재 내내 느꼈던 건 ‘한글’은 모든 학습의 기초가 되는 도구적인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모국어인 한글만큼은 공교육이 반드시 책임지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학교에서가 아니면 자신의 모국어조차 제대로 배울 곳이 없는 다문화 가정이나 조손가정, 취약계층 아이들에게 공교육은 처음이자 마지막 희망이다. 무엇이든 기초가 탄탄하지 않으면 쉽게 무너져 버린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이번 기획보도는 그동안 공교육에서 소홀하게 다뤄지고 있던 기초 한글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번 국가교육과정 개정을 통해 한글 공교육이 하루 빨리 정상화되어, 학교의 울타리 속에서 읽고 쓰지 못해 고통 받는 아이들이 더 이상 없게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