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회 기획보도부문_ '법보다 힘' 협력업체의 눈물 외_KBS 손은혜 기자

건설현장에 있는 ‘을’의 눈물.

‘너무 억울하다. 이대로 그만둘 수는 없다.’ 작은 건설업체들을 운영하고 있는 분을 만났습니다. 한 뭉치씩 들고 오는 서류들 너머로, 소송으로도 공공기관에 대한 호소로도 억울함을 해결할 수 없었다는 그 분들의 눈물이 보였습니다. 하도급의 하도급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우리 건설업계의 구조는 필연적으로 수많은 갑을관계를 만들어냅니다. 이 관계 속에서 누군가는 손해를 입고, 누군가는 이득을 보고 있었습니다. 결코 공정할 수 없는 이 갑을관계의 폐해를 상세하게 보도해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어주고, 관련 법령의 개정에도 힘을 실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싶었습니다.
 
# ‘말로만 하는 계약’의 폐해
‘대금을 다 못받았다. ’중소협력업체 관계자들의 억울함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받을 돈을 못 받았다는 것으로 정리됩니다.
공사현장은 ‘필연적으로’ 추가 공사를 필요로 합니다. 최초 계약과 똑같이 공사가 진행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추가 공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금액 합의를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원사업자가 협력업체들에 준 추가작업지시서를 살펴봤습니다. 얼마만큼의 기간 동안 어떤 공사를 해야 하는 지는 나와 있었지만, 공사 금액은 적혀있지 않았습니다. 원사업자는 협력업체들에게 ‘우선 공사를 빨리 해달라’고 지시합니다. 그리고 추가 공사 금액은 추후에 정산해 주겠다고 ‘구두로’ 약속합니다. 공사 금액에 대한 명확한 합의 없이 추가 공사가 진행되고, 공사가 끝나면 문제가 생깁니다. 협력업체가 추가로 들어갔다고 산출한 금액과, 원사업자가 계산한 공사금액이 전혀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협력업체는 다음 공사 수주를 위해 울며겨자먹기로 원사업자의 계산을 받아들입니다. 협력업체가 도저히 원사업자의 계산법을 따를 수 없다며 심하게 반발하는 경우엔, 중간에 공사계약해지통보를 받기도 합니다. 계약을 해지한 후 원사업자는 ‘무능하고 문제가 많은 업체’라서 어쩔 수 없이 이런 조치를 했다고 항변합니다.
구두로 지시하고, 공사가 끝나고 나서 대금을 결제하는 것은 명백한 법위반입니다. 우리나라 하도급법 3조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원사업자는 수급사업자에게 제조 등의 위탁을 하는 경우에는 하도급대금의 조정요건, 방법 및 절차를 적은 서면을 수급사업자에게 발급하여야 한다.’ 추가 공사의 경우에도 이 법에서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공사 금액을 적은 서면을 양쪽이 주고받아야 합니다. 공사대금의 정확한 추산이 어렵다는 이유로 금액이 적혀있지 않은 작업 지시서를 이용해 추가 공사를 지시하고 협력업체의 문제제기에 ‘줄만큼 줬다’고 맞서는 것은, 법위반입니다.
 
# 공사대금도, 기간도, 계약 해지도, 원사업자 ‘마음대로’
이렇게 국내 건설 협력업체들의 어려움을 보도한 뒤, 여러 협력업체 사장님들이 또 제보를 해왔습니다. 이 가운데 몇몇 사장님들은 해외에서는 사정이 더하다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국내 건설현장이야 국내 하도급법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라도 할 수 있지만, 해외 건설현장의 경우 이런 조치도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건설협력업체의 눈물’ 후속편을 준비하게 됐습니다.
‘이런 계약서도 있을 수 있을까?’ 해외 건설 현장에 참여한 협력업체 사장님들이 가지고 온 계약서들을 보고, 한참을 갸우뚱했습니다. ‘하도급사는 계약 서류에 명기되지 않은 사항이 있더라도 공사를 이행해야 한다. 추가 공사를 할 경우 서면을 발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원청사가 구두로 지시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이에 응해야 한다. 공사 완료 3개월 이내에 하도급 공사금액에 대한 합의를 못하면, 최종 하도급 공사비는 원청업체가 합리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금액을 제시하고 하도급업체는 이를 받아들인다.’ 공사를 시작하고, 진행하고, 끝내고, 돈을 받는, 모든 과정이 원청업체인 대기업에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계약서대로라면, 원청업체가 터무니없는 액수의 공사대금을 주거나, 아예 대금을 안줘도 하청업체가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보였습니다. 이런 계약조건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협력업체 사장님에게 물었습니다. ‘이런 계약을 도대체 왜하죠?’ 사장님은 말했습니다. ‘당장 직원들과 장비를 놀리는 것 보다는 나으니까요. 그리고 다음 공사를 수주하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국내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해외건설현장에서는 불공정 계약이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취재과정에서 원사업자인 대형 건설사들에게 협력업체들의 문제제기에 대해 해명을 요구했습니다. 해명은 단순했습니다. ‘현장 사정상 어쩔 수 없었다. 구두로 모두 합의된 내용이었는데 왜 지금 와서 다른 말을 하느냐.’ 추가 공사 금액에 대한 정산이 다른 부분에 대해서도 협력업체의 셈법은 틀렸고, 자신들은 줄만큼 다줬다고 해명했습니다. 어떤 경우엔 아예 해명자체를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해당 사안이 대한상사중재원에 가있으니 중재결과가 나올 때까지 언론에 어떤 해명도 하지 않겠다는 답변만 앵무새처럼 반복했습니다. 대형 건설사들에게는 언론 보도가 두렵지 않아보였습니다.
 
# 보도, 그 이후
보도 이후 협력업체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간간히 연락을 해옵니다. ‘아직 해결이 안됐다. 협의를 하고 싶지만, 협의 조건이 여전히 너무나 실망스러워 참 곤란하다. 방송을 애써서 해줬는데 미안하다.’ 저는 그 말에 더 미안해집니다. 우리사회의 ‘갑’들이 법을 위반해도 제대로 벌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절감합니다. 법보다 힘이 가깝고, 또 관행대로 공사현장은 굴러가기 때문이겠지요.
우리사회에는 수많은 갑을 관계가 존재합니다. 제가 취재한 중소협력업체 관계자들도 대기업을 상대로 해서는 을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갑이 될 것입니다. 돈을 못 받은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돈이 밀리고, 다시 그 사람은 다른 누군가에게 돈을 주지 못합니다. 이 속에서 더 작은 업체일수록, 더 힘이 없는 사람일수록 더 많이 피해를 봅니다. 이런 가장 낮은 곳의 희생을 바탕으로 삼아 하도급 피라미드의 가장 윗 단계에 있는 업체는 상대적으로 가장 적은 피해를 봅니다. 우리나라 건설현장의 고질적인 병폐는 해결될 수 있을까요? 하도급 구조의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들, 가장 돈 없고 제일 힘없는 사람들의 눈물부터. 언젠가는 조금이나마 줄어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