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회 지역보도부문 뉴스상_수사기관 개인정보 무단조회 행정소송 승소_광주MBC 김철원 기자

취재기자가 정보공개 행정소송에 나선 이유는?

일선 경찰서를 출입하던 초년병시절, 경찰관들이 아는 사람 부탁을 받고 특정인 주소를 알아봐주는 걸 여러 차례 봤다. 초등학교 동창을 찾아달라거나 채무자 주소를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받은 경찰관들은 조심스러워했지만 결국 큰 어려움 없이 해결해주곤 했다. 지인 부탁을 얼마나 잘 들어주느냐에 따라 경찰관들의 능력 있고 없고를 평가하는 이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정보를 얻어낸 이들은 이른바 ‘힘 있는 경찰관’이 있음을 주변에 과시하며 호가호위했다. 그들 중에는 취재를 빙자해 집주소나 전화번호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하는 기자들도 있었다. 명백한 불법조회요, 불법 정보유출이었지만 시비 거는 이들은 없었다.
2010년 MBC PD수첩이 방송해 파장을 일으킨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 사건을 지켜보면서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이 떠나질 않았다. 총리실 공무원들이 민간인 뒤를 캐고 다니는 행태가 경찰관들이 주소나 전화번호를 알아봐주는 모습과 포개져 보였던 것이다. 누군가 나를 엿보고 있다는 섬찟한 사실, 그 누군가가 권력기관이라면 더욱 공포스러울 것이고, 그건 경찰이나 검찰이 내 개인정보를 공적인 목적 외에 보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깨달음이 생겼다. 그러다 2012년 10월 광주지방경찰청 국정감사를 취재하게 됐다.
새누리당 김기선 의원이 낸 광주경찰청의 개인정보 관리실태 국정감사 보도자료에 드러난 경찰관들의 비위내용은 오히려 심심할 정도였다. 국민 개인정보를 무단조회하다 걸린 33명 경찰관들의 행위는 ‘자녀 청첩장을 보내기 위해서’라거나, ‘프로야구 선수*연예인들이 어디 사는지 궁금해서’라는 것이었는데 내용만 보자면 애교에 가까웠다. 국정감사장의 분위기는 무단조회가 문제이긴 하나 내용이 심각하지 않으니 다음부턴 조심하라는 정도로 그치고 있었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국회의원이나 피감기관인 경찰청 모두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음이 역력했다. 하지만 이걸 지켜보는 나는 불편했다. 이게 과연 그 정도로 그칠 사안인가’ 내가 보고 들은 경찰서 내부에서 벌어지는 무단조회와 불법 정보유출은 훨씬 심각한 수준인데 이걸 달랑 석 줄짜리 단신기사로 끝낼 수는 없었다.
수사기관 개인정보 무단조회 = 민간인 사찰
경찰청을 상대로 개인정보 감찰보고서 정보공개 청구를 시작했고 경찰은 청구를 모두 거부했다. 행정심판에서도 졌을 때는 솔직히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그래, 누가 옳은지 끝까지 판단을 받아보자’며 용기를 내 행정소송을 내긴 했지만 막막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참고할 만한 선례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취재기자가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일은 이제는 매우 흔한 일이 됐고 드물게는 행정심판까지 가는 경우도 없지 않게 됐지만, 행정소송까지 끌고 가 승소했다는 말은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소송까지 가서 이기리라는 장담도 없는데다, 이기더라도 소송의 실익이 있겠냐는 주변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힘들었다. 소장을 쓰기는 썼는데 법률 용어와 절차에 익숙하지 않아 법원으로부터 보정명령을 받았을 때는 내가 이걸 왜 해야 하나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힘을 낼 수 있었던 데는 이 소송에 높은‘공익성’이 스며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경찰과 검찰이 권력기관일 수 있는 건 이들 수사기관들이 정보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수사목적상 국민의 개인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는 권한이 있지만 반대로 국민들은 궁금해도 볼 수 있는 권한과 방법이 없다. 이런 정보권력의 비대칭성이 수사기관에 권력을 만들어주는 것일텐데 정보권력이 목적 외로 사용돼 민간인 사찰로 이어진다면 이건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인권을 해치는 범죄일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정보 감찰자료가 국민에게 공개된다는 사실이 판결로 ‘확인’되고 판례로 ‘확립’돼 공식화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수사관들이 느낄 불법조회 유혹을 억제하는 효과가 생길 것이라는 믿음이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땔감이 돼 주었다.
 
정보공개 행정소송, 어렵지 않아요
많은 기자들이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또 그걸 토대로 좋은 기사를 생산해내고 있다. 공개되는 경우도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기각되는 경우도 많다. 의미있는 주제인데도 기각됐다면 행정심판 혹은 행정소송까지 밀어붙여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행정심판과 전자소송 사이트가 잘 꾸려져 있어서 취재기자가 큰 어려움 없이 직접 진행할 수 있다. 다만 소송을 직접 진행할 경우 관찰자에서 당사자로 입장이 바뀌게 되는데 이걸 기사에서 어떻게 소화할 지는 고민해야할 점이 될 것이다. 이번 행정소송에서 승소판결을 받았을 때도 서울 행정법원 공보판사를 인터뷰해야하는 지를 놓고 고민했지만 객관성 훼손 여부를 고민한 끝에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정보공개 청구에서 행정소송 승소확정까지 2년 6개월이 걸렸다. 하나의 주제를 오랫동안 끌고 갈 수 있도록 밀어준 데스크에게 감사드린다. 좋은 사례를 발굴해 기사를 빛내준 김인정, 송정근 기자, 훌륭한 영상으로 뒷받침해준 이정현 기자도 감사하다. 소송을 직접 진행하긴 했지만 김정호 변호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1심에서 패소했지만 쿨하게 항소를 포기해 재판결과를 확정시켜준 경찰에게도 감사하다. 무엇보다도 훌륭한 판결을 내려준 재판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아직 국회 입법과정이 남아 있는 만큼 헌법적 가치인 국민의 정보자기결정권을 지키고 민주주의의 역행을 막는 데 관심을 쏟고 계속 노력할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