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회 지역보도부문 기획보도상_‘4.3 수형인, 끝나지 않은 재판’_제주MBC 김찬년 기자

4.3 특집, 끝나지 않은 고민

타임머신이라도 있었으면

재작년 6월 제주 4.3 수형인들의 전주 형무소 방문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터만 남아있던 자리를 맴돌며 60년 전 아픔의 기억을 더듬어 가던 할머니들의 발걸음, 손짓 하나하나가 가슴 깊이 남았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아픈 몸을 이끌고 어렵사리 형무소 입구 자리를 넘던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66년 전에는 다리도, 몸도 건강했지만 포승줄에 묶여 끌려왔었다. 지금은 걷는 것도 쉽지 않지만 그래도 내 의지로 이렇게 걷는 게 행복하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는 웃으며 말했지만 깊게 패인 주름에 남아있던 60년 전의 아픔이 그대로 가슴에 와 꽂혔다. 몸이 불편해 같이 가지 못했던 김경인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출장이 끝난 뒤 할머니 집을 향했다. 텃밭에서 상추며 고추를 키우고 있던 할머니는 형무소에서 얻은 안면 마비로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았고, 눈을 감지 못해 눈물이 연신 흘러내렸다. 책으로만 알았던 제주 4.3이 실존으로, 삶으로 내게 다가 온 순간이었다. 2,530명. 김경인 할머니처럼 군사재판에 넘겨져 사형을 당하거나 형무소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한 4.3 수형인들이다. 정부의 4.3 진상조사 보고서 채택과 대통령 사과는 이런 희생자들에 대한 과거의 보상이었다. 하지만 2,530명은 지금도 전과자라는 신분 때문에 현재의 희생이 진행 중이다. 엄청난 비극에 묻혀 차마 피해자라고 말도 못해왔던 4.3 수형인들의 삶과 이들이 지금 받고 있는 전과자라는 처우가 과연 합당한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었고, 이들을 옭아매고 있는 현재의 낙인을 꼭 벗겨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뉴스 취재와 제작 후 오랜 슬픔과 침묵의 강요를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이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기 위해 제주 섬 곳곳을 누비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살아남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67년이 지난 아픔은 세월이라는 바람에, 혹은 역사의 비극에 침식되어 온전한 형태를 보기 쉽지 않았다. 몇 안 되는 생존자들의 기억도 오랜 침묵의 강요와 고통을 잊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흐릿하기만 했다. 다행히 그날을 잊지 않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되뇌며 기억의 숙제를 이어왔던 현창용 할아버지와 오랜 시간 이들을 조사해온 제주 4.3 도민 연대의 도움이 있었고, 정부의 4.3 진상조사 보고서, 당시 조사 실무를 담당했던 김종민 전문 위원의 도움으로 어렴풋하게나마 수형인들의 삶과 당시 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아픔을 건넸던 4.3 군사재판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문제는 ‘영상으로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였다. 해야 할 이야기 많았지만 영상은 턱없이 부족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인터뷰만으로는 수형인들의 고통을 감히 전할 수 없었고, 당시 군사재판 상황과 수형인 명부에 드러난 온갖 오류들은 서류 하나하나를 짚어가면서 설명을 하더라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영상 구성을 위해 촬영 기자와 2주가 넘도록 촬영도 없이 제주 섬 곳곳을 돌아다녔다. 이런 저런 구상을 해봐도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시간만 계속 흘러가자 강흥주 촬영기자의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1948년 12월 군사재판 현장으로 갔다 와야 겠다’는 농담 섞인 푸념에 살짝 기대를 하기 까지 했다.
이런 가운데 우연히 제주 한라대학교에서 하는 드로잉 아트라는 공연을 알게 됐고, 거기서 영감을 얻어 당시 4.3 군사재판을 삽화 형식으로 표현하게 됐고, 역사 다큐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컴퓨터 그래픽을 통해 4.3 군사재판의 문제점을 분석하는 방식에 도달하게 되었다. 역사 댜큐에 10분 이상 차지하는 CG에 대해 데스크와 보도국에서는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 후배의 미숙함을 이해해달라며 어렵게 설득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더 많은 고민이 있었으면 더 좋은 구성이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현재와 과거를 이어가는 부분은 슬로우 촬영을 통해 해결했다. 결코 완성되지 못할 것 같았던 다큐도 하나 둘 방법을 찾아가며 미숙한 부분들을 조금씩 해결해 나갔다.
자포자기 상태에서 우스갯소리로 던진 농담들 속에서 새로운 방법과 접근이 잉태되었다. 이번 특집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었다.
보수단체들의 ‘수형인들은 재판에서 형을 받은 범죄인들이다. 이들을 희생자로 인정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주장으로 올해 4.3 추념식은 혼란과 상처의 추념식이었다. 얼핏 보면 논리적인 이 주장에 일부 언론까지 가세하며 정부마저 수형인들의 4.3 희생자 재심사 언급을 했고 단편적인 뉴스에 제주도민들까지 재심사가 필요하다는 여론으로 기울었다. ‘재판에서 형을 받은 사람들은 범죄인이다’는 보수단체의 주장은 논리적이다. 다만 그 누구도 그 전제에 대한 의심 없이 혼란스러워했고, 여론은 분열되었다. 올바른 이해가 필요했다. 1분 30초 뉴스로서는 충분히 다루지 못할 그 전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4.3 특별기획을 통해 전제의 문제점을 부족하나마 다룰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4.3 수형인들은 재판에서 형을 받은 범죄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불법 재판에 억울하게 희생당한 우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이고 어머니 아버지이며 또 우리들이기도 하다.
4.3 수형인에 대한 관심이 늦게나마 불붙기 시작해 이들의 전과 기록을 없애기 위한 4.3특별법 개정 운동이나, 미신고자 추가 조사가 이뤄졌다는 데 감사드린다. 또 특집과 함께 시작된 수형인들의 소송이 이 끝나지 않은 재판의 종결을 가져 오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