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 뉴스부문_이완구 총리 후보자, 언론 외압 발언 단독보도-KBS 윤진 기자

* 기자와 정치인불가근 불가원 *
기자에게 정치인이란 어떤 대상일까? 정치인에게 기자는 어떤 대상일까? 이 기사를 취재하고 제작할 당시, 또 기사가 나간 이후 불어오는 후폭풍 속에서 끊임없이 자문했던 질문이다.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국민 앞에서 후보자의 자질을 검증해야 할 의무, 후보자와 기자 사이의 인간적 관계, 두 사안이 명확히 대척점에 서게 됐을 때, 어디에 더 무게 중심을 둘 것인가. 기사는 1분 20초에 불과했지만, 번뇌의 시간은 길고 길었다.
이완구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직후, 여당은 물론 야당도 호의적 반응을 보였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 등 여야 간 각종 협상을 잘 이끌어 성과를 내왔기 때문이다. 후보자 본인도 증여세나 병역 등에서 문제될 게 없다며 공공연히 청문회 통과 자신감을 나타냈다. 인사청문특위가 구성되고 본격적인 검증 작업이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예상치 못 했던 의혹들이 하나둘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늘 그랬듯이, 언론사 간에 취재 경쟁도 뜨거워졌다. 후보자와 차남의 병역면제 과정 의혹, 아파트 단타 매매 투기 의혹, 타워팰리스 양도소득세 탈루 의혹, 분당 땅 투기 의혹 등이 연일 보도됐다. 그러면서 의혹을 다룬 기사들이 인터넷에서 사라지는 일도 하나 둘 생기기 시작했다. 이 후보자가 해당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 기사를 빼도록 했다는 의혹 제기까지도 제기됐다. 사람이 살면서 누구나 흠이나 실수는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언론 보도에 개입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면서, 청문회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 김경협 의원, 언론 통제 의혹 제기
2월6일 오전, 김경협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후보자가 자신에게 부정적인 방송이 나가지 못 하게 막았고 근거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귀가 번쩍 뜨였다. 김경협 의원실 한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론 통제 의혹은 절대 있어선 안 될 의혹이다, 총리가 되겠다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문제다, 의원이 얘기한 근거가 무엇인지 꼭 알고 싶다”라고 말했다. 보좌관은 잠시 후에 연락을 주겠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한 시간 반 뒤에 만나서 얘기하자는 연락이 왔다. 보좌관에게 이 취재가 중요한 이유를 다시 설명했다. 언론 통제 의혹이 사실이라면 반드시 보도를 해서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설득했다. 30여 분쯤 대화를 나누던 끝에, 보좌관이 A4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 후보자가 기자들과 만나 한 얘기의 녹취록으로, 일부만 발췌해 온 것이라고 했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비판적인 방송 패널 출연을 막았고, 언론사 간부와의 친분을 통해 평기자 인사에 개입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 적혀 있었다. 보좌관은 녹음 파일도 있지만 줄 수 없다고 했고, 내용을 천천히 읽어 보고 정말 보도할 수 있을지를 더 생각해 보고 연락을 달라고 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반드시 보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보좌관에게 다시 전화했다. 녹음 파일을 달라고 했다. 보좌관은 선뜻 주겠다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처음 만난 기자에게 그 중요한 녹음 파일을 쉽게 주겠다고 했다면, 그게 더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보좌관은 다시 기다려달라고 했고, 이번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국민에게 반드시 알려야 할 사안이다, 앞뒤 전후 맥락과 발언의 배경을 파악하려면 녹음 파일을 직접 들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금요일 오후, 주말을 기다리며 조금씩 긴장이 풀려갔을 시간. 내 머릿속은 오직, 녹음파일을 반드시 구해야 한다는 일념뿐이었다. 의원실로 직접 찾아갔다. 보좌관이 망설인 이유는 여러 가지였는데, 가장 큰 건 ‘취재원 보호’였다. 녹음 파일을 제공한 사람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그 보좌관에게도 있었던 것이다. 나는 파일 제공자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보도를 하든 안 하든, 녹음 파일은 들어봐야 한다는 생각만은 변함이 없었다. 발언의 분위기, 앞뒤 맥락, 발언 당시의 상황 등을 전체적으로 확인해야, 내가 본 한 장짜리 발언의 본 뜻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설득할 만큼 했고, 더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진심을 담아 얘길 했다. “기자 생활 1~2년 하고 그만 둘 것 아닙니다. 약속은 꼭 지킵니다. 녹음 파일 주세요.” 보좌관이 나를 한 번 바라보더니, 녹음 파일을 주겠다고 했다. 그 때가 2월6일 오후 4시30분이었다.
* 보도는 1분 20초, 마음의 짐은 열흘
1분20초 리포트가 나간 뒤, 예상했듯 후폭풍이 거셌다. 내 마음 속에도 폭풍이 일었다. 녹음파일을 얻고, 리포트를 만들고, 뉴스가 나갈 때까지는 오로지 있는 그대로 실수 없이 보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막상 뉴스가 나간 뒤, 미처 생각 못 했던 것들이 한꺼번에 밀려 들었다. 특히, 이완구 후보자, 당사자에 대한 인간적 미안함이 나를 짓눌러 왔다. 그날부터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던 날까지, 매일 밤 삼배를 올렸다. ‘미안합니다’라고 되뇌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