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회 지역보도부문 뉴스상_국가공인 한자시험 조직적 부정 연속보도_MBN부산 안진우 기자

무너지는 공정한 게임의 법칙

“반칙이 아니고 관행입니다.”
한문에 능통한 학생 한 명과 한문학과 한 명 등 이른바 ‘선수’2명 섭외.
시험 시작과 동시에 4명의 응시생이 각자 맡은 시험지를 휴대전화를 촬영해 외부로 전송.
시험지가 촬영된 사진을 전송받은 이른바 ‘선수’는 신속히 문제를 푼다.
정답 유포를 위해 미리 만들어진 휴대전화 SNS 단체 대화방으로 정답 전송.
작전 성공!
지난해 부산의 한 대학에서 치러진 국가공인 2급 한자시험에서 자행된 부정행위의 전말이다.
이날 시험을 친 대학생은 모두 180명. 180명 전원이 부정행위에 가담한 것으로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이 대학뿐만 아니라 다른 대학 2곳에서도 이런 부정행위가 확인됐고, 수사는 계속 진행 중이다.
취재는 술자리에서 시작됐다. “친구한테 들었는데 국가공인 2급 한자시험 치는데, 답을 전부 알려준답니다.” “ROTC 한자시험하면 대학생들 다 아는데…” 술자리에서 우연히 들은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얼큰하게 술에 취해 “이건 반칙이지”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술에 취한 지인도 “이런 걸 바로 잡아야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 손해를 안 본다”며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지인의 친구는 부정행위에 가담해서 인지 그런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도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에 기자를 만나려 하지 않았다.
세달 가까이 이어진 설득과 회유, 협박에 가까운 압력까지. 어렵사리 지인의 통해 부산의 한 대학에서 시험을 친 학생과 통화를 할 수 있었고, 휴대전화 SNS 메신저 내용을 받을 수 있었다. 단체 대화방을 통해 전송된 정답들, 객관식은 물론 주관식 답까지. 정답 공유를 위해 만든 대화방은 한 국립대의 학군단, ROTC 중대장.
해당 대학 학군단을 찾아가 만난 ROTC 중대장은 휴대전화 SNS 메신저 내용을 내밀자 부정행위를 시인했다.
하지만,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 “ROTC 선배들이 한 방법이 그대로 임무 물려받았다”며 “학군단을 둔 대학 모두가 마찬가지라”는 변명. 지난해 치러진 시험이 처음이 아니며, 다른 대학에서도 관행적으로 부정행위가 자행되고 있다는 말이었다.
이런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학군단을 둔 대학을 찾아다니며 취재는 이어졌고, 국가공인 한자시험의 부정행위는 6~7년 전부터 관행적으로 이뤄지고 있었고, 자격증을 쉽게 따려는 학생들은 부정행위에 가담해서인지 스스로 입을 닫았고, 이런 부정행위는 대물림돼 온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가공인 한자시험의 조직적 부정행위’ 보도 이후, 경남과 충남 등 다른 지역에서도 ROTC가 주도한 한자시험의 조직적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제보가 잇따랐고, 후속 보도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부정행위에 가담했던 대학생 대부분의 공통점은 부정행위를 저지르고도 뭐가 잘 못이고,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자격증 하나 따는데, 선배들도 다 그렇게 해 왔는데…”라며…
반칙의 유혹에 넘어가는 대학생들
장관 딸, 국회의원 자녀들의 취업 특혜, 입사와 동시에 임원으로 직행하는 재벌 자녀들, 돈과 권력을 앞세운 ‘반칙이 판치는 사회’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심판도 물론 강자의 편일 때가 많다.
문제는 이런 반칙의 관행이 사회의 첫 발을 내딛지도 않은 학생들마저 반칙의 유혹에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마저 원칙대로 해서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아니면 반칙이 판치는 사회에 나가서 기왕 지는 판, 반칙을 해서라도 혹시 이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요행이 생긴 걸까?
원격 커닝, 대리시험, 문제지 유출, 성적표 위조…. 대학수학능력시험과 토익시험 등 각종 시험에서의 줄줄이 터져 나오는 부정행위 사건들,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라면 반칙과 그에 따른 위험도 불사하는 학생들.
학생들마저 반칙의 유혹에 넘어가 버린 단면을 보여준 씁쓸함을 남긴 취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