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회 뉴스부문_ 연속보도_KBS 홍성희 기자

취재원의 실존적 결단, 그 무게에 대하여
 
진실의 목격자, 박창진 사무장
단 한 명이라도 진실을 말해줄 수 있는 목격자가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은 국토교통부에 출석해 국민 앞에 사과했지만, 누구에게 왜 사과하는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부당한 회항 지시와 승무원에 대한 폭행은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발맞춰 대한항공 측도 조 씨의 행위는 임원으로서 할 수 있는 정당한 업무 지시였다고 해명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 당사자, 박창진 사무장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차례 연락을 시도한 끝에 급작스럽게 박 사무장을 만나게 됐습니다. 시간은 밤 12시였습니다. 박 사무장은 온종일 고민 끝에 결단을 내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 역시 떨리는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향했습니다.
박 사무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이 보고 겪은 사실을 담담히 얘기했습니다. 폭언과 폭행, 회항 지시 등은 없었다는 조 전 부사장의 해명은 거짓이었습니다. 대한항공 측에서 조 전 부사장을 보호하기 위해 승무원들에게 거짓 진술을 강요하고 증거를 은폐하려 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이란 것에 거의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박 사무장은 그러나 방송 인터뷰를 완곡히 거절했습니다. 저는 박 사무장의 얼굴에 쓰여 있는 고뇌를 바라보며, 인터뷰하자고 감히 말할 수 없었습니다. 동시에 야속한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박 사무장과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고민이 커졌습니다. ‘박 사무장을 더 설득했어야 했나, 내가 너무 쉽게 물러난 건 아닌가, 하지만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문제인데 무작정 인터뷰를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인터뷰를 위해선 취재원의 ‘실존적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단을 무작정 부추기거나 설득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결단에 대한 책임은 박 사무장뿐만 아니라, 저 역시 같이 나눠야 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마음을 움직여야 하는 취재
취재진은 박 사무장에게 무엇보다 신뢰를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보도 이후 모른 척하지 않겠다는 믿음, 이 문제를 함께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말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차례 통화를 시도했습니다. 이런 노력에 박 사무장은 고맙게도 용기로 화답해주었습니다. 지난해 12월 12일 KBS 9시 뉴스를 불과 한 시간 남짓 앞둔 상황에서 극적으로 인터뷰가 성사됐습니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지만, 인터뷰 시간은 고작 20분 정도 주어졌습니다. 충분치 않은 인터뷰 시간이었지만, 당시 기내에서 조 전 부사장이 폭언과 폭행을 했는지, 또 대한항공 측의 사건 은폐 시도가 있었는지 등을 중심으로 박 사무장의 증언을 담았습니다. 방송은 나갔고, 당시 국토부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려던 조 전 부사장은 다시 소환돼 조사실로 들어가야 했습니다.
박 사무장의 두 번째 인터뷰는 첫 번째 인터뷰 때보다 훨씬 더 어렵게 성사됐습니다. 인터뷰 이후 취재 경쟁이 더 심해졌습니다. 특히 조 전 부사장이 박 사무장의 집을 찾아간 뒤 박 사무장의 집이 알려지면서 기자들이 박 사무장의 집 주변에 진을 친 상황이었습니다. 박 사무장은 최소한의 사생활도 보장받기 어려워졌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힘들어했습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박 사무장은 본인의 인생을 걸며 진실을 폭로했지만, 당시 국토교통부의 조사는 여전히 대한항공에 대해 봐주기로 일관하고 있었습니다. 재벌 2, 3세들의 이른바 ‘갑질’도 문제였지만, 그 횡포를 감싸는 정부 당국의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 사무장은 국토부 조사 과정의 문제점에 대해서 소상히 알고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긴 설득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박 사무장은 이번에도 용기를 내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두 번째 인터뷰가 방송에 나간 다음 날, 국토부는 담당 조사관들에 대한 특별감사에 착수했습니다.
며칠 전 조 전 부사장에 대한 첫 공판이 열렸습니다. 반나절에 가까운 긴 공판의 말미에 재판부는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을 직권으로 증인으로 채택한다고 말했습니다. 조 전 부사장에 대한 유무죄 여부뿐 아니라, 박창진 사무장이 앞으로 대한항공에 계속 근무할 수 있는지도 중요한 관심사라고 재판부는 언급했습니다. 아마도 박 사무장에게 어떤 불이익도 없도록 조 회장에게 확인을 받으려는 모양입니다. 재판부의 사려 깊은 조치에 제가 덩달아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박 사무장이 저희 인터뷰에서 했던 약속,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는 일은 없을 거라는 그 약속이 꼭 지켜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