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지역보도부문 뉴스상_2천억 원 BTL 하수관거 '내맘대로 공사', 다시 파헤치다_전주MBC 박찬익 기자

“잘해도 반? 그래도 끝을 볼 수 있다면”
모든 기자들이 가장 꺼려하는 기사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다른 매체에서 앞서 내보낸 단독, 특종보도를 따라 가는 기사가 아닐까? 솔직히 말하자면 ‘2천억 원 BTL 하수관거 “내 맘대로 공사” 다시 파헤치다’는 그런 따라가는 보도라는 한계에서 취재가 시작됐다.
취재기자인 나로서도 잠시나마 망설였는데 데스크 입장에서 보면 지난해 같은 지역 경쟁 방송사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했던 사안을 우리가 다시 끄집어내는 일은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다행히 데스크는 이 취재에 아낌없는 신뢰를 보내주었고 대기업 건설사의 교묘한 협박에 굴하지 않고 우리는 무려 13차례에 걸쳐 BTL 하수관거를 줄기차게 파헤치고 또 파헤쳤다.
‘2천억 원 BTL 하수관거’는 군산시가 지난 2011에 마무리한 공사이다. 그런데 완공 뒤에 한 용감한 시민이 나타나 부실공사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자신의 가게 앞마당에 있는 정화조를 엉터리로 공사한 건설사에 분개하며 발단이 됐다. 처음에 간단히 처리될 것으로 생각됐던 민원은 분노에 분노가 거듭되며 결국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검찰은 하수관로의 길이가 준공도면 보다 짧게 시공되었고 맨홀 등 일부 공사 역시 엉터리였던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검찰은 시공사의 고의적인 부실공사가 아니라며 면죄부를 내렸다. 제보자가 고군분투했던 몇 개월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이다.
그리고 6개월, 그 용감한 시민이 나를 찾아왔다. 앞서 함께 했던 경쟁 방송사를 놔두고 나를 찾아온 그에게 이유는 묻지 않았다. 그는 부실공사가 단순 실수가 아니었다며 검찰이 시공사와 군산시를 봐주려고 짜 맞춘 각본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 시장은 ‘BTL 하수관거’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고 부실 의혹을 검증하는 용역은 하수관거에 문제가 없다는 중간보고를 내놨다. 이어 검찰은 무엇이 급했는지 최종보고서를 받아보지 않은 채 서둘러 시공사와 군산시에게 면죄부를 주고 만다. 최종보고서는 기한이 넘어 1년이 지났는데도 지금껏 제출되지 않고 있다. 제보자의 말이 전혀 근거가 없지는 않았던 것이다.
우선 선행보도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배수설비를 집중 살펴보기로 했다. 5천5백 개의 배수설비 가운데 8백여 개가 준공도면과 다르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하지도 않은 공사를 했다고 준공도면에 그려 넣었는가 하면 필요도 없는 빈집이나 공터에 배수설비를 해놓는 코미디 같은 현장이 즐비했다.
준공도면과 하나하나 맞춰봐야 하는 지리한 작업, 제보자의 노력과 열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조사였다. 그 지난한 과정을 통해 확인한 분명한 사실이었기에 우리는 보도하는데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 우리의 보도를 극구 부인하던 시공사는 이후 경찰 조사에서 2백여 개의 배수설비가 준공도면과 다르다고 시인했다. 뻔뻔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심지어 자신들이 한 공사 내용과 군산시에 제출한 준공도면이 모두 다르다며 새로 준공도면을 그려야 한다고까지 서슴없이 말하기까지 했다. 시공사 관계자는 처음으로 우리들 앞에서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고 처벌을 달게 받겠다고 했다. 그러나 고의성은 없었다며 여전히 변명하고 있다.
BTL 하수관거에 군산시가 치러야 할 대가는 20년 동안 무려 2천억 원, 군산시 소유의 재산인데도 재산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알지 못하는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우리의 보도가 계속되는 동안 군산시는 책임을 피하기에 급급했고 시공사는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근거로 우리의 보도가 허위보도이고 재탕보도라며 폄하했다. 지역 언론도 무관심하거나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만약 제보자가 한 번 더 용기 내지 않았다면 영영 묻히고 잊힐 뻔했던 BTL하수관거 부실공사가 우리의 후속 보도를 통해 다시 적나라하게 군산시민들에게 알려졌다. 현재 경찰이 재수사를 하고 있고 이번에는 검찰이 지난해와 다르게 시공사와 담당 공무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잘해도 반인 후속보도, 취재데스크 비롯한 주변의 기자들이 이미 용도폐기 된 보도를 다시 끄집어내서 뭐하냐고 질문을 건넬 때마다 난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끝은 봐야하지 않겠냐고.” 마지막으로 그 끝이 분명 있다고 믿음을 심어준 제보자 유영근 님께 이 글을 통해 심심한 감사와 경의를 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