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지역보도부문 기획다큐상_중국 동해를 삼키다_KBS강릉 정면구 기자

‘그 많던 동해 오징어 어디로?’
동해안은 오징어 하나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주요 수산시장에는 연일 나선 관광객으로 넘쳐나지만, 어민과 상인들 분위기가 예년 같지 않다. 대표 수산물인 오징어 어획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10년 전만 해도 연간 25만 톤이 넘었던 국내 오징어 생산량은 지난해 15만 톤으로 줄어들었다. 어민들의 소득도 그만큼 줄었고 지역경제는 크게 위축됐다. 어민들은 동해 북한수역에서 조업하는 중국어선을 의심하고 있었다. 동해는 중국 산둥반도에서 1,000km미터 이상 떨어져 있지만, 해마다 1,000척이 넘는 중국어선이 동해로 진출해 오징어를 싹쓸이한다는 것이다. 중국어선은 왜 이렇게 멀리 떨어진 동해까지 몰려들고 있나. 취재는 그렇게 시작됐다.
‘과연 취재할 수 있을까?’
본격적인 취재가 시작되자마자 난관에 부딪혔다. 서해나 남해와 달리 동해에서는 중국어선을 취재하기 힘들었다. 동해로 진출한 중국어선은 우리 수역이 아닌 대부분 북한 동해수역에서 조업하기 때문이다. 서해나 남해처럼 불법조업 혐의로 해경에 나포되는 중국어선도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취재진이 중국어선 취재를 명목으로 북한 바다로 들어갈 수도 없었다. 결국 보이지 않는 현장을 취재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오징어 철이면 몇 달씩 바다에 나가있는 채낚기 어민들에게 매달렸다. 해양수산부와 해양수산개발원 등 관계기관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북한에는 들어갈 수 없지만, 우리 수역을 지나가는 중국어선이라도 취재해야했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중국어선을 만나다’
어렵게 섭외한 동해어업관리단과 함께 바다로 나갔다. 어업관리단은 중국어선이 우리 동해를 지나 북한으로 북상할 때 혹시 불법조업을 하는지 등을 감시하고 있다. 하지만 매번 중국어선을 만나는 것은 아니었다. 3번째 동행한 현장에서 겨우 중국어선을 포착할 수 있었다. 동해 남부 먼 바다를 유유히 항해하던 중국어선 4척. 소형 고무보트로 중국어선에 옮겨탄 뒤 바닥의 냉동창고를 열어봤다. 동해산 살오징어 13톤이 실려있었다. 중국어선 선장은 불법으로 잡은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러더니 이런저런 서류를 내밀었다. 그 순간 익숙한 한글이 눈에 들어왔다. 북한이 발급해 준 ‘물고기잡이 허가증’이었다. 취재팀은 고스란히 영상으로 담아낸 허가증에는 중국어선의 선적지와 톤 수, 조업 기간 등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해경 조사 결과, 이 허가증의 가격은 한 척당 약 30만 위안. 우리 돈으로 5천만 원 정도였다. 이렇게 허가를 받고 북한 동해 수역에 들어간 중국어선이 올해 들어서만 1,700척이 넘는다. 중국어선이 처음 진출한 2004년 140여 척보다 10배가 넘는 규모다.
 
이유 있는 중국의 동해 진출’
오징어는 중국 연안에서 거의 나지 않는 탓에 원래 중국의 선호 수산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중국은 전 세계 오징어 생산량 1위국으로 급부상했다. 매년 오징어 백만 톤 정도를 잡아들이고 30~40만 톤을 더 수입하고 있다. 중국 현지 상황이 궁금했다. 곧바로 취재팀을 꾸려 중국으로 들어갔다. 중국의 오징어 소비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중국 해안가에 국한돼 있던 오징어 소비가 소득 증가와 냉동설비 확대 등으로 내륙까지 확대되면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었다. 오징어 수요가 늘어난 중국과 외화벌이에 나선 북한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실제로 중국의 주요 어업 전진기지에서는 중국어민들이 동해에서 잡아온 오징어를 하역하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었다. 중국은 단순히 해상 뿐만 아니라 북한이나 러시아와 협력하며 육로로 동해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동해는 더 이상 중국에게 먼 바다가 아니었다.
프로그램 성격상 배를 많이 타는 취재여서 시작할 때부터 걱정하고 막막했던 게 사실이었다. 실제로 한일중간수역인 대화퇴 취재에 나섰을 때는 왕복 60시간을 바다에서 보내야 했다. 야간 조업을 하는 오징어잡이 어선에 옮겨타다 밤바다에 빠져 죽을 뻔한 순간도 있었다. 멀미약 과다 복용으로 배에서 내린 뒤에는 매번 한참을 두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 실태와 이면의 상황을 잘 전했는지는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방송 이후 어민들이 주는 격려와 이런 좋은 상이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소 쑥스럽다. 지역 언론은 인력을 포함한 취재 여건이 알려진 것보다 더 열악하다. 한사람이 빠지면 여러 사람이 일을 나누며 고생할 수밖에 없다. 이 프로그램 취재를 핑계로 연일 비워진 자리를 묵묵히 채워준 보도부장과 선후배들에게 너무 감사하다. 특히 프로그램을 지휘하며 현장 취재까지 나섰던 권혁일 부장과 연일 계속된 강행군에도 생생한 현장을 카메라에 담아낸 김중용 선배, 툭하면 집을 비웠던 취재팀의 가족들에게 다시 한번 고생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