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뉴스부문_동서식품 대장균 시리얼 재활용 연속보도_SBS 김종원 기자

■ 내부 제보자를 만나다
제보자를 처음 만난 건 늦은 밤이었습니다. 제보자는 다소 긴장한 모습으로 인사를 건네왔습니다. 쌀쌀한 가을 저녁, 제보자와 첫인사를 나누고는 근처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제보자는 자신이 찍어놓은 공장 내부 동영상과 작업일지를 하나하나 살펴보며 차분하고 어눌한 말투로 내부고발을 시작했습니다.
동서식품 진천공장 시리얼 제조라인에서 근무하던 제보자는 불량품 처리 작업을 하는 날만 되면 틈틈이 해당 과정을 영상으로 찍었습니다. 그렇게 촬영한 것이 10개월 치, 상당히 많은 분량이었습니다. 저처럼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그저 작업자들이 시리얼을 이리 만지고 저리 만지며 포장을 하는 정상적인 작업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설명은 충격적이었습니다. 투명한 비닐봉지에 담겨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엄청난 양의 시리얼은 버려지는 것이 아닌 모두 재활용 되는 불량품들이라는 겁니다. 그것도 상자 포장까지 모두 끝났던 제품을 다시 뜯어 모은 것이라는 겁니다. 무슨 불량인지는 작업일지에 자세히 적혀있었습니다. ‘대장균 검출’, ‘곰팡이’ 등등. 작업일지 여기저기엔 그런 불량이 생긴 제품의 상자를 모두 해체하고, 새로 만들어지는 제품에 섞으라는 지시도 보였습니다.
■ 내부 자료를 입수하고도 하기 힘들었던 보도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신빙성이었습니다. 동서식품 같은 굴지의 대기업이 불량제품 버리는 그 몇 푼이 아까워 이런 짓을 저지를까 하는 의문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가 있기에 제보자만 믿고 동서식품 측 취재에 들어갔습니다. 처음 동서식품 측을 만나는 자리에는 공장 관계자와 제품 품질 관리자 등 여러 명의 관계자가 나왔습니다. 제보자 보호 차원에서 저희가 가진 자료를 다 공개하진 않았지만, 결정적인 몇몇 자료를 살펴 본 동서식품은 의외의 반응을 내놓았습니다. 흔쾌히 인정을 한 겁니다. 그러면서 ‘이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매우 정상적인 공정일 뿐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전문 용어를 섞어 해당 공정의 당위성을 설명하는데, 비전문가인 제 입장에선 오히려 혼란이 더 커졌습니다. 아예 부인을 해버렸다면 ‘거짓말을 하는구나’ 싶어서 더 의심을 하고 더 파보았겠지만 왠지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습니다.
결정적인 것은 식품의약안전처의 답변이었습니다. 구두로만 문의를 한 상태이긴 했지만, 식약처는 잘못됐다 잘됐다 딱 떨어지는 답변을 주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동서식품의 재활용 공정이 잘못됐는지는 그때그때 다르다는 답변이었습니다. 증거를 입수하고도 취재가 막히는 순간이었습니다.
취재에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점 가운데 하나는 의외로 법률적 자문을 해 줄 전문가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대기업 내부 공정은 내부 직원들밖에 모르기 때문에 속 시원히 설명해 줄 전문가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변호사들을 만나 영상을 보며 자문을 구하고, 식품 관련 교수들도 만나 자문을 구했습니다. 보도를 못 할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취재를 한 결과 동서식품의 해명과는 달리 심각한 식품위생법 위반 정황이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HACCP기준에도 맞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결국 어렵게 보도를 결정할 수 있었고 취재진의 ‘문제의식’은 결국 틀린 것이 아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대기업을 위한 규정? 누가 그들을 감시하나
문제는 대기업 식품공장의 내부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건 언론사 뿐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업체들을 관리해야 할 식약처도 식품 공장 내부 사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대기업 식품회사의 경우 제품에 대한 품질검사를 자체적으로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여기까진 괜찮습니다. 문제는 이 기업의 자체검사를 감사할 수단이 없다는 겁니다.
대기업이 자가품질 검사를 해서 문제가 발생해도 식약처에 보고를 안 해버리면 그만이라는 큰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죠. 이러다보니 심심치 않게 식품 위생 사고가 터져 나오는 것이고, 그 이면에는 이번 동서식품 사태처럼 조직적으로 불량품을 재활용하는 비양심이 숨어있던 겁니다. 이 점을 이번 보도를 통해 가장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의심 많다는 기자들도 ‘설마 대기업이 그랬겠어’라며 쉽사리 보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데, 대기업 식품을 주로 이용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평범한 소비자들은 더더욱 제품의 문제를 알기 어려운 현실인 겁니다. 대기업이라면 더 철저하게 품질관리를 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고 대기업에 안전을 맡겨둔 정부는 뒷짐 지고 관망만 하는 형국을 꼭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이번 보도를 통해 식약처가 그나마 자가품질검사 제도를 강화하고 나서 다행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의 소지는 남아있고, 앞으로도 그 감시는 언론의 몫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