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회 기획다큐부문_자영업 밥그릇 뺏는 재벌… 이번엔 아웃렛_뉴스타파_유원중 기자

“오늘 바쁜데 다음에 오시죠? 할 말도 별로 없고…”
취재를 갈 경기도 이천시가 가깝지 않은 곳이라 며칠 전에 이미 약속을 했지만 아침에 출발하기 전에 다시한번 확인전화를 했다. “뉴스타파 기자인데요. 오늘 찾아뵙기로 했었잖아요.” “오늘 새 물건 들어오는 날이어서 바쁜데요. 모레 오실래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어려웠다. 나름 언론계에선 유명세를 얻고 있는 뉴스타파이지만 수도권에서 패션의류대리점을 운영하는 상인들에겐 듣도 보도 못한 인터넷 언론일 뿐이다. 특히 프리미엄 아웃렛이 들어오기 전이라면 모를까 이미 영업을 하고 있는데 고발을 해봐야 득이 될 게 없다는 상인들의 촉은 빨랐다. 취재 방향은 대규모점포의 문제점을 법적 또는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거시적 관점이지만 상인은 떨어진 매출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지, 다른 장사를 해야 할지 아님 장사를 접고 다른 곳으로 떠야 할지 현실적인 고민이 우선이다. 상인들을 대변할 구심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재벌 유통기업을 비판해 줄 전문가를 찾기도 힘들었다. 주변 사람들의 친구나 친척을 소개받아 의류제조회사 중간간부들에게 도움을 청해봤지만 전화로만 몇 마디 해줄 뿐 소위 빅3로 불리는 유통 대기업의 문제를 공개적으로 얘기해 줄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다.
어렵게 전국패션대리점연합회(사실상 침목단체) 회장님을 만날 수 있었다. 수년 동안 경기도 이천의 롯데 프리미엄 아웃렛 입점 반대 운동을 주도해 왔지만 결국 지난해 롯데가 지난해 개점에 성공했고 상권은 박살이 난 상태였다. 지역에서 본인의 평판만 나빠졌다며 더 이상 나서고 싶지 않다고 했다. 특히 지난 6월 정말 어렵게 상인 5백 명을 모아 서울 명동의 롯데와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집회를 열어 수많은 언론과 인터뷰도 했지만 그 다음 날 기사 한 줄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대기업을 상대로 한 싸움이 바위에 계란 던지는 꼴로 결국 불가능한 싸움이었다고 말했다. 말은 안했지만 이제 막 취재를 시작하려는 기자를 차 떠난 뒤에 손 흔드는 사람처럼 여기는 듯 했다.
관련 기사를 찾아봐도 프리미엄 아웃렛이 지역 상인들과 갈등한다는 기사가 몇 개 검색될 뿐이다. 대부분의 기사는 ‘빅3 아웃렛 쟁탈전’, ‘롯데와 신세계 자존심 건 승부’ 등 아웃렛이라는 새로운 유통시장에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대기업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 그 속에서 죽어나는 상인들의 이야기, 자영업과 중산층의 몰락을 얘기하는 기사는 거의 없었다. 소비자 관점에서도 대기업 유통 문제가 심각하다고는 생각하지만 뭐 별 수 있냐는 반응이 많다. 중소상인에게 우호적인 시각이 많지 않은 것도 취재의 정당성을 얻기 힘들게 만들었다. 장황하게 얘기했지만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기관인 재벌 문제를 기획 취재해 본 기자들이라면 대부분 겪는 장벽일 것이다.
대부분 기자는 자기가 취재한 내용이 대단하다고 느끼기 십상인데 나 또한 마찬가지다. 대기업의 프리미엄 아웃렛이나 복합쇼핑몰 문제는 정말 심각한 사회문제다. 대형마트와 SSM의 문제에 이미 단련돼 있는 국민들은 뭐 똑같은 문제 아니냐고 하겠지만 상업시설 뿐 아니라 문화와 오락의 기능을 모두 갖춘 복합쇼핑몰은 특정 업종의 피해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실상 지역 상권 자체를 빼앗겠다는 의도가 다분하다. 대기업이 구조조정을 통해 조기 퇴직자를 쏟아내면서 자영업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는데 이런 초대형 복합쇼핑몰을 통해 자영업자들의 시장을 또다시 빼앗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취재가 잘 안 되니 답답하고 먹먹할 뿐이었다.
결국 이번 취재는 여론을 환기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곧바로 입법을 통해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맨땅에서 유의미한 자료를 얻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실 보좌관들의 힘이 절실했다. 우리 사회 ‘갑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던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를 노크했다. 유통시장의 ‘슈퍼 갑’ 문제를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설득했고 여기에 공감한 여러 의원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번 시리즈 보도가 발빠르게 국회 토론회로 이어지고 입법 개정안(1월 발의 예정)이 만들어지게 된 것도 기획단계에서부터 재벌을 한번 ‘조져’보겠다는 의도보다 실질적인 대안이 절실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불가근해야 한다는 기자의 자존심보다는 입법권한을 갖고 있는 정치권과의 협업이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제 시작이다. 아웃렛에 의한 자영업 침탈 실태 토론회가 있을지 얼마 안 돼, 국회에서 토론회가 또 열렸다. 새누리당 모 의원실이 개최한 이 토론회에서는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중소자영업자 대표가 ‘대형마트의 영업제한’으로 납품 중소기업이 천문학적인 피해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다음에는 ‘대형마트 영업제한은 불법’이라는 고등법원의 판결도 나왔다.
우리나라처럼 대기업 유통이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고 활개를 치는 나라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 대기업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지킬 법률 전문가와 스스로 여론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관련 하청업체들로 무장한 상태다. 과연 지금 시대에 언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모두가 고민해 봤으면 한다. 전체 언론 지형에서 약자를 대변하는 매체의 수가 줄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탐사보도에 대한 동경으로 KBS에서 1년 동안의 안식휴가를 받아 뉴스타파 객원기자로 잠깐 일하는 동안 이런 상을 받게 돼 평생 기억에 남을 상인 것 같다. 이번 취재가 시작된 게 8월의 뜨거운 여름날이었는데 사실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런 취재가 가능한 뉴스타파의 취재제작시스템에 무한한 감사를 드릴 뿐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