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회 뉴스부문_특별기획-원전묵시록2014_뉴스타파 조현미 기자

“혹시 MBC 기자세요?”

“아, 뉴스타파인데요.”
“아 네.”
내가 MBC 기자인 줄 알고 명함을 건네려던 한국수력원자력 홍보팀 직원으로 보이는 그 사람은 그렇게 명함을 건네려다 말고 스쳐 지나갔다. 9월 18일 <핵피아, 그들만의 잔칫상… 20조 원전 산업> 보도를 시작한 후 한 달 쯤 지난 10월 16일 한수원 본사 1층 카페에서 있었던 일이다.
핵피아의 실체를 밝혀내보겠다는 호기로운 취지로 시작된 ‘2014년 원전묵시록’ 방송이 나가던 중 월성 3호기에서 뻘 제거 작업을 하던 잠수사가 사망했다. 취수구의 펌프 가동을 중단하지 않고 잠수 작업을 시켰다가 잠수사가 펌프에 휩쓸려 들어가 사망한 산업재해였다. 사고 발생 3주 가까이 시신을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유가족이 한수원 본사로 농성을 하러 올라왔고 이를 취재하러 갔다가 한수원 홍보팀 직원을 마주친 것이다.
농성 취재를 마치고 다시 1층 카페 안으로 들어가 보니 ‘진짜’ MBC 기자는 한수원 직원 서너 명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한수원 직원들은 뭔가를 열심히 받아 적고 있었다. 그날 취재한 내용은 결국 MBC에는 보도되지 않았다.
굳이 이 날 있었던 일을 되새기는 이유는 언론에 대응하는 한수원의 태도 때문이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9월 중순부터 최근까지 25개 넘는 리포트를 하면서 한수원으로부터 제대로 된 답변을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9월 18일 첫 보도 직전, 방사성 기체 폐기물 무방비 배출과 관련, 한수원 본사 직원 3명이 뉴스타파 사무실을 찾아와 해명을 한 것과 잠수사 사망 사고 관련해 월성 핵발전소에서 서면 답변을 한 것을 빼고는 말이다. 업무 담당자는 홍보팀에게 문의하라고 하고 홍보팀은 한 번 통화가 되면 확인해 보겠다고 한 후로 연락두절이었다. 다시 전화를 걸면 어김없이 회의 중이거나 출장을 갔다고 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취재진이 의미 있는 보도를 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제보자들 덕분이었다. 리포트가 거듭되면서 원전 업계와 연관된 여러 사람들로부터 의미 있는 제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여러 루트로 확인을 거쳐 보도가 나갈 수 있었다.
<영광 6호기, 방사성 기체 폐기물 ‘무방비 배출’ 첫 확인(2014.9.18>, <핵발전소 컴퓨터 망 ‘비번’ 공유…용역업체 대리결재 횡행(2014.9.23)>, <한수원 18조 납품 시장, 누가 많이 먹었나?>(2014.10.2)>, <원자력 학계 ‘대부’들, 원전 기업 주식 무상 소유 드러나(2014.11.4)>, <한수원, 입찰관련 내부 문건까지 민간업체에 수시로 유출(2014.11.11)> 등 주요 보도 중 상당수는 제보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보도들이었다. 이 리포트들은 다른 선배, 동료가 보도한 것들인데 이들은 아직도 원전묵시록 취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부득이 내가 수상 소감을 대신 쓰게 됐다.
이번 보도가 취재팀에게도 의미 있었던 것은 다른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협동 작업으로 진행됐기 때문이다. 취재팀은 이번 보도를 위해 7월부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나라살림연구소, 좋은예산센터 등 예산과 환경, 에너지, 정보공개 관련 전문 시민단체 6곳과 공동 기획을 준비했다.
뉴스타파 데이터 팀도 수개월 동안 고생이 많았다. 지난 8년 동안 한수원의 납품계약 내역을 입수해 분석하고 2012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한수원 직원들과 납품업체에서 벌어진 범죄 관련 167개의 판결문을 전국 법원으로부터 자료를 받아 전수 조사를 벌였다.
원전묵시록은 2015년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핵발전소는 국가 1급 보안시설이고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곳이다 보니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그리고 원전 비리들이 터져 나오기 전까지는 모두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러던 것이 서서히 베일을 벗기 시작했고 이제 양파 껍질 하나 벗긴 기분이다. 그래서 이번 보도는 끝난 듯 끝나지 않은 것 같다. 팀장인 박중석 선배는 그래서 이 수상소감을 쓰는 오늘도 열심히 내진설계 전문가를 찾고 있다.
내가 취재했던 것은 주로 원전 업계의 홍보 전략이었다. 한수원의 한 해 홍보예산 100억 원을 비롯해 한국원자력문화재단 등의 홍보 예산을 추려보니 한 해 동안 200억 원이 넘었다. 이 돈은 대부분 신문과 방송사로 흘러들어간다. 언론사 입장에서는 거대 광고주 중 하나가 바로 원전 업계인 셈이다.
신문사에서는 홍보성 단신 기사 하나 써주고 1천만 원의 광고비를 받았다. 방송에서는 협찬비를 받고 드라마에 원전 홍보성 대사를 넣어주거나 퀴즈프로그램에서 원전 관련 문제를 출제해주기도 했다. 일반화된 홍보 기법이라는 데 나만 몰랐다. 초중고 교과서를 전수 조사해 원전과 관련된 부정적인 내용은 원전 친화적인 내용으로 수정 요구하는 작업도 수년 동안 이뤄져 왔다. 이들의 꼼꼼함과 집요함, 그리고 전 방위적인 홍보 전략은 다름 아닌 뉴스타파가 배워야 할 덕목(?)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취재팀은 아직 여름휴가도 못 갔다. 부디 올해가 가기 전에 여름휴가를 다녀오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