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회 기획다큐부문_느린 학습자를 아십니까-경계선 지능 심층취재_EBS 이상미 기자

올해 1월, 한 교원단체가 주관하는 토론회를 참관했다. 여기서 ‘경계선 지능’(IQ 71~84)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접했다. 현장에 있던 교사들은 지금까지 지도하기 힘들었던 학생들의 특징이 경계선 지능과 일치한다며 큰 관심을 나타냈다. 이 아이들이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렇다 할 대책 없이 방치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특히 이들이 한 반에 3명, 전국적으로 8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돼 사소하게 넘길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워낙 생소한 주제여서 사전 취재에만 두 달이 소요됐다. 인터넷에는 참고할 만한 정보가 없어 막막했다. 전문가를 찾기 위해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교육학과 교수와 특수교육과 교수를 닥치는 대로 접촉했지만 대부분 현실을 잘 몰랐다. 어떤 교수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며 취재를 만류하기도 했다. 오랜 수소문 끝에 해당 전문가들을 한명씩 만날 수 있었다. 이와 동시에 국내외 논문 조사도 시작했다. 국회도서관에서 국내 학위 논문과 학술지에 실린 논문 25편을 전부 분석했고, 필요한 경우 저자를 직접 만났다.
본 취재는 산 넘어 산이었다. 이 기획의 당사자인 경계선 지능 학생을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다. 학교에서 지능 검사를 하지 않아 이들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교육복지와 특수교육 분야 담당자를 전부 접촉하고, 이 아이들이 있을 법한 사회복지시설과 사설 치료기관에도 발품을 팔았다. 어렵사리 경계선 지능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와 대안학교, 학부모 모임 등을 찾아냈지만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사회적 낙인에 대한 우려 때문에 거절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지원을 절실하게 바라면서도 사회적 낙인이 두려워 나서질 못하는 당사자와 가족들의 마음을 먼저 이해해야만 했다.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보다 그들과 같은 자리에 서서 공감하려고 애썼다. 아이들의 아픔을 이용해 자극적인 보도를 하지 않겠다고 거듭 약속했고, 문제를 공론화시키기 위해서는 당사자들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설득했다. 몇 달을 매달린 끝에 당사자와 가족들의 신뢰를 얻어 본격적으로 취재를 시작할 수 있었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경계선 지능 심층취재인 만큼 관련 내용을 빠짐없이 집대성하는데 최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200명에 달하는 인터뷰와 25건의 연구 자료를 소주제로 분류하고 정리했다. 특정인의 견해에 치우지지 않기 위해 해당 분야의 전문가를 모두 만나 자문을 구했다. 특히, 국내 최초로 경계선 지능에 대한 박사 학위 논문을 쓴 사람, 경계선 지능에 대한 외국 서적을 번역한 사람, 경계선 지능 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 사람, 국내 유일하게 경계선 지능 학생을 위한 대안학교를 설립한 사람 등 학계와 현장을 가리지 않고 의견을 청취했다.
무엇보다 경계선 지능 당사자와 학부모의 목소리를 듣는 데 집중했다. 생애주기별 분석을 위해 경계선 지능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20대 성인, 40대 성인을 골고루 취재했다. 일반 학교에 재학 중인 경계선 지능 학생과 대안 학교에 다니는 경계선 지능 학생을 비교 분석했다. 학부모 간담회도 가졌다. 보다 많은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인터넷 카페에서 학부모 설문조사도 실시했다. 이렇게 취재한 내용은 EBS 뉴스에서 ‘느린 학습자를 아십니까’라는 제목으로 총 26편에 걸쳐 3주 동안 방송됐다. 국내 언론에서 경계선 지능의 문제와 원인, 대안 등을 심층취재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듯 우리 사회에서 느린학습자라는 단어는 여전히 낯설고 생소하다. 하지만 보도를 통해 느린학습자에 대한 교육계 안팎의 관심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번 기획을 통해 묻고 싶었던 ‘느린학습자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이 작은 씨앗이 되어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