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2회 뉴스부문_서울시, 지하 '빈 공간 위험' 197곳 미리 알았다_SBS 김도균, 정윤식, 하대석, 권영인 기자

어린 시절 처음 수영을 배우던 기억을 떠올려봅니다. 처음엔 물에 들어가는 것조차 두려워 벽을 붙잡고 슬슬 기어 들어갑니다. 깊은 수영장 물에 잔뜩 겁을 먹고는 벽을 붙잡고만 서있을 뿐입니다. 몸을 눕히는 건 상상도 못하지요. 그러다 다른 사람들이 뜨는 걸 보고는 ‘아, 저렇게 뜰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배영을 배울 땐 더했습니다. 엎어지는 것도 겁나는데 자빠지라니 물만 먹으라는 소리로만 들립니다. 그러다 조금씩 물이 나를 지탱할 수 있다는 걸 알아갑니다. 곧 몸이 물에 뜬다는 믿음을 갖게 되고 그렇게 물에 뜨게 됐습니다. 결국 믿음 때문에 수영을 할 수 있었던 겁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하지만 그만큼 없으면 치명적인 것도 바로 그런 믿음인 것 같습니다. 과신하다 된통 물을 먹고 나면 한동안 물에 들어가는 게 또다시 무서웠으니 말입니다.

취재 후기를 이렇게 뜬금없는 이야기로 시작한 건 바로 ‘믿음’이라는 삶의 필요조건 때문입니다. 올해 들어 사람들 사이에 급속히 퍼져간 이른바 ‘싱크홀’에 대한 공포는 바로 그 ‘믿음’이 무너지면서 생기는 공포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삶의 필요조건’이 위협받는 건 상당한 위협입니다. 극한 상황까지 가정해 본다면, 걸음을 한 발 딛을 수도 없고, 심지어 한 자리에 서있는 것조차 힘들어 질 수 있으니까요.

서울 곳곳의 도로에 자꾸 구멍이 뚫렸습니다. 강서구 증미역 부근에서, 국회 앞에서 꺼졌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별 것 아니려니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송파구 지역에서 연달아 동공이 생기면서 사람들은 관심이 순식간에 몰리기 시작했고, 언론도 주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느새 사회부 사건팀 내근자 전달사항엔 ‘어디 땅 꺼지는 곳 없는지 잘 살피라’는 게 들어갔습니다. 그러다 석촌지하차도 부근에서 거대한 빈 공간이 발견되는 상황까지 생겼습니다. 이젠 어디 다니기가 겁난다, 차타고 가다가 어디 빠지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서울시는 중간발표부터 석촌지하차도 아래 빈공간의 원인으로 지하철 9호선 공사를 지목했습니다. 지하철 9호선 공사가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은 논외로 하고 과연 이러한 현상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서울시가 몰랐을지 사람들은 궁금해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하철 9호선 공사를 하는 삼성물산은 이런 가능성을 알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이걸 서울시에 알렸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사실상 알았을 거다’라는 추측이 무성했지만 서울시는 답이 없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지난 5월부터 우리 사회의 안전 실태를 돌아보는 안전시리즈를 제작 하고 있었습니다. 싱크홀 공포도 같은 맥락에서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개인적인 관심도 컸습니다. 기자라면 모두가 그렇겠지만 허구한 날 돌아다니다 보니 타고 가던 차가 어디 빠지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으니까요. 그러던 중 한 취재원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서울시가 지반 상황을 살펴보는 팀까지 만든 걸로 아는데 이걸 왜 몰랐을까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취재는 거기서 시작됐습니다. 서울시가 미리 알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필요했습니다. 관련 자료를 이곳 저곳에 문의해 모으다가 197곳의 동공 발생 우려 구간 리스트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지반 탐사 용역 조사까지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발품 팔며 돌아다니다 얻게 된 용역 보고서 내용은 놀라웠습니다. 지반 상태가 우려되는 곳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이후 이 보고서에 대한 설명과 향후 조치 내용 등을 취재하기 시작했는데,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이 내용을 아는 사람을 찾기가 만만치 않았던 겁니다. 관련 과 이곳저곳에 전화를 해도, 이 사람 저 사람과 통화를 해도 아예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었습니다. 무슨 말이냐, 그런 게 있느냐, 보여 줄 수 있으냐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인사야 당연히 나는 것이겠지만 업무 지속성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확연히 나타낫습니다. 용역보고서 결제 라인에 있던 사람 대부분도 더 이상 시청 직원으로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틀린 그림 찾기’를 하듯 ‘아는 사람 찾기’에 나섰고 겨우 몇 명으로부터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조치는 없었습니다. ‘지켜보자’는 게 결론이었습니다. 이런 문건들이 작성된 시점 전후로 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꼼꼼히 따져봤습니다. 취재는 풀려갔지만 마음은 답답해졌습니다. 취재를 마치고 보도 가치를 따져봤습니다. 그러다 서울시가 과연 지하철 공사 탓만 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 끝에 기사를 써야겠다는 결론을 낼 수 있었습니다. 또 서울시의 행정은 다른 지자체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서울시의 행정을 보고 다른 지자체가 따라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서울시에 대한 보도지만 단순히 서울에 머무는 보도는 아니라는 확신도 생겼습니다. 다른 지자체도 같은 단계를 밟지 않아야 했습니다.

또 사람들의 ‘싱크홀 공포’는 정보가 명확히 공개되지 않아 생긴 면도 크다고 판단했습니다. 석촌 지하차도 동공을 최초에 급히 덮은 뒤 나온 반응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두려움은 명확히 알게 되면 쉽게 사라질 수 있습니다. 모르는 상태가 빚어낸 두려움은 특히 그렇습니다. 때문에 과연 어떤 크기에 어떤 모습으로 동공이 생겼는지, 확실히 공개해야겠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선배들의 도움으로 이 내용이 낱낱이 공개됐습니다. 그리고 그 작업 가운데 지하철 구간과 동공 발생 구간의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새로운 팩트까지 나올 수 있었습니다.

물론 서울에서 다른 나라처럼 거대한 수 십 미터의 싱크홀이 생길 확률은 희박합니다. 그런 거대 싱크홀은 대부분 석회암 지대에서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난개발된 지하 상태를 볼 때 우리나라도 안전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세월호 사태를 계기로 우리사회에서 안전이 화두가 된 지금, 우리의 ‘삶의 필요조건’인 믿음을 지켜줄 수 있는 행정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글을 마치며 함께 취재하느라 고생한 정윤식 기자와 권영인·하대석 선배. 언제나 새로운 도전에 자극을 주시고 지지해주신 시민사회부 원일희 부장과 이주상 선배, 취재할 시간을 배려해 주고 항상 진심어린 조언을 해준 시경 캡 김호선 선배와 바이스 심영구 선배 등 시민사회부 모든 선후배 동료 기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또 보도 당일까지도 취재 내용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을 때 큰 도움을 주신 이주형·박민하 선배 등 편집부 선배들 등 보도국 모든 선후배 동료들에게도 감사합니다. 끝으로 항상 응원해주는 가족들과 사랑하는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