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회 뉴스부문_육군 28사단 윤 일병 폭행 사망_KBS 윤 진 기자

우연히 한 술자리에서 “맞아서 숨진 군인이 있는데, 국방부가 일 키우기 싫어서 만두 먹다 죽었다고 발표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귀가 번쩍 뜨였다. 이때부터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의 취재가 시작됐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음모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괜히 떠드는 소리일 것 같기도 했고, 국방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비난거리를 만들어 내려고 지어낸 얘기일 것 같았다. 찜찜할 땐, 그냥 넘기면 안 된다. 그냥 넘어가면, 나중에 꼭 후회할 일이 생긴다. 이때가 동부전선 GOP 부대 총기 난사 사건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던 6월 말경이다.

 

사건의 실체를 먼저 확인해야 했다. 4월에 일어난 일인데다, 소규모 독립부대인 의무대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 목격자도 많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 기록을 찾아봤다. 가족들이 억울함을 풀어 달라며 민원을 넣었을까 해서였다. 군 사건을 많이 맡는 변호사들을 수소문했다. 법조팀에서 알았던 법조인들의 도움을 받았다. 증언이나 전언보다는 물증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다. 가장 먼저 취재팀이 입수한 것은 사건 가해자들에 대한 공소장이었다. 가해 병사는 4명. 눈을 의심하게 할 만한 혐의사항들이 줄줄이 적시돼 있었다. 폭행은 일상적이었다. 잠 안 재우기, 치약 고문, 가래침 뱉어 핥게 하기…. 이런 가혹행위들 속에서 윤 일병은 의무대 회식이란 명목으로 만두를 먹었고, 먹으면서도 무지막지하게 맞았다. 그러다 숨졌다. “바지에 오줌을 누었습니다.” 윤 일병의 마지막 말이었다.

 

공소장만 봐도 군 당국은 폭행과 가혹행위의 실체를 제법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만두 먹다 질식해 숨졌다.’고 발표했다. 공소장 내용만으로도 보도 가치가 크다고 판단했다. 첫 보도가 나갔다. 인터넷 댓글 등을 통해 기사에 대한 여론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음날, 마침 군 인권센터에서 이 사건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군 인권센터도 취재팀과 같은 시기에 이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고 있었던 터다. 가해 병사 4명 중 주동자 1명에게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폭행의 정도가 심해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파장이 커지면서 첫 보도를 한 KBS 취재팀에 이런저런 제보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마침내 1,200페이지 분량의 사건 수사기록 전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수사기록은 읽는 것 자체가 큰 고통이었다. 폭행을 목격한 병사 가운데 수사기관에서 진술서를 작성한 병사만도 10명이 넘었다. 시기와 장소, 폭행의 이유와 강도를 그들은 비교적 소상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상부나 외부에 폭행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현장검증 기록도 있었다. 사망 당시 상황을 태연히 재연하는 가해 병사들의 사진을 볼 때는 등 뒤에 윤 일병의 원혼이 서 있는 것 같아 흠칫 놀라기도 했다. 하나하나, 뉴스로 다 보도했다. 한 생명이 희생된 사건인 만큼 이것저것 재지 않고, 보도할 수 있는 건 다 하고자 했다. 그러다 부검 감정서를 다룰 차례가 됐다. 윤 일병의 사망 원인을 밝혀 줄 가장 정확한 단서였다. 질식한 사람이 “바지에 오줌을 누었습니다.”란 말을 정확히 하고, 켁켁거림도 없이 정신을 잃었다? ‘질식사’란 결론은 부검의가 내린 것이었는데, 군 당국의 조사 결과는 하나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부검 감정서를 들고 법의학 전문가를 찾아갔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구타에 의한 쇼크사’라는 소견이 나왔다. 윤 일병의 기도와 입에서 발견된 음식물은, 심폐소생술을 하는 과정에서 위 속 음식물이 역류한 것일 뿐 사망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윤 일병이 응급실에 후송된 뒤 받았던 진료 행위를 기록한 의무기록지도 엄청난 진실을 담고 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 약자들이 가득한 기록. 이번에도 의료계 전문가를 찾아갔다. 답변은 이번에도 단순 명료했다. 구타에 의한 장기 손상과 그에 따른 염증 반응, 과다출혈이었다. 의무기록지와 부검 감정서를 종합하면 윤 일병이 어떻게 죽었는지,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뒤늦게 입수한 사건 초기 기록에선, 부검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군 수사 관계자들이 사인을 ‘질식사’로 결론 내린 흔적들이 나왔다. 의도적이었든 단순 실수였든, 군은 처음부터 ‘질식사’를 원했던 것이다.

 

취재팀의 보도로 군 수뇌부 일부가 직을 내놔야 했고, 병영 혁신 방안이 발표됐고, 군 사법체계 개혁론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뿌듯하거나 기쁘지 않다. 여론이 잠잠해 지면, 이 혁신안들은 서류철 속에 묻혀 빛을 잃을 것 같기 때문이다. 윤 일병의 죽음이 묻히지 않기 위해, 앞으로도 언론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끝으로, 억울한 죽음이 세상에 드러날 수 있도록 취재팀에게 도움을 아끼지 않은 여러 전문가들께 진심으로 존경의 마음을 담아 감사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