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회 기획다큐부문_홈플러스의 ‘경품사기극’_MBC 이호찬 기자

아이템 고민에 빠져 2580 제보 게시판을 뒤적거리던 어느 날. 한 건의 제보가 눈에 띄었습니다. ‘홈플러스의 경품 행사가 수상하다!’ 올해 초 홈플러스가 고가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내걸고 경품 행사를 진행했는데, 1등 상품인 다이아몬드가 지급된 것 같지 않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없는 번호였습니다. ‘장난인가? 아쉽네.’ 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메일을 남겨봤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답장이 왔습니다.

 

주변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일단 다이아몬드 판매사 측에 확인했습니다. 정보가 샐 수 있는 만큼, 경품 행사를 준비하는 기획사 직원이라 얘기하고 물었습니다. “다이아몬드 경품 행사를 준비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진행하면 되나요?” 그런데 뜻밖에도 “저희는 경품 행사에 제품을 내놓지 않습니다.”란 답이 돌아왔습니다. 홈플러스 얘기를 물으니 직원은 경계를 하면서도, 홈플러스 행사에 경품을 내놓은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제보가 사실일 확률이 높아졌습니다.

 

경품 차량 쪽도 알아봤습니다. 업체 측에 확인해보니, 홈플러스로 판매된 차량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홈플러스는 대금만 지급할 뿐 계약은 경품 당첨자 이름으로 진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취재 과정에서 경품 차량의 상당수가 지급이 안 된 걸로 드러났습니다. 홈플러스에도 취재 목적이 티 나지 않게 사전 확인을 해봤습니다. 홍보팀과 경품 행사 담당팀의 말이 달랐습니다.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홈플러스 취재를 서둘렀습니다. 홍보팀을 통하는 게 관례이지만, 바로 담당팀을 찾아갔습니다. 언론 취재에 익숙하지 않아 혹시나 빈틈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습니다. 다행히도(?) 담당 직원은 “고객과 연락이 안 돼 다이아몬드를 지급하지 못 했다. 연락이 쉽지 않다. 지급 안 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며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중요한 팩트를 인정했습니다.

 

홈플러스는 즉각 당첨자들에게 연락을 취했습니다. 홈플러스보다 먼저 당첨자들과 연락을 취해야 했습니다. 함께 취재한 홍해민 작가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당첨자 명단에는 휴대폰 가운데 번호가 지워져 있는데,이름 석 자와 휴대폰 번호 네 자리로 인터넷을 검색해 번호들을 복원해 냈습니다. 즉시 전화를 걸었고, 1등 아우디 승용차에 당첨됐던 고객에게서 홈플러스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은 적이 없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다른 당첨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경품 미지급자는 계속 늘어갔습니다.

 

‘경품 추첨조작’은 방송 이틀 전 최종 확인됐습니다. 2012년의 한 경품행사 1등 당첨자가 홈플러스 경품 담당 직원의 지인이란 사실을 파악했습니다. 당시 추첨 응모자가 50만 명이었으니, 지인이 당첨됐다는 것만으로도 조작 의혹을 제기할 순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부족했습니다. 여러 경로로 취재해 봤지만, 확실한 팩트는 찾지 못했습니다. 기사 쓰기에 들어가기 전 두 당사자에게 전화해 물었습니다. 물론 강력한 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거짓말이 말투에 그대로 묻어났습니다. 결국 이들은 불과 몇 시간 만에 말을 바꾸고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마지막 고민의 순간이었습니다. 추첨 조작이 젊은 직원 한 사람의 단 한 번 실수였고, 시정 조치를 즉각 취할 테니 방송에서 이 내용은 빼달라는 부탁이 있었습니다. 방송이 나갈 경우 실수한 직원의 피해가 너무 크고, 잘못이 없는 다른 직원들까지 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것. 고발 기사를 쓸 때 종종 드는 고민입니다. 문제점을 알리고 개선하는 것이 보도의 목적인데 보도 전 이미 문제점을 고치겠다고 나올 때, 잘못한 것 이상의 책임이 당사자들에게 지워질 때 말입니다. 고민 끝에 기사는 사실대로 작성했습니다. 한 직원의 ‘실수’가 아닐 것이다, 고민스럽더라도 기사를 안 낸 사례는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보도 이후 추첨 조작이 수차례 더 있었고, 연루자도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가장 문제 삼고 싶었던 부분 중 하나는 사실 홈플러스의 개인정보 판매였습니다. 응모권 뒤에 ‘제공 보험사’를 명시했기 때문에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게 홈플러스 입장이지만, 경품 행사에 응모한 시민들 중 ‘제공’이 곧 ‘판매’이고, 이 개인정보를 팔아 홈플러스가 행사 당 몇 억 원 씩 수익을 남긴다고 생각한 시민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보도 이후 홈플러스는 경품 행사를 통해 모은 고객 정보 판매는 당분간 중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고객정보 판매에 대해선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홈플러스만의 문제가 아니겠지요. 기회가 있으면 추가 취재해 보고 싶은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