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0회 뉴스부문_고위 공직 후보자 인사검증 연속보도_KBS 김연주 기자

“폭탄주 만 잔 마셔봐야 소용없어”

문창극 총리후보자 인사검증 보도가 나간 날 한 선배는 한탄했다. 아무리 취재원을 만들고 기사를 발굴해봐야 이런 ‘우연’과 ‘운’은 이길 수 없다고 말이다. 이번 후기를 통해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취재의 어려움과 극복 과정을 생생히 적어서 ‘몰랐던 노력이 있었구나’ 고개 끄덕이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짜내고 끼워 맞춰도 ‘우연한 발견’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의문만 쌓여간다. 인사검증이 아닌 다른 취재를 가는 차 안에서 왜 잠을 자지 않고 스마트폰을 꺼냈는지, 왜 연예뉴스 대신 ‘문창극’이란 이름을 검색했는지, 교회 장로임을 알게 됐을 때 왜 굳이 교회 홈페이지까지 들어가서 설교자명으로 다시 검색을 해봤는지… ‘촉이 좋거나 끈기가 있거나’라는 조건을 만족하는 ‘좋은 기자’ 합집합이 아닌, 둘 다 없는 여집합에 속해 있는 ‘그냥 기자’인 나로서는 아마 평생 그 의문을 풀 수 없을 것이다.

문창극 총리후보자가 지명된 날 인사검증TF팀도 첫 회의를 했다. 보통 고위 공직 경력이 있는 후보자의 경우에는 관보에 공개된 재산내역을 토대로 등기부 등본을 떼어보고 부동산 투기, 위장전입, 납세 여부 등 어떤 부분의 검증에 주력할지 범위를 좁혀 나간다. 문 후보자는 공직 경력이 없는 후보자여서 관보를 통해 재산내역을 확인할 수 없었다. 재산내역이 없으니 납세 부분도 길이 막혔다. 이력을 추적할 다른 실마리를 찾는 사이 후보자의 과거 칼럼을 두고 기사가 쏟아졌다. 제대로 뛸 자신이 없었던 나는 다른 취재로 잠시나마 자리를 비울 수 있다는 걸 위안 삼았다. 상황을 회피하려는, 지극히 불순한 의도로 탔던 취재차량 안에서 문제의 강연 영상을 발견한 것이다.

강연과 토크쇼 출연 등 영상은 모두 6개였다. 인터뷰 할 사람이 약속을 제대로 지켰다면 처음 10분 정도만 들어보고 그냥 넘겼을 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이 지각을 하는 바람에 1시간이 넘는 강연을 차 안에서 다 듣게 됐다. 강연 내용이 한국 근현대사로 이어지면서 몇 시간 전만 해도 도망치듯 나왔던 사무실로 얼른 돌아가고 싶어졌다.

다음날까지 팀원들과 함께 6개 영상을 수차례 반복해서 듣고 내용을 검토했다. 교회 강연인 점을 충분히 감안했다. 책의 내용을 인용한 부분도 ‘인용’이란 점을 생각해 모두 제외했다. 국민들의 일반적인 역사인식에 비춰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을 발췌했다. 이 또한 강연의 전체 취지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전후 맥락을 설명해 주기로 했다. 6월 11일 뉴스가 나간 뒤 생일에도 받지 못한 과분한 문자와 전화를 받았다. 소인배인 나로서는 이해 못할, 자기 일처럼 뿌듯해하는 동료들을 보며 이 ‘우연한 발견’이 참 다행이다 싶었다.

지난 5월 선후배들은 공영방송의 핵심인 보도 독립을 위해 싸웠다. 제작거부와 파업을 하고 복귀한 뒤, 달라진 뉴스를 내보내자는 의지로 내놓은 첫 메뉴가 인사검증TF팀이었다. 한 달 동안의 의미 있고 뜨거운 싸움에 나는 참여하지 못했다. 개인적인 일로 회사를 쉬며 멀리서 지켜만 봤다. 솔직히 함께 못한 미안함 보다는 잘 쉬고 왔다는 마음이 더 컸다. 그런데 이번 보도로 축하를 받을 때마다 꾹꾹 접어놨던 미안함이란 풍선이 점차 커진다. 뻥 터지기 전에 고백한다. 제대로 된 보도환경을 만들려고 애쓴, 그래서 인사검증TF팀을 다시 가동시킨, 그리하여 ‘우연한 발견’을 이끌어 낸 동료들이야 말로 이 상의 진짜 주인이라고.

우연히 발견한, 쉬운 특종이 맞다. 하지만 문 후보자 외에 다른 후보자에 대한 검증 보도는 결코 쉽지 않았다. 인사검증TF팀 선배들은 ‘이병기 국정원장 후보자 1000만원 벌금’ 등의 보도를 통해 노력하는 취재가 어떤 것인지 보여 줬다. 신기한 ‘귀신의 수’로 부족한 팩트를 채워준 김귀수 선배, 끈기와 끈기로 김희정 후보자 후원금 내역을 파헤친 이병도 선배, 수백편이 넘는 후보자들의 논문과 싸워 이긴 정수영 선배 모두 정말 수고하셨다. 선배들의 발이 되어 제대로 뛰어 준, 동영상을 나눠 본 죄로 팔자에도 없는 신상털이를 당한 후배 홍성희 기자에겐 고마움과 미안함을 같이 전한다. 입사 3일 만에 팀에 합류해 혹독한 수습기간을 견뎌낸 데이터매니저 윤지희와 맥가이버와 셜록을 합친 듯한 김대석 군이 없었다면 논문부터 후원금까지 많은 데이터를 살펴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태풍이 쳐도 날개를 접지 않고 먹이도 물어다 주고 비도 막아준 어미새 팀장께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5년 전 쓰레기봉투에서 주운 문건으로 세상을 들썩였으나 “어쩌다 주워 온, 노력 없이 얻은 걸 인정할 수 없다”는 나의 매몰찬 독설을 들어야 했던 한 동기 녀석에게 이제 나도 같은 처지가 되었음을 전하며 오명을 벗기 위한 자신 없는 파이팅을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