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회 지역보도부문 뉴스상_ 병실에 갇힌 황혼_KBS창원 송수진 기자

그의 취미는 사진이었다. 7,80년대 부산에서 큰 해운회사를 운영했던 그는 산으로 들로 사물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찾아 헤맸다. 우리 집에는 하와이나 인도네시아 어느 섬에 사는 기괴한 식물들의 사진이 많았는데 그건 모두 그의 작품이었다. 잎을 뚫고 나갈 듯 거침없이 뻗은 잎맥, 무게를 자랑하듯 아래로 축 처진 이파리는 흘러넘치는 생명, 그 자체였던 거 같다.

여든을 넘긴 그의 집은 이제 요양병원이다. 내가 입사 3년차 때 이모가 돌아가셨으니까 올해로 5년째다. 손은 옹이 졌고 기골 장대하던 그를 떠받쳤던 발가락 마디마디는 화석처럼 굳어있다. 병명 알츠하이머성 치매. 이모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생명의 흔적이라곤 바셀린이 발린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희미한 숨소리뿐이다. 스스로 입증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 의해서만 늘 확인되는 것. 요양병원 중환자에게 생명이란 그런 게 아닐지 생각했다

 

요양병원 취재는 지금 내 앞에 누워있는 이모부와 내가 기억하는 이모부 사이의 간극에서부터 시작됐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구조적인 문제를 언급하기 위해 사례를 취재하는 게 아니라 사례 위주로 진행되는 방송 기사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글로 다 풀지 못하고 화면으로 보여줘야 하는 매체의 특성상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기자 위에 다른 옷을 입고 병원으로 들어가는 것. 그리고 들어가서 가급적 오래 있는 것. 아르바이트와 자원봉사를 구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병원을 취재할 것인가. 품질 좋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을 우려가 큰 병원, 요양과 다소 거리가 있을 법한 병원에 주목했다. 우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요양병원 등급 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은 곳을 추렸다. 이후 그 병원들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소개되는 것과 구글 지도에서 나타나는 실제 모습을 비교해봤다. 공단 입구, 아파트 상가 3층 등에 있으면서도 마치 쾌적한 숲 한 가운데 있는 것처럼 광고하고 있는 병원들을 취재 대상으로 삼았고 결국 자원봉사 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어르신들은 정이 많았다. 없던 먼지까지 만들어내는 듯한 내 서툰 비질을 보시며 기침을 연거푸 하셨지만 오히려 할머니 미소를 보내주셨다. 시작은 달랐지만 대부분 젊었을 때 얘기로 시작해 자녀, 손자 자랑으로 끝이 났는데 내가 사흘 동안 자원봉사를 했던 병원의 경우 보호자가 방문한 경우는 딱 한번 밖에 없었다. 요양병원은 시간, 가족으로부터 단절된 섬이었다.

 병원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담고 싶은 이야기는 자꾸 늘어나는데 취재는 만만치 않았다. 우선 볼펜형 카메라가 말썽이었다. 정상적인 움직임에도 잔상이 자꾸 남아 마치 온 몸에 모래주머니를 단 것처럼 무겁게 움직여야 했다. 전원과 녹화 기능만 있을 것 같이 생긴 카메라에 자동 녹화 중지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요즘 말로 멘붕이 오긴 했지만 더 많은 것을 보고 들어야 한다는 뜻으로 여겼다.

카메라에 담긴 현실은 카메라보다 훨씬 크고 무겁고 선명했다. 일반 병원보다 설립 기준이 낮지만 그마저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야간 당직 의사는 잘 없었다. 환자를 이용해 보험료를 타내려는 일부 경영진과 격무에 시달리는 요양보호사와 간호사. 관리에는 소홀한 지자체와 보건복지부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는 문제의 실타래는 요양병원 역시 친친 감고 있었다. 좀 다른 점이라면 당사자들의 침묵이다. 환자들은 자녀가 피해를 볼까봐 말을 잘 하지 않았고, 자녀(들이 침묵하는 이유는 잘 모르겠다) 역시. 한 병원은 위급 상황에서 응급조치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동의서를 자녀들로부터 받아놓기도 했다.

4월 말부터 시작된 취재는 어깨와 허리에 파스 자국이 희미해질 무렵인 5월 중순 즈음 마무리돼 방송됐다. 마침 KBS 기자협회 제작 거부 시점이었는데 회의 끝에 조금이라도 일찍 내보내자는 결론이 났다. 그러나 양대노조 파업으로 후속 취재와 보도는 불가능했다. 그리고 방송 후 일주일 뒤 전남 장성의 한 요양병원에서 불이 났다. 만약 이 보도가 전국 방송으로 나가고 그래서 당국이 좀 더 일찍 점검에 나섰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기자라는 두 글자가 더욱 무겁게 느껴질 뿐이다.

 

어느 소설 주인공의 말처럼 우리의 젊음이 노력해서 얻은 상이 아니 듯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삶의 가치는 누구에게나 동일하며 죽기 위해 병원을 찾는 사람은 없다. 요양병원/요양원이라는 제도를 만든 것만으로 사회적인 효를 다했다고 볼 수는 없다. 고령화의 저주와 축복 사이의 간극. 그 간극을 메우려는 사회적인 노력이 시작됐으면 좋겠다. ’조금만 미쳐서는 여기서 지내기 힘들다던 김 할아버지의 말은 내 평생의 십자가가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