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회 지역보도부문 뉴스상_황제노역, 우리는 법 앞에 평등한가_광주MBC 김인정 기자

세상은 불공평하다. 다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불공평과 불평등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내면을 형편없이 망가뜨린다. 한 남자가 있다. 벌금 수백억 원을 내지 않고 도망쳤던 재벌총수다. 4년 동안 해외에서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호화생활을 즐기고 돌아온 남자는 이제 하루 일당 5억 원짜리 노역을 시작하려 한다. 7주면 끝이다. 일반인의 하루 노역일당은 5만원이다. 누군가 이 남자의 벌금을 노역으로 갚으려면 1400년 가까이 일해야 한다. 14번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환생까지 들먹여야하는 이 불평등은 법으로 결정됐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헌법조항이 뉴질랜드에서 갓 돌아온 백발노인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모두가 지켜봤다.

‘법 앞에 우리는 평등한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취재진에게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다’는 현재완료형 답변을 하게 만든 이 남자는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다. 취재를 하면 할수록 이 남자에게는 도무지 불가능한 게 없어보였다. 재판을 받다가 유유히 해외로 도피하는 게 가능했고, 노역 일당을 일반인의 1만 배로 환산 받는 게 가능했다. 지역의 정치인과 경제계 인사들이 발 벗고 나서 이 남자에게 관대한 판결을 해달라고 구명운동을 했다. 지역 언론사를 가지고 있었던 그를 위해 지역 언론이 침묵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법 앞에 ‘황제’로 옹립됐다. 법 위에 돈이 있었다. 특혜는 구매 가능했다. 모든 특혜가 그에게는 활짝 열려있었다. 우리 사회가 가장 높게 섬기고 있는 것이 돈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취재 내내 우리를 따라다녔다.

그렇게 갖은 특혜를 누리며 도피에 성공한 회장님의 뉴질랜드 생활은 더욱 놀라웠다. 취재진은 돈이 없다며 달아난 회장님이 바다 건너에서 다시 황제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확인했다. 검찰이 소재지조차 모른다던 허재호는 인터넷 검색 몇 번으로 소재와 근황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뉴질랜드에서 공개적인 기업 활동을 하고 있었다. 노른자위 땅을 사들여 기업 활동을 하고 있었고, 한인사회에서는 큰손으로 유명했다. 뉴질랜드 현지 신문에서 7대 재벌로 다뤄지고 있었다. 뉴질랜드 안에서 그는 도피자가 아니라 유명 인사였다. 고액체납자가 아니라 최대주주였다.

뉴질랜드에서의 행보를 취재하기 쉬웠던데 비해, 지역 사회 안에서 허재호에 대해 발언해줄 사람을 찾기는 힘들었다. 다들 입을 다물기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허재호 사건을 불편해하고 난처해했다. 내놓고 인터뷰를 해주겠다는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바른 말을 하겠다며 나선 제보자들도 신분이 드러나 지역 사회 안에서 매장이 될까봐 극도로 몸을 사렸다. 취재원 보호가 우선이라 이미 확인된 사실들을 여러 경로로 두 번 세 번 검증해야 했다. 허재호는 드러난 환부일 따름이었고, 그의 윤리에 메스를 들이대자마자 지역사회의 카르텔과 부패가 그 실체를 드러냈다. 지역언론으로서 시급했던 책무는 누구보다 이 부패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잘 이야기하는 것보다 기어이 이야기하고 끝까지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허재호 취재에서 잊을 수 없는 장면이 하나 있다. 그날,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은 은회색 베라크루즈 차량 뒷좌석에 몸을 파묻은 채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차는 허재호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봤다는 대주아파트 분양 피해자들에게 가로막혀 있었다. 온몸으로 차를 막아선 그들의 유일한 요구는 대화였다. 분양 피해로 전 재산을 날리고 심장병까지 얻었다던 한 아주머니가 심장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놀란 기자들이 취재를 중단하고 아주머니를 주무르고 앰뷸런스를 불렀다. 하지만 허재호는 차 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끝까지 대화는 없었다. 그곳은 검찰청과 법원 앞이었다.

모든 사람이 가장 평등해야 할 공간에서 벌어진 촌극을 지켜보며 언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세상은 이미 불공평하다. 말조차 균등하지 않게 배분돼있다. 이 전제조건 아래서 제대로 된 대화와 화해가 가능할까.

그날, 현장에서 녹음해온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편집해 리포트에 실었다. 그리고 좀체 열리지 않던 차창 안으로 마이크를 밀어 넣어 녹음한 허재호의 목소리 또한 편집해 리포트에 실었다. 기사에서나마 그들의 목소리를 평등하게 싣는 것, 모두에게 발언권을 부여하고 1분 20초 동안이나마 모두가 동등한 무게로 이야기하는 공론장을 마련하는 것, 기사에서만이라도 건전하고 균형 잡힌 시민사회를 구현해내는 것이 언론의 몇 안 되는 존재 이유라고 믿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일당 5만 원짜리 노역을 산 사람들의 목소리와 사법부를 믿지 못해 부장검사를 피습한 사람의 목소리를 실었다. 법이 형평성을 잃었을 때, 사람들이 사법부를 믿지 못하게 됐을 때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하는 비용이 얼마나 큰지 알리고 싶었다.

이번 기사를 통해 마땅히 제자리를 찾아야 할 우리사회의 평등과 형평성이 제 좌푯값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갔기를 바란다. 그렇게 근사치에나마 점점 다가가다 보면, 어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