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회 지역보도부문 기획다큐상_산,들,바다의 노래_제주MBC 권혁태 기자

‘해는 이미 서산에 빛을 숨기고 어두운 빛을 사방에 들이밀어 오노라…’

1991년 4.3 위령제를 처음 진행했던 한 민중가수의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 하나가 취재의 시작이었습니다.

무장대 출신이라는 한 할아버지가 남긴 노래는 구슬프기도 했고 처연하기도 했습니다. 제주에서는 ‘산사람’이라 불리는 무장대의 생활과 문화는 그동안 밝혀진 것이 거의 없습니다. 막연히 ‘빨갱이’, ‘폭도’로 치부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노래가 선전과 선동으로 가득한 행진곡이 아니라 신세를 한탄하는 처연한 노래라는 것이 궁금증을 낳았고 취재가 시작됐습니다.

제주 4.3. 기념관도 생겼고 진상조사보고서도 있습니다. 국가추념일로 지정도 됐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사람들은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그저 ‘화해와 상생’이라는 정치적 수사만 가득합니다. 4.3은 오래되고 낡은 잊혀진 역사입니다.

역사교과서 왜곡과 1년에 한번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4.3 교육의 현실 속에서 이제 젊은 세대들은 점점 4.3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취재팀은 4.3이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진행됐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에 대해 설명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역사책과 달리 당시 사람들의 느낌과 감정을 고스란히 전하는 방법을 고민했고 취재팀은 노래에 주목했습니다.

4.3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숨졌는지, 불태워진 마을이 몇 곳인지는 이미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사람들의 감정과 삶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취재팀은 4.3 유족과 4.3관련 문화 운동단체들을 비롯해 일본으로 밀항을 간 무장대 출신들까지 취재 범위를 넓혀가면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노래도 있었고, 90이 넘은 노인의 서재에서 잠자던 낡은 악보도 있었습니다. 옛 노래들은 경찰과 우익단체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구전된 음도 없었고 악보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가사만 전해지는 곡들도 있었습니다. 취재팀은 모두 11곡의 옛 노래들을 찾아냈습니다. 노래와 관련된 사람들의 증언도 함께 모았고 증언과 옛 노래들은 홍대 앞 인디 밴드들에게 재해석을 부탁했습니다. 밴드와 증언자, 그리고 취재팀은 노래를 만들고 이야기를 나누며 4.3을 조금씩 깊이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음이 없는 노래들은 힙합 장르로, 증언에서 신나게 불렀다는 노래는 락 장르로 세분화해 음악을 만들었습니다. 노래와 관련된 증언자들의 영상은 뮤지션들에게 보내졌고 곡 당 수 십 통의 메일을 주고받으며 관련된 사람들의 스토리가 전해졌습니다.

이런 취재 방식을 통해 보다 당시에 가까운 노래들과 그 노래를 둘러싼 당시 상황들이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로 재해석된 노래들을 당시의 분위기에 맞게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촬영하며 프로그램을 구성했습니다. 음악 제작에는 우리나라 인디 음악계의 대표주자인 3호선 버터플라이, 사우스카니발, 갤럭시익스프레스, 게이트플라워즈, 요조, 가리온 등이 참여해 수준 높은 음악을 선보였습니다. 음악 감독을 맡아준 3호선 버터플라이의 성기완 감독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작품이었음을 이 자리를 통해 밝힙니다.

3만 명이 숨진 제주 4.3.

이번 프로그램은 이 현대사의 비극이 단순히 한반도 남단의 고립된 섬에서 벌어진 독립된 사건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 흐름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음을 노래를 통해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노래를 통한 재해석으로 박제화된 4.3의 기억을 오늘, 살아있는 역사, 끊나지 않은 역사임을 전달하려 노력했습니다. 단 1명의 시청자라도 4.3의 노래를 기억하고 불러준다면, 그것 또한 제작진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보람이자 영광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