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8회 기획다큐부문_ 군 성폭력 보고서_KBS 이병도 기자

군화로 감춘 일기장

지난해 12월 강원도 춘천 2군단 군사법원, 재판 방청을 온 한 가족들의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매서운 겨울 바람에 얼굴이 빨갛게 얼어터지는데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 분들에게서 받은 빨간색 예쁜 일기장…

읽는 내내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일기장은 슬픔과 분노를 토해내고 있었다.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며 스스로 군복을 입고 최전방에 선 28살 여군 장교의 꿈과 희망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군인이기 이전에 한 여성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느꼈을 치욕과 절망만이 가득했다. 상관의 계속되는 성추행과 가혹행위로 스러져 간 故 오혜란 대위의 일기장이다.

처음 오 대위 사건을 접하고, 군대 안에서 벌어지는 군인간 성폭력 문제를 취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다녀오는 군대, 많은 사람들이 그 폐쇄성을 경험한다. 계급은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한다. 상관이 하급자에게 지시를 하면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따라야 한다. 성폭력이 권력관계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점을 감안하면 군대는 분명 성폭력의 사각지대이다. 또 일단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거의 외부로 알려지지 않는다. 군이 지닌 특유의 폐쇄성 때문이다. 사건을 덮기 위해 피해자를 회유하고 겁박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 사정은 취재과정에서 셀 수 없이 고스란히 확인됐다.

선임 병사들의 성추행과 가혹행위로 정신질환을 앓게 된 한 사병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추행을 견디다 못해 중대장에게 신고했지만 중대장은 오히려 이 사병을 회유하고 협박했다. ‘너도 군기문란으로 영창에 갈 수 있다!’ 이 말 한마디에 이 사병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씻을 수 없는 마음의 병을 얻게 됐다. 마음의 병이 중해져서 헌병대 조사가 이뤄졌지만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증거가 피해자의 진술뿐인데다 진술 또한 오락가락한다는 것이다. 극심한 충격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피해자에게 진술의 일관성을 요구한 것이다.

오랜 시간의 설득 끝에 인터뷰를 하면서도 이 사병은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다. 올해 14년차, 슬픈 사연의 취재원들을 많이 만나봤어도 그렇게 슬피 우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사람의 눈물이 그렇게 많은 줄, 그 날 처음 알았다……

이 밖에 취재과정에서 다른 피해 사례를 많이 입수할 수 있었다. 그 중엔 현역 장성에 의한 성추행 사례도 있었고, 선임자에 의한 성폭행 사례도 있었다. 그러나 그 피해자들을 만나기는 무척 힘들었다. 현역 군인은 물론 전역한 군인들조차 자신의 얘기를 꺼내놓기 두려워했다. 한결같이 내뱉은 말, “제가 왜 얘기 못하는지 다 아시잖아요….”

故 오 대위는 자신이 겪은 일들, 마음의 상처들을 일기장에 적었다. 목숨을 끊기 전엔 자신의 업무용 노트북에 저장했던 피해 사례를 A4에 출력하고 그 뒷면에 유서를 썼다. 자신의 죽음으로 대한민국 여군의 명예를 회복시켜달라는 울부짖음이었다. 그리고 이 일기장과 유서를 목숨을 끊었던 자신의 차안 바닥 시트 밑에 감췄다. 그리고 그 위에 자신의 발을 올려놓았다. 다른 사람, 특히 군 수사당국이 발견하기를 원치 않았던 셈이다. 결국 그 일기장과 유서는 군 당국의 감식이 끝난 뒤, 아버지에 의해 발견됐다. 오 대위가 군화로 감춘 일기장…왜였을까…?

(이번 취재를 위해 도와주신 군인권센터 가족 여러분, 김광진 의원실 여러분, 함께 취재한 후배 김연주 기자에게 한없는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감춰질 진실을 세상에 알리는 소중한 취재를 할 수 있도록 스스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