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회_기획다큐부문_고위공직자 재취업보고서 -공생의 세계_KBS 공아영 기자

<은퇴 없는 고위공직자-악어와 악어새> KBS탐사보도팀 공아영

지난여름은 나에겐 그 어느 때보다 무더웠다. 8월 17일, 광복절 특집 <적도에 묻힌이름-고려독립청년당>이란 프로그램을 끝낸 뒤, 다음 아이템을 두고 고민의 늪에 빠져버렸다. 밤잠을 설치기를 한 달 여, 친한 국회 보좌관으로부터 묵직한 파일을 입수했다. 고위공직자들의 재취업과 관련된 자료였다. 최근 5년 동안 사기업에 재취업하겠다며 공직자윤리위원회에 신고한 건수 중, 4급 이상 고위공직자만 추려내니 1203건이었다. 주로 대기업에, 고액의 연봉과 고급차를 제공받고 사외이사나 고문, 감사 등의 이름을 달고 재취업하는 이들. 지금껏 공기업 재취업 문제는 여러 차례 다뤄져 왔으나, 대기업에 재취업한 경우, 그것도 5년 치의 방대한 자료를 심층적으로 다룬 프로그램은 없었다.

가공되지 않은 날 것의 데이터. 더 큰 문제는 퇴직 당시 소속기관과 직위, 옮겨간 업체 이름과 직위 등은 있는데, 가장 중요한 이름이 빠져 있었다. 1203명이 누구인지 찾는 작업부터 착수했다. 한 달이 넘게 걸렸다. 탐사보도가 늘 그렇듯, 구글링부터 수백통의 통화와 등기부등본 놀이, 법원 방문, 인맥 동원 등 온갖 취재방법을 총동원했다. 이번엔 그나마 고위공직자들이 대상이어서 공개된 정보 덕을 좀 볼 수 있었다.

엑셀시트에 1203명의 이름과 연락처, 주소가 채워져 가면서, 동시에 현장취재에 들어갔다. 우린 가능한 많은 인물을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하지만, 만나야 할 사람은 많은데, 우릴 만나주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하루는 한 대기업의 부회장을 만나기 위해, 집을 찾아갔다. 오전 7시 쯤 집 앞에 도착했다. 집은 강남 압구정동 유명 아파트였다. 하지만, 오래된 아파트였기에 취재기자의 오랜 뻗치기 경험에 의하면 내부 잠입이 어려운 경우는 아니었다. 그래서 계단에서 기다릴 요량으로 옷만 두둑이 껴입고 별 걱정 없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오판이었다. 그 아파트 동만 리모델링을 한 것이었다. 입구부터 최신 주상복합 저리가라의 삼엄한 경비에, 평수도 종전 소형에서 80여 평으로 바꾸면서 한 세대마다 엘리베이터가 한 대 씩 있는 구조로 바뀌어 있었다. 어찌어찌 눈을 피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리곤 ‘닫힘’ 버튼을 힘껏 눌렀다. ‘아싸!’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순간, ‘허걱’ 층 버튼이 눌러지지 않았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컬러바’가 떴다.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슴이 터질 듯 쿵쾅거렸다. ‘이대로 경비 아저씨한테 걸리면 뭐라고 둘러대지?’ ‘잘못 들어왔다고 할까.’ ‘청소하러 왔다고 할까.’ 별의별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기도를 시작했다. 순간, 기적이 찾아왔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그대로 8층까지 고고씽. 8층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다행히 나에 대해선 별 관심 없어보였다. 그리곤 1층으로 내려왔다. 마치 가족인양 섞여서 자연스레 현관문을 빠져나왔다. 이때부턴 아파트 안마당에서 기다렸다. 고급 외제차들 사이에 끼여 있는 낡은 봉고차를 모두들 힐끔거렸다. 그렇게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오전 10시까지 기다렸지만, 당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잠복과 잠입의 연속이었다. 한 낙하산 인사를 만나러 회사에 찾아갔을 때는 인터뷰를 거절하고 달아나는 바람에 15층부터 지하 2층까지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상대방 측에선 홍보팀 등 건장한 남성들과, 여비서 2명 등 10여 명을 동원해 2명에 불과한 취재진을 온몸으로 막았다. 본의 아니게 층마다 소란을 피운 점, 다른 직원들께 지면을 빌어 사과드린다.

고생 끝에 다행히 생각보다 많은 인물을 접촉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내가 그렇게 큰 죄를 저질렀냐”며 항변하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인터뷰하려면 공문을 보내라’며 카메라를 막았다. 어떤 기업체 관계자는 ‘고위공직자를 모셔오려면 ’제너시스는 기본이고, 그랜저를 주면 받지도 않는다. 몇 억의 스카우트 비용과 연봉이 필요하다‘는 고백을 해주기도 했다.

지난 5년 동안 재취업을 신청한 고위 공직자 가운데 93%가 심사를 통과해 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의 경험은 기업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고, 퇴직 공무원들에겐 능력을 더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재취업한 이들 상당수가 ’로비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현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정의를 벗어난 공생은 비리로 이어지기 마련이고, 그것은 공생이 아닌 공멸로 가는 길이다.

48분이란 한정된 프로그램의 시간상, 취재를 하고도 담지 못한 사례가 많았다. 기회가 되면 꼭 후속보도를 하려고 한다. 이번에 함께 한 후배 김연주, 최형원 기자. 발군의 취재력을 보여줬고,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kbs 리서처의 대모 지혜와 탐사제작부의 연예인 희라. 운기, 우혁이, 대석이. 이들이 있었기에 프로그램이 가능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늘 열정을 불사르는 kbs탐사보도팀. 이주형 팀장, 성재호, 이병도 선배. 지연이 사랑한다. 늘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백운기 국장과 감일상 부장께도 감사의 말씀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