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회_ 기획다큐부문_ 팔만대장경, 가려진 상처_ KBS 박재용 기자

보통 팔만대장경 하면 떠오르는 생각은 ‘수백 년이 지났어도 훼손 없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온 목판’이라는 이미지이다. 조상의 슬기와 지혜로, 해인사 장경판전이라는 건물 안에서 온전하게 보관돼 오고 있다는 그 느낌 말이다. 과연 그럴까?

기자는 취재원들을 만나면서 팔만대장경에 숨겨져 있는 불편한 진실을 알게 되었다. 대장경판의 훼손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으며 이에 따라 수리·복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처음 들었을 때는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팔만대장경도 나무로 만든 경판이 아니던가? 760여 년의 세월 동안 나무가 어떻게 온전히 보전될 수 있을까 하는 등의 의문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이번 취재에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팔만대장경에 대한 접근이었다. 숭례문이나 석가탑처럼 외부 노출되어 있으면 쉽게 확인이 가능하고 촬영을 할 수 있지만 팔만대장경의 경우 장경판전 안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해인사측에서 자물쇠를 열어주지 않으면 취재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설령 들어간다 해도 팔만여 개나 되는 경판 중에서 훼손된 경판들을 어떻게 발견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도 걱정이었다. 또한 발견하더라도 카메라를 들이대고 촬영을 할 수 있느냐는 또 다른 문제였다.

해인사측은 지금껏 해 왔듯이 판전과 판가, 그리고 보존 상태가 우수한 경판들을 중심으로 안내해 줬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취재 목적이 훼손된 경판을 찾아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판가에 꽂혀 있는 경판들에 온 신경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경판을 훑어보던 중 기자의 눈에 마구리 부분이 생경한 경판이 들어왔다. 수리된 경판이었다. 그 경판을 꺼내보자고 했다. 마구리와 경판을 이어주는 금속판인 장석 부분이 떨어져 있었다. 이 부분이 왜 이러는지 집요하게 물어봤다. 안내하던 스님이 약간 당황한 것 같았다. 보여주기 싫은 치부가 마치 세상에 드러난 듯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뒤 기자는 적극적으로 훼손된 경판을 찾아 나섰다. 10여분이 지났을 무렵 한쪽 판가에서 한 무더기의 훼손된 경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해인사 측에서 ‘팔만대장경 중복판 연구’를 위해 따로 모아놓은 것이었다. 스님이 적극적으로 촬영을 막았으나 일부 경판이 크게 훼손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문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기자는 해인사 팔만대장경 보존국장인 성안 스님으로부터 “훼손 상태가 심각한 경판은 300장 정도 되고 조그마한 손상이 있어 수리를 해야 하는 경판은 10,000장 정도 된다”는 인터뷰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구체적으로 훼손 상태 취재에 들어간 기자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대장경판의 훼손 정도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기 때문이다. ▶모서리가 톱으로 잘라져 글자까지 훼손된 경판 ▶톱으로 잘린 뒤 주변이 닳아 버린 경판 ▶여백 부분에 매직이나 스티커로 번호를 적어 놓은 경판 ▶좀이 슬어 좀 가루가 묻어 있거나 조그마한 구멍들이 난 경판 ▶마모가 심해 글자를 식별할 수 없는 경판 ▶벌레의 허물이 묻어 있는 경판 ▶장석과 못이 빠져 마구리가 없는 경판 ▶못 주변에 금이 가고 곰팡이가 핀 경판 등 실로 충격적이었다.

그럼 이런 일이 언제, 어떻게 해서 발생했을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손상은 그렇다손 치고 경판을 톱으로 잘라 내거나 못을 잘못 박아 금이 생긴 경우는 어떻게 된 것일까? 이런 의문을 풀기 위해 기자는 대장경 수리·보존과 관련된 사람들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이들의 기억에 의지해 시간 여행을 떠났다.

흔히들 해인사에 있는 팔만대장경은 모두 다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대다수는 고려 고종 때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무른 나무로 만든 경판이나 대반야경처럼 인경을 많이 한 경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마모가 심하게 되는데 이런 경판들은 후대 즉 조선시대 혹은 일제 강점기에 수리되거나 새로 만들어져 판가에 집어넣어진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수리하는 과정에서 전통 못이 아닌 왜못을 사용해 경판에 금이 가게 만들었다든지 마구리를 교체하면서 부실하게 수리했다든지 모서리가 닳자 아예 톱으로 잘라 없애버린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와 함께 기자는 대장경판 관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최근 ‘내전수함음소’라는 목판이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이 목판은 팔만대장경판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이 목판은 당연히 해인사 장경판전에 있어야 했지만 어찌된 연유에서인지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최근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취재 결과 이 목판은 일제 강점기 혹은 1940~50년대에 해인사로부터 누군가에 의해 유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하나 충격적인 사실은 아직까지도 팔만대장경의 정확한 경판 수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보통 팔만대장경의 경판수로 알려진 81,258장은 1915년 조선총독부가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그 뒤 몇 차례 조사가 이뤄졌으나 후대에 만들어진 중복판 등으로 인해 판수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가끔 국보급 문화재를 신격화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문화재가 아무리 우수하다고 해도 세월의 풍파를 빗겨 갈 순 없다. 세월은 문화재에 크고 작은 생채기를 낸다. 신화가 깨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이런 생채기를 그냥 덮어놔서는 안 된다. 덧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수리 복원해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우리 후손들의 참된 책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