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회 기획다큐부문_ 미납 추징금 25조원… 안 내실 겁니까_KBS 이석재 기자

지난 9월 말 취재진은 베트남 하노이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18조 원에 이르는 추징금을 내지 않고 있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찾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문제를 다룬 “1672억 원을 찾아라” 라는 프로그램이 끝난 뒤 취재진은 김 전 회장 등 일반인들의 미납 추징금 문제를 취재 제작하기로 한 지도 한 달이 넘게 지났지만, 김 전 회장에 대한 취재는 별다른 소득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노이에 은신(?)해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김우중 전 대우 그룹 회장과 그의 가족 소유 골프장 취재는 이번 프로그램에서 핵심 가운데 하나였지만 국내 취재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하노이 현지에서 돌파구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섭외도 사전 약속도 없었습니다. 그래서였는지 하노이에 가까워질수록 부담감은 커져만 갔습니다. 김 전 회장을 만나지 못할 경우, 문제의 골프장을 들어가지 못할 경우 등 갖가지 경우의 수가 머리를 짓눌렀습니다. 플랜 B라고 해봐야 현지 교포들 사이에서 떠도는 김 전 회장 관련 각종 의혹들을 주워오는 것 밖에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습니다.

도착 직후 문제의 반트리 골프장에 들어가는 방법을 찾는 일부터 착수했습니다. 철저하게 회원제로 운영되는 골프장이다 보니 회원권을 가진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고, 천신만고 끝에 현지 사업가의 도움으로 일단 골프장 예약은 성공했습니다.

풍문으로만 전해지고 있던 김 전 회장의 거처는 건물을 찍어서 확인해보는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구글 어스로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건물 2개를 골라냈습니다. 골프장 내부 촬영과 인터뷰 시도 등 시간 단위 취재계획과 동선도 모두 짰습니다.

예약 당일…

골프장 정문, 클럽하우스 로비 등 무려 4차례에 걸친 본인 확인 절차 끝에 탈의실에 들어간 취재진은 그 곳에서 이상한 걸 하나 발견했습니다.
취재진 일행의 티오프 시간은 오전 11시…
당일 첫 손님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탈의실 한 쪽 수건함에 이미 사용한 수건들이 대여섯 장 있었던 겁니다. 누군가 이 탈의실을 썼거나 먼저 골프를 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 번 째 홀을 지난 뒤 가장 친절해 보이는 캐디에게 슬쩍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김 전 회장이 혼자 10시까지 골프를 쳤다는 겁니다. 지금은 클럽하우스 2층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 거라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일단 18홀까지는 모두 돌기로 하고 골프장 촬영에 집중했습니다. 물론 그 사이 네 차례나 골프장 직원으로부터 촬영 금지 통보를 받기도 했습니다. 어디에서 보고 있었는지 촬영만 하면 나타나 곤혹스러웠습니다.

18홀을 모두 돈 뒤 다른 일행은 먼저 골프장을 나가고 취재진만 따로 남아 무작정 클럽하우스 2층으로 들어갔습니다. 당초 우려와는 달리 2층 문은 아무런 보안장치가 없었고 문도 열려있었습니다. 숙소 내부에는 시중을 드는 베트남 현지인 한 명만 있었습니다. 그 현지인을 통해 인터뷰 요청을 하던 중 거실에 앉아있던 김 전 회장을 발견했습니다. 자고 있더군요. 아니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자는 모습으로 앉아있었다라고 해야겠죠. 현지인을 통해 재차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끝내 잠들어 있는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여기에서 연출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당시 세 차례나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현지인이 두 번이나 거실에 들어갔다가 나오고 취재진이 또한번 들어갔는데도 그 모습 그대로였기 때문입니다. 김 전 회장이 자는 척하고 있다고 판단됐지만 끝까지 깨워서 한마디라도 들어봐야 하는지 그냥 나와야하는지 머리 속은 복잡해졌습니다. 끝내 자는 모습을 유지한다는 건 인터뷰를 거부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숙소에서 나왔습니다.

골프장을 나오자마자 역공은 시작됐습니다. 베트남에서의 김 전 회장의 영향력은 여전히 건재했고 측근들, 그 주변 인물들의 협박은 끈질기고 교묘했습니다. 결국 취재진은 숙소도 옮기고 본사와의 협의 끝에 해당 촬영 원본은 USB 파일로 옮겨 미리 국내로 반입하는 조치를 취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김 전 회장이 3남인 선용 씨에게 넘긴 차명 부동산과 건물개발 부지 사용권의 지분 등에 대해서도 추적 보도했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었고, 김 전 회장 입장에서는 도덕성을 의심할 수 있는 꽤 아픈 내용이었다고 자평합니다. 굳이 이 내용을 언급하는 이유는 해당 프로그램이 방송된 뒤 김 전 회장이 문제 삼은 부분 때문입니다. 김 전 회장은 자신이 조직적으로 빼돌려 자녀에게 넘겨준 차명 재산이나 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 제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자신의 자는 모습을 찍어 방송에 내보내면서 사생활을 침해당했다며 언론 중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물론 이 소송 역시 흐지부지 취하하고 끝냈습니다만 끝까지 자는 모습을 연출했던 사람이 그런 소송을 제기할 생각은 왜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클럽하우스 2층이 허무하게 뚫린(?) 것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크게 화를 냈고, 뭐가 됐던 간에 대응하라는 엄명을 내려 사생활 침해로 걸어보자고 했다는 전언이 있었습니다. 

18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추징금 가운데 김 전 회장이 자의적으로는 낸 돈은 단 3억 원입니다. 그 사이 부인과 자녀들에게 넘긴 재산은 수천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김 전 회장 측은 김 전 회장에게 판결된 추징금은 상징적인 의미의 이른바 ‘징벌적 추징’이었다며 미납을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김 전 회장과 같은 일반인들에게도 미납 추징금에 대해 강제 수사를 할 수 있도록 한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국가 형벌권이 바로 세워질 지는 지켜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