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회 기획다큐부문_ 삼성, 중고품이 A급_MBC 이호찬 기자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서 R급 부품을 A급으로 교체해주고 있다더라.” 지난여름 한 후배로부터 들은 얘기였습니다. “그런데, 취재하기엔 섭외가 어려울 것 같다”는 말도 덧붙었습니다. 전자제품 쪽엔 문외한이라 R급, A급이란 용어도 생소했지만, 어쨌든 삼성이란 대기업에서 중고품을 새 걸로 팔고 있다는 것 아닌가. 우리 용어로 무조건 ‘얘기 된다’고 판단했고, 욕심이 났습니다. 일단 취재해보기로 했습니다.

이번 취재에서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은 ‘보안’이었습니다. 우리가 취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삼성 측에 알려지는 순간 끝인 아이템이었습니다. 확실한 증거들을 찾기 전까진 말입니다. 취재원 보호 역시 중요했습니다. 취재 후기를 쓰는 것 자체도 그래서 조금은 조심스럽습니다. 취재와 기사 작성, 편집 과정에서도 이 부분을 크게 감안했습니다. 사실 취재 과정에서 데스크톱 컴퓨터 메인보드 이외의 다른 제품에서도 R급 중고 부품이 A급으로 포장된 사례가 발견됐지만, 취재원 보호를 위해 보도를 포기하기도 했습니다.

확인 과정은 여러 절차를 거쳐야 했습니다.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의 직원들을 접촉해 중고부품이 새 걸로 둔갑되는 유력한 제품군을 추렸고, 용산전자상가를 돌며 해당 제품을 구입해 직접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몇 곳에 수리를 맡겨보기도 했습니다. 지난 8월부터 전국 서비스센터 몇 곳을 돌며 A급으로 포장된 부품 상자를 매번 수 십 개씩 뜯어봤습니다. (2580의 제작 주기는 3-4주입니다. 아이템 끝난 직후 등을 이용해 취재를 이어갔고, 다른 동료들이 제작 기간 조정에 동참해줬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삼성 데스크톱 컴퓨터 몇 개 모델의 경우 A급으로 포장된 대부분의 메인보드가 사실은 R급 중고부품이란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극히 일부의 실수인지, 부품 대부분의 문제인지 판단하기 위해 최대한 표본 수도 늘렸습니다.

문제는 삼성이 순순히 잘못을 인정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새 부품이라 포장됐는데도 불구하고 프린터나 모니터 연결 부위에 사용된 흔적이 있고, 버전을 표시하는 스티커는 덧붙여져 있고, 뒷면엔 공통적으로 ‘r’이란 수기 표시가 있고… 충분히 의혹은 제기할 수 있지만, 기사의 완성도를 위해선 삼성의 ‘인정’이 필요했습니다. 더 확실한 무언가가 없을까 고민했습니다. 그 와중에 메인보드에 입력된 제조번호로 중고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A급 메인보드라면 ‘1234..’로 시작되는 의미 없는 제조번호가 들어가 있지만, 중고 메인보드라면 이전 제품의 제조번호가 입력돼 있을 거란 거였습니다. 이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이를 통해 대부분이 중고 메인보드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삼성 측의 반론이 가능한 다른 한 가지 가능성이 있었지만, 이 역시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일부 찾아냈습니다.

삼성전자에 확인을 요청한 건 방송 예정 열흘 전쯤이었습니다. 인터뷰 방식이나 장소 등을 두고도 신경전을 벌였습니다. ‘혹시나 예측하지 못했던 반응을 보이면 어떻게 하나’하는 고민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의 패는 최대한 숨긴 채 조금씩 패를 내 보였습니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 보다는 어렵지 않게 삼성전자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삼성 측은 우리가 내 보인 것에 한해서만 문제점을 인정했습니다. “‘단언컨대’ 한 종류의 메인보드만 문제”라고 밝혔다가 추가로 2개 메인보드를 더 내 놓자 말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2580의 확인 요청 이후 삼성전자는 자체 조사에 착수했고, 방송 이후엔 전국 서비스센터에 배포돼 있는 모든 데스크톱, 노트북 컴퓨터의 메인보드를 전수 조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확인해보니, 2580이 지적했던 3개 메인보드 이외에도 추가로 몇 개의 다른 메인보드에서도 R급이 A급으로 둔갑된 사례가 나왔다고 하더군요. 삼성 관계자는 문제가 있는 모든 메인보드의 유상 수리 고객에게 수리비 전액을 환불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TV와 세탁기, 에어컨 등 다른 가전제품과 휴대폰 등에 대해서도 조사를 확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방송 이후 블로그를 통한 공식 사과나 전수 조사, 환불 조치 등 삼성 측의 반응은 신속했습니다. 그러나 삼성 측은 여전히 본사 차원의 개입은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해당 메인보드를 수리했던 한 협력업체에서 A급과 R급 부품을 모두 공급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R급이 A급으로 혼용됐다는 겁니다. 검수를 잘못한 책임은 있지만, 사전에 이런 사실은 결코 몰랐다는 겁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직원 몇 명 안 되는 중소 전자업체에서 삼성전자를 상대로 조금만 확인하면 알 수 있는 이런 식의 사기를 쳤을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만일 이 협력업체에서 전적으로 사기를 친 것이라면, 삼성전자 측에서 구상권이라도 청구해야 하지만, 그런 움직임도 없습니다. 공정거래위의 조사가 진행 중인데, 이 부분은 명확히 밝혀야 되는 부분입니다. 또한 언제부터 얼마나 많은 양의 중고 부품이 새 부품으로 둔갑됐는지도 조사돼야 합니다. 삼성 측은 문제가 불거지자, 명확한 근거 없이 일단 유상 수리한 모든 고객들에게 환불을 해 주겠다고 밝혔지만, 무상 수리 역시 규정상 새 부품으로 교환해주기로 돼 있는 만큼 이에 대한 확인도 필요해보입니다.

지난 파업 복귀 이후 mbc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해고 뒤 복직하지 못한 여러 선배들이 있고, 복귀 이후에도 제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 동료, 선후배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일 해야지 다짐만 반복했는데, 이번 수상으로 아주 조금은 성과를 낸 것 같아 기쁘기도 합니다. 하지만 더 노력해야겠지요. mbc에 대한 비판적 시선은 여전하고, mbc의 부활은 험하고도 먼 길일 테니까요. 좋은 기사 찾아 더 열심히 뛰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