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회 지역보도 뉴스상_농지은행 사기 실태 연속보도_KBS춘천 송승룡 기자

 

존재의 이유

기자는 사회의 네비게이션입니다. 자동차 네비게이션이 경로를 벗어난 운전자에게 ‘땡땡’거리듯, 기자는 우리 사회가 정도를 벗어나면 바른 길로 가라고 알려줘야 합니다. 하지만, 기자가 제 몫을 다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인내가 필요한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지역 언론에 종사할 경우, 주어진 사명을 다하고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기까지 더 많은 시련과 외압을 견뎌내야 하곤 합니다. 이 기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취재는 회사로 걸려 온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됐습니다. “제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데, 꼭 만나고 싶습니다.” 황당한 말이라 나중에 다시 통화하자고 했지만, 제보자는 막무가내로 곧장 회사까지 달려왔습니다.

제보자는 4~5년 전쯤 한국농어촌공사 담당 과장, 농지 브로커와 짜고, 농지은행의 농지구입비를 가로챘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런데, 일이 잘못되자, 공모한 과장이 폭력배들을 동원해서 자신의 생명을 위협해 1년째 도피 생활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작년에 경찰과 검찰에 도움을 요청해보기도 했는데, 증거를 가져오라며 자신만 죄인 취급하고 그 과장은 그냥 놔두고 있는 겁니다. 결국 도피 생활을 끝내려면 언론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판단해 찾아왔다고 밝혔습니다.

여기까지 듣자, 의외로 큰 사건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곧장 취재에 착수했습니다. 일단 제보자의 은행 거래 기록을 조회해서 농지은행 지원금과 공모자에게서 받았다는 현금의 입금 내역을 확보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제보자는 오랜 도피 생활로 인해 더 이상의 입증 자료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는 것은 담당 과장과 농지 브로커의 이름뿐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지루한 증거 확보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제보자의 희미한 기억을 따라 인공위성 지도와 지적도로 거래 토지의 대략적인 위치를 확인한 뒤, 그 일대의 토지등기를 다 떼서 일일이 거래내역을 확인해 나갔습니다. 그 결과, 사흘만에 문제의 토지 거래 내역을 모두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등기에 나와 있는 주소로 사기극에 가담한 토지 판매자도 찾아내, 범죄 사실을 자백 받았습니다.

‘여기가 끝이 아닐 것이다. 한두 건만 더 찾자.’ 추가 취재에 나섰습니다. 우선, ‘농지관리기금법’부터 ‘농지은행 업무지침’까지 수백쪽짜리 서류들을 뒤져가며 어떤 제도이고, 허점이 무엇인지부터 밤 세워 공부했습니다. 그 결과, 농지기금은 전업농에 한해 지원된다는 것, 농지은행 담당자 2인 이상의 현지실사와 연접지 지원 요건 등 간단하지만, 간과하면 안 될 핵심적인 요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전업농협회 회장단 명단을 입수해, 농지은행 지원금 수령자 가운데 문제가 생긴 사람들을 수소문했습니다. 보름동안 강원도내 4개 시군을 돌아다니며, 의심이 갈만한 농민들을 물어물어 찾아 다녔습니다. 하지만, 하루에 한두 명 만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철원과 양구에서도 비슷한 사례 3건이 더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정도면 됐다싶어, 농어촌공사 담당자와 토지 브로커를 직접 부딪쳐 보기로 했지만,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습니다. 결국, 현직 법조인의 자문을 구한 결과, 그동안 취재한 것만 가지고도 장기간에 걸친 조직적 사기가 벌어졌다 것을 충분히 입증할 수 있다는 확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보도를 시작했습니다.

방송이 나가기까지, 마지막 과정은 더 험난했습니다. 사건 관련자들과 그들을 아는 사람들의 회유와 협박이 이어졌고, 결국 9시 전국 뉴스 방영이 무산됐습니다. 하지만, 선후배, 동료들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서 지역 방송만은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 수상으로 뒤늦게나마 기사의 가치를 인정받았고, 취재진의 땀과 눈물도 보상받았습니다. 끝으로 지역방송의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인정해 준 방송기자연합회와 한국방송학회, 심사위원 여러분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