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회 뉴스부문_ 전재국, 아랍은행에 100만달러 직접 예치_ KBS 이병도 기자

끈질긴 설득 끝의 만남, 비밀 계좌의 문이 열리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 씨가 블루 아도니스라는 해외 유령회사를 세우고, 그 이름으로 비밀계좌를 만들었다는 것은 이미 두 달 전부터 알려진 사실이었다. 전재국 씨는 조세회피처로 돈을 빼돌린 유력 인사 중 한 명이었다. 전두환 비자금을 취재하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도 한 달 반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전두환 씨의 아들 중 재국 씨는 가장 많은 재산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런 사람이 해외에 비밀계좌를 갖고 있다는 건 분명 추가 취재가 필요한 사안이었다. 그러나 금융정보를 알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계좌 개설의 비밀을 알고 있는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에 있던 김 모 씨에 대한 취재가 유일한 방법이었다. 전 씨가 계좌를 만든 아랍은행이 있는 싱가포르로 날아갔다.

그러나 유일하게 알고 있는 것은 김 씨의 전화번호 뿐이었다. 그것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낸 것이어서 김 씨의 전화번호인지 믿을 수 없었다. 싱가포르 도착 즉시 전화를 걸어봤으나 통화는 되지 않았다. 아랍은행 싱가포르 지점을 직접 찾았다. 그러나 김 씨를 만날 수는 없었다. 김 씨는 이미 5월 말, 정년 퇴임을 한 뒤였기 때문이다. 교민 사회를 취재했고 수소문 끝에 김 씨의 주소를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알고 있는 건 아파트의 이름 뿐, 동과 호수는 몰랐다. 한 층 한 층 모든 집을 돌아다녔다. 만나는 사람마다 미스터 김을 아냐고 물었다. 그러나 김 씨를 만날 수는 없었다. 다음날 다시 찾은 김 씨의 집, 문이 열려 있었다. 들어가봤더니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었다. 물어보니 김 씨가 은행에서 정년퇴임한 뒤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절망이었다.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김 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봤다. ‘여보세요…’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김 씨였다. 그러나 모임 중이라는 이유를 대며 김 씨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다시 건 전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밤 11시가 다 돼 건 세 번 째 전화, 김 씨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전재국 씨를 아냐는 질문에 김 씨의 대답은 ‘한 번 만났어요, 계좌 만들 적에’ 였다. 귀가 번쩍 트였다. 계좌를 만들 때 전 씨가 왔다는 얘기가 아닌가? 이후 통화를 통해 김 씨는, ‘전재국이 계좌를 열 당시 싱가포르 지점에 직접 왔으며 계좌 개설 이후 100만 달러 정도가 입금된 것을 확인했었다’라는 얘기를 들려줬다. 전재국의 해외 비밀 계좌에 얽힌 비밀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추가 취재가 더 필요했고 오랜 설득 끝에 다음날 만나자는 약속을 할 수 있었다. 급하게 출장 기간을 하루 더 연장했다. 밤새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약속 시간,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두 번 세 번…통화가 되지 않았다. 아…이게 끝인가 라고 할 때 통화가 됐다. 만나자고 했다. 그러나 김 씨는 몸이 피곤하다며 나갈 수 없다고 했다. 아쉬움 속에 전화를 끊고 데스크에게 보고를 했다. 데스크는 긴 한숨 끝에 어쩔 수 없다며 나를 위로했다. 너무나 아쉬웠다. 전화를 끊고 한 시간 동안 줄담배를 피우며 어떻게 할지를 고민했다. 다시 힘을 내 전화를 걸었다. 김 씨는 한 시간 넘게 통화를 하면서도 만날지 말지를 고민하는 듯 했다. 전두환 비자금 미납에 대한 분노도 호소했고 국민의 알권리에 대해서도 말했다. 통하지 않았다. 끝으로 인정에 호소했다. ‘어찌됐든 밥 한끼 사주세요, 선생님 취재하느라 이역만리 타국에서 저녁도 굶고 있습니다…’

진심이 통했을까? 김 씨는 긴 망설임 끝에 밥을 사겠다고 했다. 마침내 김 씨를 만났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김 씨의 얘기를 들었다. 김 씨는 전재국 씨가 계좌를 개설했을 당시의 상황과, 돈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갔는지 등을 상세히 설명해줬다. 특히 재국 씨가 자신의 이름이 노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설립한 회사 명의로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지를 물었고 자신이 변호사를 소개시켜줬다고 했다. 서울에서의 병행 취재를 통해 김 씨의 말 중에 신뢰할 수 있는 부분을 골라 방송했다.

이상이 ‘나의 김 씨 상봉기’다. 12년 넘게 기자 생활을 했지만 이번처럼 애간장을 태운 취재는 없었다. 그러나 이번 취재를 통해, 기자의 기본은 ‘끈질김’이라는 점과 ‘진심을 담은 설득’이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나는 아직도 ‘전두환’을 취재하고 있다. 과거 우리 사회와 우리 역사를 거꾸로 세운 숱한 일들이 있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33년 전 시작된 ‘전두환’의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고서는 정의가 바로 설 수 없기 때문이다. 정의가 무너진 사회는 더 이상 인간이 사는 세상이 아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