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회 기획다큐부문_ 당신의 비밀이 거래되고 있다_SBS 정명원 기자

 

“중요한 개인정보, 기업정보가 담긴 디지털 저장장치가 몰래 국내외에서 거래되고 있다!”

몇 달 전 이 이야기를 취재원으로부터 듣고 한번 심층 취재를 해 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지만 이런 저런 일정 등으로 시간만 보내고 있었습니다. 마음에 계속 걸렸던 취재를 시작하고나니 예상보다 너무나 심각한 실태에 어떻게 이걸 다 다뤄야 하나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하드디스크, 스마트 폰 등 중요한 개인정보가 담겨있는 디지털 장치들은 우리가 삭제했다고 생각한 조치로는 삭제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담긴 정보들은 쉽게 복원돼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중고하드디스크만 살펴봐도 유통 과정을 알아보니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대부분 용산전자상가로 모이게 되는 구조였습니다. 그래서 용산상가를 돌아다니면서 중고하드디스크 속 데이터가 현행법대로 복원이 안 되도록 삭제된 채 거래되는 지를 알아봤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가게에서는 데이터가 복원이 안 되도록 삭제를 하려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물건의 질도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하지 않고 판매를 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일부 기업 직원들의 경우 회사 PC를 불용 처리하는 과정에서 폐기돼야 할 하드디스크를 빼돌려 거래업자들에게 넘기기도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습니다. 확인을 위해 무작위로 중고하드디스크를 구입해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에 복원을 의뢰해 봤더니 믿기 힘든 결과들이 쏟아졌습니다. 22개 가운데 15개의 하드디스크의 정보가 복원이 됐고 이 가운데는 7만개가 넘는 정보가 복원된 하드디스크도 있었습니다. 복원된 문서의 숫자가 많다는 점도 놀라웠지만, 언뜻 봐서도 꽤 중요한 정보들이 복원됐다는 점이 더 충격이었습니다. 앞면에 대외비라고 적힌 문건이 있었고, 중요한 연구용역 보고서도 들어있었습니다. 제품원가와 도매가, 납품가 등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가격 정보도 담겨있었고 직원들 인사기록카드와 연락처들도 복원됐습니다. 최우수 고객들 명단을 분류해 놓은 문건들도 쏟아졌는데 무려 1,870명의 개인정보가 담겨있었습니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은 고객의 개인정보는 암호화 시켜서 내부 직원들조차도 필요한 경우만 볼 수 있도록 하고 삭제할 때는 복원이 안 되도록 폐기하게 정해놓고 있는데 현실은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었습니다.

문건을 만든 기업들은 처음에는 진짜 자신들의 문서인지 살펴보는데 주력하더니 중요한 문서들이 등장하자 꽤 놀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공통된 점은 모두 폐기업자들에게 회사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폐기처리 하도록 용역을 줬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결국 돈의 문제였습니다. 우리 기업들은 중고 PC를 처리할 때 자산매각의 개념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입찰을 통해 비싼 가격을 부르는 쪽에 물건을 넘깁니다. 물건을 산 쪽에서는 돈을 주고 샀는데 고철 값만 받으면 수지가 맞지 않으니 중고하드디스크를 한 개에 1~2만원을 받고 파는 겁니다. 데이터를 완전 삭제하면 할수록 제품의 질은 떨어지게 되니까 몇 개만 삭제하는 시늉을 내고 나머지는 안 보이는 곳에서 빼돌려 처리합니다. 물론 일부 업체들은 제대로 처리하는 곳도 있지만 취재진이 확인한 실태를 보면 그렇지 않은 곳이 더 많았습니다. 이런 중고하드디스크만 사들여 중국이나 동남아, 아프리카로 수출하는 업자들을 직접 접촉해 봤더니 예상보다 시장 규모가 상당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이들로부터 물건을 사들이는 지 이걸 사서 여기에 담간 정보들을 어떻게 처리하는 지를 파악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방송 이후 유출됐던 기업들은 물론 다른 기업들까지 잇따라 하드디스크 처리지침을 바꿨습니다. 일부 기업과 관공서는 교육용 교재로 쓰겠다며 자료를 요청했습니다. 정부도 개인정보수집 방식에 대한 개선책을 발표했고 방송에서 지적한 스마트 폰 개인정보 유출 방지를 위한 대책도 일부 반영이 됐습니다. 보도가 나가고 난 뒤 가장 많이 들었던 반응은 “무섭다” 는 것이었습니다. 달리 보면 그만큼 심각성을 몰랐다는 뜻일 겁니다. 저 역시 취재 전에는 그랬습니다. 개인정보가 곳곳에서 저장되고 있는 디지털 시대에 이번 보도가 개인정보 보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취재했습니다. 이 상을 받고 보니 어느 정도는 취재를 한 목적을 이룬 것 같아 보람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