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회 지역보도 기획다큐상_[특집] '지진, 흔들리는 한반도'(2부작)_ 부산MBC 이만흥 기자

17시 23분. 1시간여 동안의 비행을 무사히 마친 헬리콥터가 공항에 착륙했다. 촬영은 나쁘지 않았다. 우리 촬영팀을 바로 옆자리에 태워준 기장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베테랑이었고, 자신의 저공 비행 실력을 한껏 선보이며 빅아일랜드 킬라우에아 화산 정상의 끓어오르는 분화구를 구석구석 훑어주었다.

헬기 촬영 부분은 간신히 편집 분량을 맞출 수 있을 정도는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항공촬영은 항공촬영일 뿐이다. 근접 촬영이 필요했다. 섭씨 천 도의 붙타는 용암이 손에 잡힐 듯 이글거리는 장면을 꼭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결단을 내려야할 순간이었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사방은 조금씩 어두워져갔다. 미리 계획했던 대로, 배를 타고 킬라우에아의 용암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으로 이동해서 근접 촬영을 해야 한다. 문제는 너무 어두워져서 캄캄해지면 촬영 자체가 안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배를 타느냐, 아니면 내일 아침 다시 오느냐…선택을 해야할 시간이었다.

결정을 내리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9인승 미니버스는 곧장 공항을 출발해 선착장으로 향했다. 비바람은 점점 강해졌고, 40여분을 달려서야 선착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맨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방파제에 부딪치는 파도였다. 얼핏 보아도 2-3미터 정도. 먼바다에 나가면 파고가 얼마나 더 높아질지 알 수 없었다.

우리 촬영팀을 태우고 갈 보트가 도착했다. 8인승쯤 돼 보이는 스피트 보트. 예상보다 배가 너무 작아서 순간 당황했다. 파도를 견딜 수 있을까? 선장은 오늘 바다가 유난히 잔잔하다고 한다. 처음엔 놀리려고 하는 소린 줄 알았다. 이 정도가 잔잔한 거라니…

스피드 보트는 곧장 출발했다. 스피트 보트는 정말로 스피디했다. 파도를 느낄 새도 없이 바다 위를 나는 듯 달리기 시작했다. 시속 40-50노트의 속도를 유지하며 달리기를 50분. 보트 난간을 움켜쥔 손에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저절로 불끈 힘이 들어갔다. 뱃머리 부분이 파도에 부딪칠 때마다 텅 텅 하는 소리가 보트를 아래 위로 흔들었다. 주변은 이미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150 데시빌 이상의 소음을 일으키며 달리던 스피드 보트가 드디어 멈췄다. 이곳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화산이라는 킬라우에아의 발 끝. 화산 용암과 바다가 만나는 지구상에서 몇 안되는 곳 중 하나다. 시뻘건 용암이 매캐한 유독성 가스를 내뿜으며 바다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쉬익 쉬익, 푸우우 푸우우… 지표면 아래 수십 킬로미터에서부터 올라온 마그마는 여전히 살아서 숨을 쉬고 있었다.

용암은 작은 폭포처럼 바다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쇳덩어리마저 녹여버릴 것 같던 용암은,

그러나 바닷물에 닿는 순간 거짓말처럼 검은색 돌덩어리로 변했다. 검은색 화산석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었고, 갓 태어난 화산석들은 점점 뭉쳐져 육지의 일부분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화산 때문에 섬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말을 그제서야 실감할 수 있었다.

선장은 배를 최대한 용암 가까이 붙여주었다. 용암 폭포에서 10여미터 이내까지 접근했다. 뜨거운 열기가 후-욱 하고 얼굴에 부딪쳐왔다. 조금 더 다다갔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 안전을 장담할 수 없었다. 호흡기로 파고 드는 용암 가스에 숨이 막혀왔다. 선장은 우리더러 아주 운이 좋은 사람들이란다. 요즘은 용암이 잘 흐르지 않는데, 오늘처럼 용암이 많이 흘러나오는 경우는 무척 드문 경우란다.

수증기와 유독가스 때문에 촬영이 맘처럼 쉽지는 않았다. 흡사 바다 위에다 연막탄을 뿌려놓은 것과 별 다를 게 없었다. 배는 잠시도 쉴 새 없이 아래 위로 흔들렸고, 빅아일랜드에는 이미 밤이 찾아 와 있었다.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를 또다시 시속 40-50노트의 속도로 50분을 달려가야 한다는 걱정은 뒷전이었다. 주변의 사물을 식별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무조건 촬영을 해야 했다.

스피드 보트가 선착장에 다시 도착한 것은 밤 8시를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비를 쫄딱 맞아서 영락없는 생쥐 꼴이다. 현지 가이드가 별 생각없이 좀 찍었다고 물어본다. 계획했던 정도는 촬영했다고 했더니 깜짝 놀란다.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찍어온 화면을 되돌려서 잠깐 보여줬더니 원더풀을 연발한다. 럭키 가이즈, 럭키 가이즈… 요즘은 용암이 흘러나오는 경우가 한달에 한번도 드물다는 거다. 만약 다음날 아침으로 촬영을 미뤘으면 이 장면을 촬영할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도 등골에 땀이 나는 순간이다. 어쨌든 탁월한 선택이었다. 미니버스에 몸을 싣자 그제서야 허기가 느껴져왔다.

– 2013. 3. 16. 하와이 빅아일랜드 킬라우에아 남쪽 해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