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회 지역보도 기획다큐상_ “식구(食口)의 재구성”_ KNN 표중규 기자

혼자서 밥을 먹고 혼자서 영화를 보고 혼자서 여행을 다니는 삶, 심지어 외로움마저 돈만 있으면 홀로 잊을 수 있는 사회. 현대화된 문명 도시에서 “쿨한 나”를 표현하는 라이프 스타일이다. 나 역시 사실 스무살적부터 이런 삶이 익숙하고 편하고 또한 행복했다. 하지만 사회부 기자로 11년을 보내면서 언젠가부터 내 안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런 삶이 과연 나를, 우리를 진정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행복하다고 스스로를 속이게” 할뿐인가. 이제 사회문제라고 부르기가 오히려 이상할 정도로 흔해져 버린 고독사와 히키코모리, 끝 간 데 없이 엇나가는 청소년 범죄와 밥이 없어 굶어죽는 OECD 가입 국가인 대한민국의 국민들, 우리의 구겨지고 얼룩진 자화상은 이처럼 저마다 파편처럼 부서져버린 개인의 모습으로 요약된다. 과연 우리 사회는 이대로 가야하고, 이대로 갈 수밖에 없는 걸까? “식구(食口)의 재구성”은 이런 의심으로부터 시작했다.

기나긴 고민 끝에 선택한 “식구”라는 주제는 분명히 그동안 어느 다큐에서도 포착하지 못했던 신선한 시각이었지만 그만큼 지나치게 인문학적이고 그 개념과 인식 자체가 흔해빠져서,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보석은 커녕 원석이라고 보기도 힘든, 어디서든 발에 채이는 자갈 같았다. 하지만 그만큼 그동안의 교과서적이고 정답적인 서사를 벗어나, 흔히 돈 많이 든 다큐에서 흔히 볼수 있는 지구 반대편의 원시사회에서 발견하는 신기한 해법이 아닌, 정말 현재 우리의 삶을 그대로 담고 또 우리의 삶을 바꾸어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재료라는 확신 아래 한발씩 한발씩 작업해나갔다. 

시청자들이 너무나 익숙한 식구 라는 주제를 새롭게 바라보면서, 그러나 우리의 삶과 비교하면서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하기 위해 다양한 해외촬영을 진행했다. 분단시대를 겪고 식민지 시대를 거친 독일과 인도네시아의 사회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교훈을 원했지만 실제 현지 촬영은 쉽지 않았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현지 통역마저 말이 통하지 않는 미낭까바우 방언 때문에 2중, 3중의 번역과 몸짓발짓이 오가야 했다. 하루내내 뙤약볕 아래 이어진 강행군에서 결국 20대의 한국인 유학생 통역마저 더위를 먹었고 바리앙에서는 스푼조차 없어 결국 맨손으로 밥을 뭉쳐먹으며 인도네시아의 관습을 직접 몸으로 실천하기도 했다. 독일에서 오래 유학생활을 한 김은철 박사님의 도움으로 – 다시 한번 감사한다 – 섭외한 안야 씨 가족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도움을 주셨지만 너무 큰 호의 때문에(!) 요리준비와 식사, 디저트 타임까지 찍고 나면 하루가 그냥 가버리는 스케줄이 사흘 내내 이어지면서 결국 마지막 이틀동안 남쪽 안스바흐에서 북쪽 베를린, 다시 남쪽 프랑크푸르트를 주파하는, 목숨 건 강행군을 펼쳐야 했다.

홍콩은 지금도 악몽이다. 애당초 취재 지원를 약속했던 부산의 한 사립대학에서 해외 촬영도중에 아예 판을 엎어버리면서 – 아직도 이유를 알 수가 없다 – 국제 미아가 될 뻔했다. 여기에 현지 코디를 약속했던 현지 여행사 사장의 활약은 아예 사기 수준이었다. 중국 분위기 나는 식당을 섭외해달랬더니 4백명이 한꺼번에 수용가능한 초현대식 뷔페를, 그것도 텅 빈 시간에 섭외해놓았고 일반적인 홍콩의 젊은 부부를 섭외해달라고 한 케이스에서는 두 자매가 처가살이를 하는, 정말 홍콩에서 보기 힘든 11명의 원주민 마을 대가족을 섭외해주었다. 그나마 현지에서 만난 한국인 프리랜서인 린다 김이 아니었더라면 – 역시 다시 한번 감사한다 – 아마 다큐멘터리 전체에서 중국 홍콩부분이 빠져야했을지도 모른다. 일본에서는 빼어난 코디 덕분에 섭외나 촬영을 충실히, 안정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고 현지에서 맨땅에 헤딩식으로 밀고나갔던 빈민촌 촬영도 200% 성공을 거두면서 그나마 해외 촬영과정 전반의 고난과 설움을 덜 수 있었다.

첫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식구의 재구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내게 큰 행운이었다. 전문가 사전취재와 인터뷰를 통해서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넓은 스펙트럼을 공부할 수 있었고 기나긴 편집작업을 통해 무엇이 다큐멘터리 영상 편집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또 깨닫고 다시 포맷하고 백업하는 작업이 쉴 새 없이 이뤄졌다. 영상촬영부터 편집, 원고, 녹음 등등 모든 과정에서 도와주고 이끌어주고 해결해준 많은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식구의 재구성”은 완성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 만족하기에도 모자란 부분이 많다. 그 모자란 부분은 온전히 나의 책임이다. 그러나 그 시도가 의미있고  누군가에게 “지금의 이 사회의 모습, 그 속에 숨어있는 질서의 의미를 한번쯤 의심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 줄 수 있었다면 그걸로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은 이쯤에서 달래야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반년이 넘는 다큐작업 동안 거의 제대로 얼굴도 못 봤는데, 다큐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경남 통영으로 발령이 나면서 혼자 떠나버린 무심한 가장을, 그래도 항상 껴안아주는 나의 “식구”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