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회 지역보도 기획다큐상_[4·3특별기획] "넉시오름의 세가지 이야기"_제주MBC 권혁태 기자

인구가 천 명 남짓인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중산간에 자리 잡은 이 마을은 겉보기엔 평온합니다.
하지만 마을의 속살이 드러나는 순간, 제주 어느 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갈등들이 폭발했습니다.

마을의 역사를 정리하는 마을지 발간 문제. 별일 아닐 수도 있는 그 문제를 놓고
마을 사람들은 극한으로 대립했습니다. 그 모습을 목격하는 것 자체가 큰 충격이었습니다.

 60년 넘게 침묵으로 감춰져온 갈등. 바로 4.3이 그 대립의 원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4.3 이야기를 하면, 고개를 흔듭니다. 솔직히 아는 사람도, 관심이 있는 사람도 점점 줄어듭니다. 그렇다고 4.3은 끝난 것일까요?

이번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여전히 남아있는 4.3의 상처를 만났습니다.
산과 군, 그리고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이 저마다의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갈등과 대립, 반목을 거듭하는 마을 공동체를 목격했습니다.

진상규명이 이뤄졌고 번듯한 기념관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거대한 숫자와 거창한 구호 뒤에 여전히 숨죽이며 상처를 되뇌는 사람들이 제주 마을 곳곳에 있습니다.
이번 특집, ‘넉시오름의 세가지 이야기’는 그런 제주 마을 공동체의 이야기입니다.

취재는 어려웠습니다. 상처를 드러내는 일, 아직도 제주 사람들에게는 금기의 영역입니다. 무장대 암매장지에 가족이 잠들어있었던 유족을 어렵게 찾아내 만났지만 끝끝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아팠습니다. 국가가 개인에게 도대체 무슨 일을 했던 것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얼굴조차 드러내지 못했던 무장대의 유족들. 그리고 군경이라는 집단의 이름으로 가해자로 짓눌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이제는 잊혀져가고 있는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큰 고통이었습니다.
영화 지슬이 세상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마치, 4.3의 이야기를 처음들은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그만큼 4.3은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사건입니다.
제주mbc는 20년 넘게 4.3다큐멘터리를 제작해오고 있지만 앞으로 할일이 더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밝혀야할 진실들이 더 많고, 돌봐야할 상처가 더 많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몇 해 전, 수 십년 4.3 진상규명 운동을 한 선배가 아이템을 고민하는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사지내듯 프로그램 만들지 말라’.

이번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두고두고 되새겼던 말입니다. 그리고 4.3을 대하는 우리 모두가 두고두고 새겨둬야 할 말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