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회 기획다큐부문_탈북자 이은혜_KBS 안양봉 기자

“내 소망은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재회

탈북 여성 이은혜 씨 일행 4명이 제3국의 산악지대에서 지내는 나흘 째 밤. 제3국의 밤 기온은 이미 영하 10도 아래로 떨어졌다. 물조차 제대로 먹지 못하고 버틴 나흘. 살겠다는 의지도 체력도 모두 바닥났다. 그 때 저 멀리서 들려온 소리. “어이~~~” “어이~~~” 누군가 그들을 찾고 있었다. 2010년 11월 1일 저녁 8시. 그렇게 그들 앞에 KBS 취재진과 제3국 국경경비대 군인이 나타났다. 중국 탈출에 나선 지 일주일 째, 국경을 향해 출발 한지 나흘 째 밤이다. 그들은 그렇게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왔다.

탈북여성 이은혜

KBS 취재진과 탈북여성 이은혜 씨가 처음 만난 것은 2010년 10월 초다. 북한을 떠난 탈북자들이 중국에 머무는 동안 겪는 인권 침해 상황을 알리기 위해 나선 취재였다. 이은혜 씨는 다른 탈북 여성과 함께 중국의 한 안가에서 한국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은혜 씨는 2001년 20대 초반의 나이에 굶주림을 피해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갔다고 한다. “강을 건너니 중국인 인신매매 꾼이 돈 흥정을 하고 있는 거예요. 야! 난 너하고 약속했던 건 이러이러한 아줌마, 나이가 있는 사람이었는데… 봐라 내가 이번에 북한에서 데려온 사람은 이렇게 다 꽃나이 같은 애들이다. 그러니까 돈을 올려라. ”

그렇게 은혜 씨는 중국인에게 팔려갔다. 강제노역과 인격적인 학대, 중국 공안에 체포돼 북한으로 강제 송환될 것이라는 공포 속에서 숨어 지냈다.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게 우리 죄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사람이 사람 같지 않게 살고, 제가 가장 이루고 싶었던 소망이 뭔 줄 압니까? 한국 가서 국적 올리고 떳떳하게 사는 거.”

한국행에 오르다.

이은혜 씨와 함께 한국행을 준비하던 사람은 모두 4명이었다. 그들 모두 애절한 사연을 갖고 있었다. 그들이 한국행에 오른 날은 2010년 10월 26일 아침 6시였다. 취재진은 그들의 안전을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하며 촬영을 했다. 덕분에 중국에서 촬영은 별일 없이 무사히 마쳤다.

취재진은 그들이 제3국으로 넘어오면 촬영을 계속 하기로 하고, 제3국 입국 비자를 받아 먼저 들어갔다. 취재진이 제3국에서 그들을 기다리던 2010년 10월 28일 밤 10시 무렵. 이은혜 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마침내 그들이 국경으로 출발한 것이다. “국경 넘었어요?(기자)/아니요 못 넘었어요. 지금 중국 안내인이 산 두 개 넘으라고 해서 산 넘고 있는 중이에요(이은혜)/그렇군요. 그러면 산 두 개, 국경 넘는데 어느 정도 걸릴까요?(기자)/예… 한 시간 뒤에 다시 한 번 전화를 하겠습니다.(이은혜)”

중국 안내인은 40분이면 충분히 중국 국경을 넘어 제3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틀 동안 산속에서 헤맸는데도 국경은 보이지 않았다. 은혜 씨가 그들의 사정을 알릴 수 있는 사람은 취재진이 유일했다. 기자의 위치는 객관적 관찰자로서 취재원의 삶을 중립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하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린 취재원을 두고 그런 원칙을 내세울 수는 없었다.

이은혜 씨에게 처음 전화가 걸려 왔을 때 취재진과 그들의 위치는 1,500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취재진은 쉼 없이 사막과 대초원, 산악 길을 달려 나흘 만에 그들과의 거리를 13km로 좁혔다. 그러나 더 이상 차로는 이동할 수 없는 산속에 취재진도 갇히고 말았다. 그 때 하늘이 도운 것일까? 11월 1일 오후 2시 쯤. 산속에 갇혀 꼼짝도 할 수 없었던 취재진 앞에 제3국 국경경비대원 2명이 산 넘어서 나타났다. 그들에게 탈북 여성 4명이 13km 떨어진 곳에서 죽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들을 설득해 함께 구조에 나섰다. 이미 해는 떨어져 깊은 어둠이 뒤덮은 2010년 11월 1일 저녁 8시. 마침내 그들을 만났다. 조난된 지 나흘 째 되는 밤이었다. 그리고 그 상봉의 순간을 영상으로 담았다. 이 영상은 3년이 지난 2013년 2월 26일 KBS 다큐멘터리로 전파를 탔다.

이은혜 씨의 꿈

이은혜 씨 일행은 다음 해인 2011년 한국에 입국했다. 6개월 동안 한국 정착 교육을 받고, 은혜 씨가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한국 국적을 받아 정착했다. 이제는 한국 사람이 된 이은혜 씨에게 중국에서 지낸 탈북자 생활과 지금 생활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지 물었다. “한국에 오니까 가슴 쭉 펴고 길을 걷는 그런 느낌이에요. 중국에 있을 때는 거리에 나가던 어디에 나가던 항상 골목길을 찾아 다녔어요. 이해가 안 갈 거예요. 자유라는 두 글자 속에 숨겨져 있는 깊은 뜻을, 저는 그걸 조금이나마 알거 같아요.” 그녀가 말하는 ‘자유’는 거창하지 않다. 길을 마음껏 걸을 수 있고, 웃고 싶을 때 웃을 수 있고, 화날 때 화낼 수 있는 자유….

중국에는 이은혜 씨처럼 숨죽여 살아가는 탈북자들이 5만 여명에 이른다. 국제사회는 중국 정부에 북한 사람들을 ‘난민’으로 간주하고, 인권을 보호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탈북자들을 ‘경제적 이주자’로 간주한다. 때문에 그들을 체포하고 북한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중국 사람이 탈북자를 상대로 저지르는 범죄를 외면한다. 중국 은신 탈북자들이 유엔 인권선언에서 정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 그 자체로 보호받고 존중받아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기를 바란다. 이은혜 씨가 취재진에게 말한 것처럼 그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찾아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