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회 뉴스부문_이마트, ‘미행·해고’ 노조 설립 방해?_KBS 정다원 기자

2년 전, 한 술자리에서 질문이 나왔다.

“신세계는 어떻게 무노조가 가능하지? 그 큰 회사에서 불만 있는 사람이 없을 리 없잖아.” “싫은 소리 하는 사람들은 자르거나 돈 주거나 그러나 보지.” “싫은 소리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떻게 알아.”

아, 그렇네. 싫은 소리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대체 어떻게 알지? 솎아내는 프로그램이라도 있나? 이 우문에서 취재가 시작됐다.

1년 반 동안 주변을 쑤시고 다녔다. 여러 풍문이 들렸다. ‘직원들을 따로 감시한다더라, 문제 사원은 MJ라는 이니셜을 붙여 별도 관리한다더라’ 등 ‘카더라’가 난무했다. 신세계가 노조 방해 작업을 하고 있다는 심증은 굳어지는데 물증은 나오지 않았다. 증언 비슷한 건 있는데 자백이 없었다. 답답했다.

그러다 지난해 봄, 잘 알고 지내던 지인이 나를 불렀다. “예전에 내가 했던 말 있죠? 그거 진짜예요.” “뭐가요?” “신세계가 노조 못 하게 하는 거 그거 진짜예요.”

우여곡절 끝에 증거 자료를 손에 쥐었다. 만 건이 넘는 문서 앞에서 나는 망연자실했다. 이마트 등 신세계 계열사들이 노조 성향 직원들을 어떻게 감시하고, 미행하고, 이간질해서 해고하는지 빼곡이 적힌 매뉴얼들. 수백 명의 사생활이 실명으로 낱낱이 공개돼 있었다. 밤낮 없이, 평일과 휴일도 가리지 않고 미행과 뒷조사가 계속되고 있었다. 게다가 이들 사원을 뒷조사한 경위는 하나같이 ‘이 사람 책상 옆에서 전태일 평전이 발견돼서’ 또는 ‘여자친구가 민주노총 활동가를 위해 사진을 찍어준 적이 있어서’처럼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책상 옆에 전태일 평전이 있다고 내 삶이 하나하나 까발리고 뭉개져야 하다니, 이런 병적인 순혈주의는 누가 만든 건가 싶었다.

이제 보도를 할 차례였다. 먼저 문서의 진위 여부를 밝히고 당시 상황을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 피해자는 그나마 어렵지 않게 섭외했지만, 미행 가담자에게 접근하는 일은 무엇보다 어려웠다. 가담자에게 잘못 접근했다가는 신세계의 개입으로 취재 자체가 헛것이 될 것 같았다. 며칠을 꼬박 매달린 끝에 가담자의 자백을 안전하게 받아냈다. 그 동안 문서에 대한 법적 검토도 끝났다. 이제 방송만 하면 됐다.

  그러나 보도 당일, 리포트 세 꼭지로 기획했던 계획이 어그러졌다. 세 꼭지가 두 꼭지로, 두 꼭지가 한 꼭지로 줄어들었다. 리포트 내용이 별로였는지, 다른 중요한 기사가 그날따라 많았는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1분 50초짜리 리포트 한 꼭지는 이제 겨우 찾아낸 ‘현답’을 풀어내기에는 너무 짧았다. 아쉽다. 그러나 파장이 커서 고맙다. 리포트가 보도될 수 있도록 같이 뛰어준 이들에게, 용기를 내 말을 꺼내 준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